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소에 대한 약사(略史)
박형준
옹기는 뒤뜰 장독대에
앉아 있는 것만은 아니다.
허리가 동그란 옹기를 안고 있으면
어머니를 안고 있는 기분이 든다.
두툴두툴한 옹기의 촉감이 설운 것도 그 때문이다.
지붕이 없는 변소에 앉아
어두컴컴한 땅 밑에 웅크리고 있는
옹기의 구멍을 내려다본다.
옹기는 이 집 내력을 알고 있다.
태어나서 내가 버려졌다는 느낌으로 울었던 것도
저 밑을 바라보면서이다.
파묻은 김칫독처럼 발효하는
옹기는, 저 움푹움푹 팬
밑바닥에서 깨어져나가며,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썩는 것은 따뜻하다.
지붕 없는 설움으로 떠도는 식구들이
들락거리며 별과 새와 구름을 보았던 곳,
나는 이곳에서 태어나서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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