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동행 / 조현미
내겐 아주 오랜 벗이 하나 있습니다. 사는 일이 버겁거나 외따로 선 나무처럼 쓸쓸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얼굴입니다. 잡념이 너무 웃자라 부려놓을 곳이 필요할 때도 그 친구를 찾아갑니다. 마치 피접하듯 말입니다.
최상의 위로는 가만히 들어주는 게 아닐는지요. 일찍이 나의 외로움을 읽은 그는 그저 묵묵히 들어줄 뿐입니다. 등을 쓰다듬거나 찬 이마랑 뺨을 어루만지며 살며시 안아줄 뿐입니다. '쓰다듬고 어루만지고 안아주는', 어쩌면 그것이 그이만의 '사랑 방식'인지도 모릅니다.
살아오는 동안 참 많은 친구를 만났습니다. 한때, 사랑보다 우정을 앞세운 날도 있었고요. 서로를 지란芝蘭에 견주며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청할 수 있는, 김치 냄새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 어쩌니 노래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정작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나는 늘 혼자였습니다. 그땐 내가 가진 슬픔의 총량보다 그들의 무관심에 더 많이 아팠습니다. 그만큼이 딱, 내 관용의 평수인 걸 그땐 미처 몰랐습니다.
친구란 '자신의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존재'라 합니다. '이'거나 '들' 때보다 '질'때, 짐의 무게는 비로소 온몸으로 분산됩니다. 우리 몸에서 어깨보다 듬직한 지체가 있을까요. '진다'는 건 기꺼이 나누겠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한쪽 어깨가 되어, 향풀처럼 배어들겠다는 의지입니다.
돌아보니 나는 늘 마음만 앞세웠을 뿐, 그들이 휘청거릴 때 선뜻 어깨를 내주지 못했습니다. 더러 뒷모습에서 여운을 보았으나 혼을 다해 쓰다듬거나 안아주지 못했습니다. 그리곤 이 모든 쓸쓸함이 그들에게서 연유한 것처럼 날선 몇 마디를 가슴에 조준하곤 했습니다. 그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친구와의 인연도 어언 십수 년째에 이르렀군요. 십 년 넘게 살던 도시를 떠나올 때, 사실 걱정이 많았습니다. '어딘들 뿌리내리면 정이 들지 않겠냐'며 큰소리를 쳤지만, 마음은 진즉부터 흔들리고 있었지요. 제대로 정박이 되지 않은 짐처럼, 어린 딸의 불안한 잠처럼요…….
다행히 이사한 동네는 여러 모로 고향을 닮은 곳이었습니다. 오래된 봉분처럼 아늑한 산과 빼뚤빼뚤한 논밭, 풀꽃들의 십자수는 또 얼마나 아름다웠는지요. 먼 추억 안에서만 서식 중인 개구리 울음소리와 해후한 때도 그 무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과의 동행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삼백 살이 넘은 은행나무가 어느 하루 유명을 달리하더니, 고층 건물 사이 나부죽이 엎드려있던 집들이, 밭들이 곧 뒤를 따르더군요. 귀를 찢어대던 개구리 울음소리도, 풀벌레의 야상곡도 은행나무를 따라가 버렸습니다. 흔한 비문碑問도 없이 말입니다. 얼마 안 가 모혈 같은 그 자리에서 콘크리트 건물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삼백 년이란 시간이 역사 속으로 매몰되는 데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습니다.
'혼자'라는 단어만큼 쓸쓸한 말이 또 있을까요. 남편 하나 믿고 왔지만 그는 유배지를 옮기듯 지방을 전전했습니다. 기대기에 아이는 아직 어렸고 지인들은 너무 멀었습니다. 어쩌면 나는 '혼자'를 벗으려고 풍경을 그토록 헤집고 다닌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무와 풀과 꽃과 오롯이 함께할 땐 하나도 외롭지 않았거든요. 그들을 죄 떠나보낸 뒤 강대나무처럼 살았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서 있지만 이미 혼백을 떠나보낸 그 강대나무 말입니다.
그런 나를 그 친구가 불렀습니다.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묵언의 화법을 숙독한 그만이 내 깊은 외로움을 읽은 건지도요.
음지가 많은 나를 위해 친구는 늘 사랑채를 비워놓습니다. 넉넉히 볕을 쬐고 바람을 쏘이고 비를 즐기라고, 지붕이랑 창문은 부러 달지 않았다지요. 나무와 풀과 꽃과 새와 풀벌레 소리를 나만큼이나 좋아하는 그 친구는 세상 가장 너른 정원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그 어떤 건축가가 이처럼 아름다운 집을 설계할 수 있을까요. 사위, 트인 창호로 볕이 들락거리고요, 방랑벽이 심한 바람도 이곳에 들어 고된 숨을 풀어놓습니다. 우주 강 미리내에서 지느러미 팔딱이는 별찌를 낚을 수 있는 곳도, 나뭇잎에 듣는 빗소리에 귀를 씻는 것도 이곳에서야 가능합니다. 어쩌면 여기만이 우리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피안은 아닐까 합니다.
놀이 서녘 하늘에 금침을 깔 무렵, 우리는 독대합니다. 막, 봄을 밀어 올리는 순을 어르랴, 나목- 행간을 채우는 새소리에 귀 기울이랴, 하루가 짧은 친구가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시간이거든요.
이곳에서 시간은 아주 더디게 흐릅니다. 뿌리에서 길어 올린 물이 통점 끝까지 가는 데 며칠이 걸린다는 나무들의 느린 호흡처럼요. 잎을 틔우고 꽃을 피워 둥근 과일을 식탁에 올리기까지, 그들이 기여한 공을 너무 오래 잊고 있었습니다. 나뭇잎이 푸른 건, 우리들 비소처럼 삿된 마음을 고스란히 흡입한 탓인지도 모릅니다. 그 한 호흡, 호흡이 피톨처럼 흘러 숨골 지나 명命을 지탱함에도 말입니다.
가만, 나무의 등허리를 안아봅니다. 비릿한 수액이 오래된 우물에 낀 이끼 냄새 같습니다. 내가 아홉 달을 살았던 최초의 집, 자궁처럼 안온합니다. 귓가를 어지럽히던 부나비 떼가 시나브로 흩어집니다. 한 지게, 꼴짐을 부린 듯 몸이 가벼워집니다. 마음이 비로소 한 채 절간처럼 고요해집니다.
밤은 아직 깊고, 친구는 여전히 묵언수행 중입니다.
누구나 읽고 가지만 누구도 해독하지 못 한 푸른 비서秘書, 두툼한 이 한 권을 사람들은 '숲'이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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