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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빵이 익어가는 저녁 / 김만년

에세이향기 2021. 5. 22. 09:21

찐빵이 익어가는 저녁 / 김만년

 

오랜만에 오일장을 찾았다. 시장좌판이 풍성하다. 봄 산을 막 내려 온 두릅 취나물 다래 순들이 청향을 뽐내며 장돌뱅이들의 입맛을 돋운다. 갑자기 목안이 컬컬해진다. 노찬탁자에 걸터앉아 데친 두릅에 막걸리 한 사발 벌컥, 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나를 꿰뚫어 보는 아내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아 참는다. 뱅뱅 돌다가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는 게 장돌뱅이 아닌가. 방임된 시간은 파장 무렵으로 유예해두기로 한다. 난전을 돌아 나오다가 찐빵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우리 엄마가 만든 찐빵 짱^^맛있어요!", 광고라면 이만한 광고가 또 있을까. 절로 미소가 번진다. 삐뚤삐뚤한 필체를 보면 필시 이집 코 흘리게 아이가 쓴 것이 분명하리라. 어쩌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밤새 엄마의 찐빵 만드는 일을 도와주었는지도 모른다. 김서린 찐빵을 보고 있자니 입안에 단팥 같은 기억 한 시절이 씹힌다. 올망졸망한 열두 손들이 온종일 찐빵을 만들다가 밀가루 분분하던 안방에 뒤엉켜서 잠들던, 그 먼 찐빵가게가 떠오르는 것이다.

아버지의 투병은 일차적으로 어머니를 희생시켰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 동네사람들은 일찌감치 편찮으신 아버지까지 포함해서 칠남매를 키우는 집이라고 불렀다. 우리 집은 미닫이문을 열면 고추와 한약 냄새가 알싸한 뒷방이 나온다. 그곳은 언제나 마늘 고추와 온갖 이름 모를 한약 재료들이 마치 커다란 애벌레 집처럼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어머니는 가을이면 심산으로 들어가 약초뿌리를 캐 와서 뒷방에다가 말리셨다. 약재자루에 갖가지 이름표를 달아놓고 겨울 내내 아버지에게 지극정성으로 달여 주시곤 했다. 남매들은 그런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뒷방의 약초냄새와 아버지 담배냄새가 싫어서 우리는 언제나 안방에서 서로 뒤엉킨 채 혼곤히 잠들곤 했다.

겨울방학 때면 나는 청솔가지를 찍어다가 텃밭에 집채만 한 나무 가래를 쌓아 올렸다. 그렇게 쌓아두면 겨울 내내 햇빛과 바람에 시득해져서 이듬해 봄쯤이면 가볍게 마른다. 콧물눈물 흘리며 청솔가지를 태우던 어머니는 "그래도 니가 맏이노릇은 한다."며 대견해 하셨다. 농번기 때면 어머니는 찐빵행상을 나가셨다. 논두렁 새참으로 찐빵을 팔고 몇 푼의 지전이나 곡식으로 바꾸어 오는 것이다. 밤이 이슥하도록 어머니가 오시지 않을 때면 나는 긴 신작로를 따라 어머니를 마중 나가곤 했다. 날짐승들을 품은 미루나무가 유령처럼 흔들릴 때면 등에 식은땀이 났다. 인광(燐光)이 번뜩이는 공동묘지를 지날 때면 꼬리 아홉 달린 여우가 자꾸만 오버랩 된다. 와락,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면 어김없이 “야야 니 오나!” 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어둠속에서 들린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가 어머니의 함지박을 받아들었다.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인가의 불빛들만 따끔따끔 피어오르던......, 그때 어머니의 치마폭 사이로 폭포수처럼 쏟아지던 밤하늘의 별들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찐빵은 파는 일 보다 만드는 일이 더 어렵다. 우리 육남매는 장이 서기 전날 밤에는 수난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닷새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빵 만드는 밤이 싫어서 그때는 장날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어쩌다가 31일까지 있는 날이면 장날이 하루 늦추어진다는 기쁨도 컸다. 명절대목장이라도 서는 날이면 온 가족이 비상이 걸렸다. 어머니는 초저녁부터 팥을 끓이시고 밀가루반죽을 만드셨다. 밀가루에 이스트 베이킹파우다 막걸리를 넣고 수십 번을 버무려서 따뜻한 아랫목에 덮어 놓으면 새벽녘쯤이면 반죽이 시큼한 냄새와 함께 부풀어 오른다. 그때쯤이면 어머니는 우선 누나와 여동생을 깨운다. 군불로 달구어진 뜨끈한 방에 광목천을 깔고서 그 위에 밀가루를 뿌리고 반죽을 떼어 빵을 만들기 시작한다.

