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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마/방만실

에세이향기 2022. 2. 11. 21:03

나무도마/방만실

 

 

 

시댁 둿길을 산책할 때 개골창에 박혀있는 나무토막 하나가 눈에 띄었다. 꼿꼿하게 박혀 서 있는 것이 꽤 그 상태로 오랜 시간이 흘렀으리라 짐작되었다. 가운데 언저리를 이끼가 졸라매듯 옥죄고 있었고 보기에 반쯤은 거무튀튀하게 삭아들고 있었다.

 

뽑아 드니 숭숭 뚫린 작은 구멍이 여러 개였고 그곳에서 벌레들이 슬슬 기어 나왔다. 그나마 웟부분엔 물이 닿질 않아 나무토막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놀랍게도 크고 둥근 옹이가 박혀 있다. 그 옹이는 시커면 몰골에도 눈동자마냥 말똥말똥하게 날 바라보는 듯했다. 그대로 썩히기엔 아깝단 생각에 들고 와 말갛게 씻은 다음 그늘에서 말렸다.

 

도마라기엔 꽤 두텁고 커 보여 안반인가 싶었으나 가운데에 칼자국이 보이는 걸로 용도는 도마가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한창 때는 잔치에 빠지지 않는 삶은 문어 몇 마리쯤 척 걸쳐놓고 썰어도 아마 별 문제가 없었을테고 안반으로 보이는 만큼 떡을 내리쳐도 충분했을 것이다. 두께 때문인지 젖어있던 시간이 길었던 탓인지 꽤 정성을 들이는데도 쉬이 마르지 않았고 가장자리는 힘없이 바스러지기도 하였다.

 

시댁엔 통나무를 그대로 깎아 만든 도마가 있다. 눈독을 들인 내 성화에도 내놓질 않으시는 물건이다. 주십사 하는 내게 뭐에 쓸지 물으실 때마다 도마로 쓰겠다는 말씀을 드린 기억이 없으니 내게 그것은 고이 모셔져 물 한모금 들이키지 못하고 세월을 보내거나 사용처도 없이 귀퉁이에 처박혀 괄시라도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인지 모른다. 도마 본래의 생필품으로의 기능을 이어주고 싶으셨을 것이다. 물건이 제 수명을 다하려면 부단하게 제 쓰임새대로 사용되어야 할 것이기에.

 

그러나 본래의 기능을 다하여 닳아가는 것이 그 나름 천수를 누리믄 것이라는 생각은 하나 어디서든 주위와 잘 어울리는 사람처럼 물건도 낯선 자리에서도 그럴싸해보일 때가 있다. 여기 저기 갖다 붙여놓아도 잘 어울리는 것. 특히 나무로 만들어진 물건들이 그래 보인다.

 

언젠가 집안 인테리어 소개 코너에서 조그마한 쪽배를 세워 책꽂이로 사용하던 지혜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 전까지 목선을 책꽂이로 사용하는 사람을 못 본 까닭에 인상이 깊게 남았던 모양이다. 그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하면 배가 갖는 속성처럼 어디론가 꿈길 같은 물길을 따라 데려가 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책과, 물에 띄우면 금방 저절로 흘러갈 것만 같은 날렵한 배와의 조합은 극히 자연스럽고 한편 의미심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굳이 도마로 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제 빛깔로 아물어 가고는 있었지만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시간을 개골창에 박혀 있었을지 모를 도마였다. 물에 질이었을 것이란 생각에 그 위에 자그마한 단지들을 올려놓자 장독대를 보듯 보기에 좋았다. 생소한 자리를 얻었음에도 처음의 제 쓰임새 자리에 앉은 듯 능청스러운 자연미를 뿜어내며 거실 바닥을 차지하고 있다. 저걸 안 데려왔으면 어쩔 뻔 했을까. 보는 나도 뿌듯했다.

 

한동안 플라스틱 도마를 사용했던 적이 있다. 감자 한 알을 썰래도 칼을 받아주지 않는 도마는 튕기듯이 칼을 밀어냈다. 가뜩이나 솜씨도 없는데 소리만 요란하였다. 그런 도마처럼 나는 행여 주위와 부딪히며 지속적으로 상처 입을까 두려워하여 어떨 땐 처음부터 상대를 밀어내며 뻣뻣하게 굴곤 한다. 그래서인지 어디서든 어정쩡하게 서있는 나는 철퍼덕 퍼더앉은 나무도마가 한편 부럽다.

 

나무도마는 칼을 무수히 맞고도 칼을 밀어내지 않는다. 상처에 다시 칼을 맞아 골이 패고 물에 쓸리고 물기가 채 마르기 전에 또 다시 칼을 맞아도 리드미컬한 신명을 부른다.

 

가족이거나 가족만큼 가까운 사이라면 한번쯤 느낌직한, 각별한 예의를 차리지 않다 보니 날것의 사랑과 관심은 상대에게 상처주려 하지 않았으나 상처가 될 때가 많다. 칼자국은 문어체가 아닌 대화체이다. 심사숙고하는 문어체와 달리 도마의 무늬처럼 걸러지지 않는 대화가 날것으로 살아서 가슴에 요동치기도 한다. 그러나 칼이 도마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단지 음식재료에 날을 세우는 것일 뿐이라는 걸 확인시키듯 때론 정감 어린 충고가 되어 찍히는 칼날도 있다.

 

누군가 날더러 나무라고 하였다. 그것도 꽤 큰 나무라고 하였다. 그땐 예사로 들었지만 저런 나무도마를 깎아 낼 만큼 큰 나무라면 좋겠다고, 남에겐 칼이었을지 모를 내가 짐짓 도마인 척 내숭을 떨며 나무도마를 쓰다듬으며 그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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