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달 아래서
김애자
그이는 하현달 아래서 생의 층계를 내려가고 있다. 희미한 그림자를 앞세우고 천천히 가벼운 걸음으로 내려가고 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 직장이란 조직에서 성과 비율에 따른 경쟁과 갈등에서 벗어난 지 25년이다.
그 무방한 세월이 그를 달관시켰다. 어제와 그제, 그리고 오늘과 내일이 별반 다르지 않다. 굴곡 없는 수평적인 일상의 연속이지만 그는 높은 것과 낮은 것의 차이란 결국엔 아무 것도 아니란 것을 안다. 부자란 개념도 현재 내가 가진 것보다 더 원하지 않으면 평온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가을 산에서 나뭇잎 떨어지는 걸 보고 깨달았다고 한다.
가을이 깊어지면 나무들은 열매와 잎을 모조리 땅으로 내려 보낸다. 다 털어버리고 가벼워져야 폭설과 삭풍에 다치지 않음을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지독한 유물론자로 혹은 대의명분을 내세워 정치판에서 내로라하는 권력을 지키기 위해 한 생을 소모했어도 죽음 앞에선 새 한 마리 목숨보다 낫지 않다. 날숨과 들숨이 멈추면 생전에 누렸던 권력과 명예, 재산도 쓰임이 없어진다. 그걸 거머잡고 놓치지 않으려고 폭설과 삭풍에 수없이 매를 맞으며 고달프게 살아왔을 뿐이다.
우린 80평생을 서민으로 살아왔다. 나는 주부로 살림을 맡았고, 그는 축산학과 출신으로 우수한 소의 혈통으로 축산사업 발전에 30년 간 기여하고 돌아왔으니 버릴 것도 털어 낼 것도 없다. 그 가벼움이 안분지족이란 둥우리를 만들어 주었고, 삶의 여백을 안겨주었다.
그래 우린 해마다 섣달그믐날 밤이면 캔 맥주 두 개를 따들고 건배를 하면서 행복리스트를 점검한다. '매일 감사하기' '매일 만족하며 살기' '내가 가진 것 조금 덜 쓰고 나누기' '운동 꾸준히 하기' '서로 자기주장 내세우지 않기'로 정해 놓고 실천의 성과를 조율한다. 그리곤 끝으로 로버트 번스의 '올드랭사인'을 듣는다.
다섯 가지 원칙 안에서 그가 가장 성실하게 실천하는 루틴은 아침 운동이다. 눈만 뜨면 곧바로 양치질을 한 다음 20여 가지 운동으로 하루를 연다. 운동 한 시간 후에 아침 식사하기, 아침 먹고 나면 밥값으로 아내가 정해준 자기방 청소를 시작한다. 매번 밀대로 방바닥을 닦을 적마다 <메기의 추억>을 흥얼거린다.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앉아서 놀던 곳'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1960년대 초 충북대학 캠퍼스에서 친구들과 막걸리를 마시고 떼창으로 부르던 발라드풍의 번안 가요다.
그에게 메기의 추억은 청춘에 대한 그리움의 광장일 터이다. 갓 대학에 들어간 스물한 살 청년이 선배 혹은 친구들과 막걸리 잔을 부딪치면서 건배를 목청껏 외치면서 술잔을 입술에 댈 적마다 막걸리의 특유한 향은 짜릿할 정도로 미각을 자극했을 것이다. 취기가 온몸으로 번지면 태산이라도 들어 올릴 것 같은 쾌활한 호기를 부리며 스크럼을 짜고 캠퍼스 잔디밭으로 몰려가 불렀던 노래를 기억의 파일에서 꺼내들고 밀대로 방바닥을 닦으며 흥얼거린다.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육체가 노쇠해지면 지나간 날들을 그리워하게 된다. 서쪽으로 기울어가는 시간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는데, 할 일 없이 적막한 일상에 갇히면 궁핍으로 얼룩졌어도, 배신과 화해의 경계에서 골머리를 앓게 했던 사건들마저도 그리움으로 윤색된다. 별것 아닌 사소한 것들조차 그리움의 너울을 쓰고 웅얼거림으로 다가온다.
