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전어 / 정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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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여,
저무는 가을 바다로 가서 전어나 듬뿍 썰어달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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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뼈를 넣어 듬성듬성한 크기로 썰어달라 하자
바다는 떼지어 헤엄치는 전어들로 하여 푸른 은빛으로 빛나고
그 바다를 그냥 떠와서 풀어놓으면 푸드득거리는 은빛 전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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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스며드는 가을을 어찌하지 못해 속살 불그스레 익어
제 몸속 가득 서 말의 깨를 담고 찾아올 것이니
조선 콩 된장에 푹 찍어 가을 바다를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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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을 아는 것들만이 아름다운 맛이 되고 약이 되느니
가을 햇살에 뭍에서는 대추가 달게 익어 약이 되고
바다에서는 전어가 고소하게 익어 맛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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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몸속에서도 가을은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법이니
그 빈자리에 가을 전어의 탄력 있는 속살을 채우자
맑은 소주 몇 잔으로 우리의 저녁은 도도해질 수 있으니
밤이 깊어지면 연탄 피워 석쇠 발갛게 달구어 전어를 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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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금 뿌리며 구수한 가을 바다를 통째로 굽자
한반도 남쪽 바다에 앉아 우리나라 가을 전어 굽는 내음을
아시아로 유라시아 대륙으로 즐겁게 피워 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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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가을 전어 / 정일근|작성자 ksujin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