긴긴 겨울밤, 희미한 호야등잔 밑에서 세 모녀가 만들던 찐빵은 그렇게 온 방안을 수놓으며 가족의 희망으로 부풀어 올랐다. 가지런히 놓인 찐빵들 사이로 두꺼비 배처럼 울퉁불퉁한 찐빵은 누나의 심술이고 꿩알처럼 작은 찐빵은 여동생의 어린 마음이고 눌려서 터져 있는 찐빵은 막내 동생의 잠버릇이다. 빵 껍질이 딱딱해져 잘 부풀어 올랐을 때쯤이면 어머니는 드디어 나를 깨운다. 찐빵을 쪄내는 일은 장남인 나의 몫인 것이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가마솥에다가 청솔가지를 얹고 채반을 앉힌 다음 빵을 쪘다. 그 덕분에 입안에 사르르 녹는 첫 번째 찐빵 맛은 언제나 내 차지였다. 아궁이의 불기운 때문에 서서히 졸릴 때쯤이면 나는 습관처럼 찐빵의 개수를 헤아리곤 했다. '구백오십다섯, 구백오십여섯, 구백오십일곱......,' 이렇게 일 천 개의 찐빵이 커다란 다라에 피라미드처럼 수북이 쌓일 때쯤이면 어느덧 동살이 터왔고 그때서야 우리 가족의 고단한 찐빵 만들기도 끝이 났다. 등굣길 내 교복에는 언제나 흰 밀가루가 풀풀 날리곤 했다.

그 시절 오일장은 산골사람들에겐 큰 즐거움이었다. 장날이면 사람들은 이른 아침부터 팥이며 마늘 고추 참깨들을 지고이고 읍내장터로 속속 모여든다. 좌판마다 풍성한 먹거리와 생필품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약장수의 풍악소리와 차력사의 기합소리 튀밥 터지는 소리에 조무래기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곤 했다. 남정네들은 벼릴 농기구들을 대장간에 맡기고 일찌감치 낮 술판을 벌인다. 점심때가 되면 아낙들은 생필품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우리 집을 찾았다. 먹을 것이 궁하던 시절이기에 찐빵은 단연 인기였다. 구공탄에 데워진 투실한 찐빵에 어머니만의 특별 래시피인 멸치국물을 곁들이면 한 끼 요기로는 그만한 것이 없었다. 찐빵을 일찌감치 떨이하는 날이면 집 앞 목련 꽃도 좋은지 벙실벙실 꽃망울을 터트린다. 어머니는 흡족한 표정으로 불룩한 전대를 나에게 맡긴다. 나는 지전과 은전 동전들을 가지런히 분류하곤 그날의 매출을 어머니에게 보고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벙긋벙긋 지전을 세시다가 "옛다!"하시며 은전 몇 닢을 나에게 던져주시곤 했다. 이때다 싶어 옆에서 지켜보던 동생들의 손들도 어머니 앞으로 오르르 모여들곤 했다.

어머니 떠나신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먼 산 묵뫼에 칡꽃이 피고지고 새파란 풀뱀이 묘혈을 파는 시간이다. 언 손 호호 불며 만들던 찐빵도 당신에 대한 기억도 이젠 가랑잎처럼 바스락거린다. 나는 너무 멀리 와 있고 당신은 아련하다. 이제 그리운 것들은 그리운 곳으로 돌려보내야 할 시간이다. 말랑하던 슬픔을 밀치고 오늘은 먼 곳에서 당신을 바라본다. 먼 산촌의 누옥에서 방안 가득히 찐빵을 수놓으며 한생을 헌화하신 당신, 자식이란 덫에 걸려 그믐처럼 사위어 간 당신의 희생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당신을 무럭무럭 파먹으며 어머니란 이름으로 희생을 미화했던 나의 죄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어머니를 삭제하니 가시밭길 애련히 걸어가던 한 여자의 일생이 보인다.

찐빵 한 봉지를 사들고 찐빵가게를 돌아 나오는 길, 고개를 드니 어느새 해가 서천에 걸려있다. 어머니는 아직도 그 집에서 찐빵을 만들고 계실까. 멀리 목련하늘 너머로 하얀 찐빵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른다. 찐빵이 익어가는 저녁이다. 손에 든 찐빵 한 개를 입에 넣으니 달디 달다. 어머니가 사르르 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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