아내와 청소를 마치면 커피 타임으로 들어간다. 아내가 타준 커피를 마시는 그는 늙은 아내가 눈부처다. 삼시세끼 꼬박꼬박 밥상 차려주는 아내는 중력과 인력의 법칙 안에서 존재하는 80억 인구 중에서 만난 사람이고, 가장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사이다. 아내 역시 남편이 눈부처다. 그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삼시세끼 밥상을 차리겠는가.
아내와 커피타임이 끝나면 자기 방으로 들어가 중앙지와 지방신문을 읽는다. 그 다음은 한 시간 산책하고 돌아와 두 시간 정도 낮잠을 즐긴다. 대신 밤이면 이슥하도록 고전을 읽는다. 그는 하현달 아래서 눈부처를 믿고 마음 내키는 대로 인생의 뜰을 거니는 천진한 지구의 소요인(逍遙人)이다.
출처 : 데일리한국(https://daily.hankooki.com)
김애자 '하현달 아래서'...'계간수필' 여름호 게재
작가의 시선은 대상의 정수(精髓), 곧 핵심에 가 닿아야 한다. 동시에 그를 가로지르며 그 너머를 향해야 한다. 이때 상상력은 빛나는 날개를 펴고 연결될 것 같지 않은 두 대상 사이의 유사성을 찾아내어 새로운 의미로 탄생시킨다.
김애자의 <하현달 아래서>는 노년의 시간을 ‘하현달 아래'라는 아름다운 공간적 이미지로 전이시켜, 달관에 이른 노년 풍경을 완성한다. "그이는 하현달 아래서 생의 층계를 내려가고 있다" 첫 문장은 하현달의 희미한 빛 아래 생의 층계를 내려가고 있는 그이의 이미지를 통해 몽환적인 장면을 그려낸다.
인생의 밤에 접어들었으나 달빛이 감싸고 있으므로, 밤과 '하현달' '아래' '내려가다'로 중첩된 하강의 강도가 묽어진다. 이 느낌은 이어지는 문장 "천천히 가벼운 걸음으로 내려가고 있다"에서 확고해진다. 내려가고 있지만 서글프지 않고, 억울함이나 미련, 노욕에서 자유로운 것이다. 가을이 깊어지면 나무들이 열매와 잎을 땅으로 내려보내듯, 다 털어내 가벼워진 상태인 것이다.
이러한 태도가 몸에 배기까지엔 성실하게 살아온 80년의 시간이 존재한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30년간의 직장생활을 충실히 마쳤고, 그 책임으로부터 벗어난 지 2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무방한 세월이 그를 달관"시켜 '굴곡 없는 수평적인 일상의 연속' 속에서 '높은 것과 낮은 것의 차이란 결국엔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알며, '현재 내가 가진 것보다 더 원하지 않으면 평온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런 가벼움이 '안분지족이란 둥우리'와 '삶의 여백'을 안겨주었음을 인식한다.
두 사람은 '가장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사이'로 서로에게 '눈부처'이므로, 남편의 행동과 생각은 작가의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고 있어 핵심을 비껴가지 않는다. 그가 방 청소를 하며 대학시절 친구들과 부르던 <메기의 추억>을 흥얼거리는 모습에서 그의 젊은 날을 상상하는 한편으로 시간이 지나면 그리움으로 포장된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는 데서 잘 드러난다. "골머리를 앓게 했던 사건들마저도 그리움으로 윤색된다" "사소한 것들조차 그리움의 너울을 쓰고" 다가온다는 문장은 이런 시선에서 가능한 것이다.
이로써 이 글은 성실하되 엄정한 삶의 태도에서 우러나올 때 아름다운 비유와 이미지는 장식이 아니라 삶과 글의 핵심임을 보여준다. 마지막 문장을 "마음 내키는 대로 인생의 뜰을 거니는 천진한 지구의 소요인(逍遙人)이다"로 첫 문장을 변주함으로써, 공자의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慾 不踰矩)'에 이른 노년을 제시하는 동시에 수미상관 구조로 원숙하게 마무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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