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좋은 수필

몽돌/백명철

에세이향기 2022. 3. 12. 12:43

몽돌

백명철

쏴 밀려왔던 파도가 스르르 밀려나간다. 봄날 오후, 눈부신 햇살아래 바다가 고른 숨을 내쉰다. 푸근한 그 품에 안겨 눈을 감는데 신기하게도 자그락거리는 숨은 소리가 들린다. 연인들의 은밀한 속삭임 같기도 하고, 아픈 상처를 하소연하는 웅얼거림 같기도 하다. 돌이 파도에 구르며 서로 부딪히는 소리다.

드문드문 사람들이 앉아있는 바닷가에는 크고 작은 돌이 지천으로 깔려있다. 옅은 갈색, 검은 색, 회색 등 색깔은 제각각이지만 모양새는 동글납작한 것이 대부분이다. 자세히 보니 어느 돌이나 몸 전체가 부드러운 곡선이다. 얼마만큼의 세월이 흘렀을까?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구르면서 서로 다듬어 마침내 둥그스름한 모습이 되었다. 문득 저 돌들처럼 나의 각진 삶도 하루하루 밀려오는 삶의 파도에 점차 둥글게 다듬어지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한 달 전쯤, 시골에 사시는 어머니로부터 다녀가라는 전화가 왔다. 고향집의 대지를 시청에서 새로이 측량한다는 것이다. 고향 마을은 수백 년 된 농촌이라 어느 집이고 대지가 반듯하지 않고 담이 구불구불하다. 조상대대로 그렇게 살아왔다. 그간 젊은이들이 도회지로 나가고 낯모르는 사람들이 외지에서 들어오기도 했지만 마을에는 아직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번의 측량은 마을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좁은 골목길을 넓히기 위해 길에 접한 집들을 측량한다고 했다.

전화를 받은 후 나는 이웃 집 K형을 생각했다. 그는 나보다 예닐곱 살 연상으로 서로 소원한 관계에 있다. 오래 전 그의 집을 새로 지을 때 아무런 상의도 없이 한쪽의 모퉁이를 우리 집 쪽으로 내밀어 담을 쌓았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외지에 있었고 집에는 팔순을 넘긴 노인 두 분만 계셨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나는 잘못된 담을 허물고 다시 쌓으라고 K형을 다그쳤다. 하지만 아버지가 말렸다. 그렇게 하면 그 집의 뒤쪽으로 통하는 길이 좁아져서 뒤뜰 전체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덧붙이셨다. “김 서방이 우리 집에는 참 고마운 사람이었어.” 아버지는 먼 옛날의 김 서방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김 서방은 K형의 아버지였다. 그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우리 집과 서로 이웃해 수십 년간 한 가족처럼 지냈다. 그 당시 우리 집은 농가가 이백여 호되는 시골에서 물 좋은 상답 서너 자리를 가진 작은 부자였다. 할아버지의 월급을 조금씩, 끈질기게 모은 할머니 덕택이었다. 이웃집의 김 서방은 할아버지를 ‘형님’이라고 부르며 몸 사리지 않고 우리 집의 농사일을 도맡아 처리했다. 그런 그에게 할아버지는 상답 한 자리를 거저 소작하게 해주었다.

