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좋은 시

귀를 잃은 물미역 / 정영선

에세이향기 2026. 5. 17. 11:35
 

 

귀를 잃은 물미역 / 정영선


베란다 빨랫줄 생미역 여남은 가닥
변죽의 물기가 가시는 동안 갯냄새가 호기를 부려요


갯바위에 귀 붙이고 
해조음 따라 현란하게 배꼽춤 추다가
격랑의 파도에 부딪힐 때마다
더 탄탄해진 귀는
청력이 발달되어
먼 뱃고동 소리로 하루를 점치다가
잠녀의 숨비소리에 쫑긋 귀 세웠던가


바위가 젖 물린 귀 하나에 몸을 맡기면
거친 풍랑도 두렵지 않았는데
귀를 잘린 미역은 절벽 같은 깜깜한 난청 앓았을 터


정신이 붕괴된 반고흐는 한쪽 귀를 버리고
불후의 명작을 낳았다는데
귀를 잃은 미역은 
까무룩 꺼져가는 의식으로
바닷속 짭조롭한 비밀 발설하는 중이다


생미역이 바싹 말라 입을 다물 때까지의 거리는
햇빛과 바람의 주먹 구구식 셈법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