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환갑/권선희
작년 봄에 혼자된 친구가 얼마 전 선을 봤다 캅디다. 마누라 생각하면 애간장이 녹지마는 너른 과수원에 죽자 사자 복숭꽃은 피고 손은 달리니 새봄이란 것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더랍디다.
어찌 알고 붙은 중신어미가 내미는 여자 역시 사별한 촌댁이라 크게 맘 없어도 일단은 보자 했답니다. 먼 데서 고만고만하게 사는 자식들 걱정도 덜 겸요.
그런데 조건이라는 게 현찰 일억을 통장에 꽂고 월급 택으로 몇십만원씩 다달이 넣는 거라대요. 호적에도 못 오를 몸 밤낮 없을 밭일에 늙어갈 새 영감 치다꺼리까지 하다 덜컥 죽고 나면 버려질 생은 누가 책임지냐고요. 그 말도 맞지요.
혼자 살다 비비 말라 죽어도 이런 거래는 아니지 싶어 결국 파투 낸 친구가 강소주 같은 노을을 짊어지고 마누라 무덤에 엎어져 꺼이꺼이 이랬다 캅디다.
“여보게, 자네가 일억도 넘는 고귀한 사람인 줄 내는 왜 여적 몰랐을꼬 참말로 미안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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