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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옛길을 걷다/허정진

에세이향기 2024. 11. 24. 07:08

옛길을 걷다/허정진

길은 만남이고 소통이다. 인연을 만들고 세상을 만난다. 가고 오는 숨탄것들의 통로이고 울고 웃는 인생극장의 여백이다. 길목을 지나는 바람의 층계마다 사람 살아가던 시간과 풍경들이 시시각각 저장되어 있다. 그들만의 이야기와 숨결, 몸짓과 냄새들이다. 과거와 현재도, 미래와 영혼도 모두 길의 연장선상이고 삶의 여정이다. 하늘엔 새의 길이, 강에는 숭어의 길이 있다. 그대에겐 그대의 길이, 나에게는 나의 길이 있다.

길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햇살이 따뜻한 곳을, 별빛이 반짝이는 곳을 연정으로 발걸음 하다가 오솔길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강물 흐르는 대로 구름에 달 가듯이 고독으로 걷다가 나그네 길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처음 가는 길에는 이름이 없다. 그냥 발자국이고 흔적일 뿐이다. 화석처럼 나도 그 길에 삶의 무게를 얹어 보고, 전설처럼 나도 그 주인공이 되어보아야 비로소 그 길이 존재한다.

옛길을 걸었다.

산골에 사느라 무시로 산속을 찾다 보면 숲 속에 숨겨진 유적 같은 옛길을 우연히 만난다. 문경새재나 산막이 옛길처럼 관광지로 개발된 곳이 아니어서 오히려 선인들의 발자취와 숨결이 더 원초적이고 원형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산색 고운 가을빛 짙은 날, 동반도 지향도 없는 발길로 그 길을 따라가 본다. 잃어버린 순결한 영혼을 찾듯, 꿈꾸어오던 삶의 해답이라도 찾아 나선 듯 보폭과 걸음을 산새 울음에 숨죽여가며 시간의 흐름 속에 빠져든다.

수풀이 우거지고 초목이 울창하게 차지한 옛길은 이젠 산짐승들만이 이용하는 숨은 길이 되었다. 허리를 굽혀 나뭇가지를 피하고 가시덤불에 몸을 찔려가며 불편한 걸음이지만 마음만은 흠결 없이 자유롭고 여유롭다. 여기저기서 좁은 오솔길이 출몰하여 시작점이 되고, 가마나 지게꾼이 비켜 지나갈 수 있게 달구지 폭의 길이 산마루를 향해 미지의 세계처럼 이어진다. 혹시 그럴까. 앞마당을 오가던 나의 동선이 대문 밖 고샅길로 이어지고, 마을과 마을을 지나 산길과 바닷길이 되었다가 멀리 유라시아 대륙과 산토리니 파란 지붕을 거쳐 윗마을 재 너머로 되돌아와 연결될 수도 있는 것일까.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고, 보부상들 장사하러 다니고, 동네 처녀들 옆 고을로 시집가느라 옷고름 눈물 적시던 길이였으리라. 입신양명이나 부귀영화, 연정이나 구도를 쫓는 세상살이 발걸음이 사시사철 번잡했으리라. 둥치 큰 나무들의 거친 수피마다 한 세상 살다간 민초들의 애환과 사연들을 구구절절 품고 있는 듯하다. 조금만 눈길을 주고 마음을 열면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를 봇물처럼 쏟아낼 것 같다.

산봉우리 깔딱 고개쯤에 이르면 산세와 마을이 한눈에 굽어보이는 사방이 훤히 트인 언저리 길이 나온다. 모두들 여기서 쉬어갔을 테다. 펑퍼짐한 너럭바위나 나무 등걸에 걸터앉아 가쁜 숨도 고르고 땀도 식히며 저 멀리 목적지까지 남은 발길을 눈 잣대로 어림짐작들 했을 것이다. 곰방대에 담배연기 피어나고, 갈가마귀 무리가 눈앞에 날아오르고, 사람 구분도 못하는 다람쥐는 발아래 넘나들고, 산안개 머물다 간 숲 속은 개벽의 아침처럼 청량했으리라. 고달픈 인생살이 한숨도 그 풍광 속에 마음을 내맡기며 삶의 고갯길을 넘어서고 앞으로의 희망도 다짐했으리라.

오르는 것 같지도 않은 오르막길을 따라 나선형으로 한 바퀴 돌다 보면 어느새 산중턱에 이르고 그 길은 또 천천히 내리막을 하며 다음 능선으로 끝없이 연결된다. 저리 가로질러 가면 빠를 것도 같은데 능구렁이 갈지자 하듯 하나같이 완만한 곡선이고 봉긋한 소녀 가슴처럼 완곡한 오르막이다. 하긴 지름길로 가자고 가풀막진 언덕배기로 위험하게 비탈길을 내면 가마꾼들이 얼마나 힘들고 불편했겠으며 갈 길이 천리인 나그네도 중도에 쉬이 지쳐 되레 사단이라도 나지 않았을까 염려가 된다. 조금 멀지라도 조금 천천히 가는 것이 기나긴 여정을 중도에서 포기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갈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었으리라.

눈길을 들어 멀리 보면 거기에 낮은 둔덕이 있다. 언덕을 평평히 고르느라 돌 축대 몇 개가 가지런히 쌓여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먼 옛적에 사람 손길이 있었나 보다. 무덤자리이리라. 세상 풍파를 피해 귀양살이처럼 산속에 숨어살던 어느 가엾은 가족의 안식처였을까, 상놈과 양반의 신분차이를 넘지 못한 사랑하는 청춘 남녀의 도피처였을까, 아니면 나라의 변란과 전쟁으로 산골짝으로 쫓기다 죽고만 어느 이름 모를 병사의 위령 처였을까. 세상에서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들이었으리라. 장독소래나 사금파리들도 그 고달픈 영혼과 함께 주변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것 같다.

그들도 결국은 사랑과 행복에 목매달았을 것이다. 시대를 달리할 뿐이지 사람 사는 이유와 까닭은 과거나 지금이나 매한가지가 아닐까. 현대에 산다고 해서 행복의 관념이나 가치가 더 높아지거나 커지거나 귀해진 것도 아니고, 과거에 살았다고 해서 누추하거나 하찮거나 단순한 것도 아닐 것이다. 어느 세상인들 아픔과 슬픔이 없겠는가. 어떤 의미와 가치를 두고 자기 삶을 행복으로 박음질할 것인가는 각자에게 주어진 짐이고 몫이다. 해답이 따로 있었겠는가. 자기다운 길을 자기답게 당당히 가는 것, 속리(俗理)에서 벗어나 보다 의롭고 자유로운 영혼이 그들의 삶에 증거하였기를 기대해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걸어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투어 걷지만 결국 끝이 없는 길 위에서 모두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돌아갔다. 인생이란 그런 것일 테다. 죽음을 종착지로 어슬렁대며 걸어가는 자연계의 순환일 뿐 시대를 넘어 만고불변의 육신과 영욕을 향유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한정된 생명을 가진 존재들 앞에 귀한 자와 천한 자, 잘난 자와 못난 자는 처음부터 없는 것이고 마지막은 하나같이 빈손이고 한줌의 흙으로 남을 뿐이다.

옛길을 걸으며 마음 한편에 도사린 질주의 본능을 슬며시 내려놓아본다. 조금 비우면 조금 더 여유로워지기에, 욕심과 이기심들 내려놓고 살라고 그 시인은 인생을 소풍 길에 비유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