한국전쟁 당시 우리 마을은 서너 달 동안 적의 치하에 있었다. 하루아침에 세상은 뒤바뀌었고 머슴살이를 하던 젊은이가 붉은 완장을 찼다. 미처 피난을 못한 정부의 기관장이 형무소 담 벽에 세워져 총살을 당했고 내일을 알 수 없는 가슴 졸이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밤마다 저들의 사상교육이 강행되었으며 붉은 완장에 의해 인민의 억압자로 이름이 거론되는 사람은 누구나 감옥에 갇혀 무지막지한 곤욕을 치르거나 죽임을 당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무서운 소문이 돌았다. 이미 마을의 큰 부자 몇몇을 악덕지주로 몰아 요절을 냈던 붉은 완장이 마침내 할아버지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거명하려고 마을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때 김 서방은 ‘평생토록 월급을 아껴 논을 산 것이 어찌 인민의 피를 빤 것이 될 수 있느냐. 게다가 농토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닌데.’라며 할아버지를 옹호했다. 끄떡이는 마을 사람들의 고개 짓과 함께 할아버지는 가까스로 붉은 비판에서 벗어났다. 북측 군대가 물러났을 때 마을의 곳곳에는 치유할 수 없는 상흔이 남았지만 우리 집은 아무도 다치지 않은 채 온전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와 김 서방이 돌아가신 후, 내가 초등학교 삼학년 무렵 살림에 쪼들린 아버지는 김 서방이 경작하던 논자리를 회수하여 당신께서 직접 농사를 짓겠다고 했다. 졸지에 붙이던 논을 반납하게 된 K형 가족은 아버지의 처사를 원망했고 두 집안 사이에는 냉기류가 흘렀다. 더구나 K형의 두 동생이 중, 고등학생이었던 때라 형편이 많이 어려웠던 때였다. K형은 그 때부터 양조장의 술 배달꾼이 되었다. 동생들을 고등학교까지 졸업시켰지만 정작 K형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다.

양가의 틀어진 관계는 수십 년이 지나도 옛날처럼 복원되지 않았다. 대놓고 서로 헐뜯거나 비방하지는 않았지만 냉랭한 기운은 어쩔 수 없었다. 어쩌다 골목길에서 K형을 마주치면 그는 먼저 고개를 돌리고 나를 못 본체 무시해버려 모욕감으로 화가 치밀기도 했다. 이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은근히 K형이 문상오기를 기다렸으나 끝내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머니도 못내 서운해 했다. 그때 나는 그를 더 이상 상종하지 않기로 마음의 날을 세웠다.

정밀 측량결과 K형 집의 모퉁이가 우리 집 마당 쪽으로 거의 한 평정도 더 들어와 있음이 확인되었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나는 원래의 우리 집 대지로 복구하겠다는 의사를 K형에게 전했다. 그 후 거의 한 달이 지나도록 K형 측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한번 해 볼 테면 해보라’는 무언의 시위 같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좁은 골목길에서 술에 잔뜩 취해 비틀거리는 그와 딱 마주쳤다. 칠십 중반을 넘긴 왜소한 체구의 그에게서는 노년의 쓸쓸함이 시큼한 막걸리냄새에 묻어났다. 나는 목례를 한 후 그냥 지나치려했다. 그 때 시비를 걸 듯 그가 말했다.

“너, 그러면 안 돼. 네 할아버지를 봐서라도 그러면 안 되지.”

그 때 나는 그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어렴풋이 짐작했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아버지의 얘기도 떠올랐다.

물속에서 부딪히는 몽돌은 서로를 깨트리지 않는다. 바깥 육지의 돌들은 부딪힐 때 단단한 것이 무른 것을, 큰 것이 작은 것을 산산이 깨뜨리기도 하지만 몽돌은 그러지 않는다. 다만 밀려오는 파도에 함께 구르며 서로를 어루만져 조금씩 완숙한 형태, 둥근 모습으로 나아갈 뿐이다.

십여 년 전에 쌓은 담을 허물고 새로 정확히 쌓아야 할까? 그것은 아마도 두 집안의 관계를 완전히 깨뜨리는 일이 될 것이다. 나는 몽돌바닷가에 오기까지 고민이 되었다. 내게는 마당 한 쪽 구석이어서 꼭 필요한 땅은 아니지만 K형에게는 뒤뜰로 통하는 숨통 같은 땅이니 어찌 그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할아버지와 김 서방이라면 서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리라. 아버지도 새 대지를 인정하는 문서에 선뜻 서명을 하실 것이다.

나는 옅은 갈색의 몽돌을 가만히 움켜쥐며 잔잔히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본다. 답답했던 가슴이 시원하게 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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