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제비에 새겨진 마음 / 김규인 현판 뒤로 난 일곱 개의 돌계단을 오른다. 한 칸의 맞배지붕을 한 비각 안에 두 개의 비가 나란히 자리한다. 오른쪽으로 돌면 보물 제517호 영천 청제비가 보인다. 비(雨)에 젖을세라 비각은 겹으로 길게 처마를 내고 비(碑)를 품는다. 단칸 목조 비각에 들어가기까지 비는 허리가 부러지고 수백 년간 땅속에 묻혀 암울한 시간을 보냈다. 부러지고 비바람에 몸이 깎이던 시간도 지나갔다. 청제비는 부적처럼 몸에 글자를 깊이 새기고 세월을 삭였다. 세월도 삭으면 좋은 시절이 오는지, 팔작지붕의 새집을 마련하고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글자는 몸을 지켜주는 부(符)다. 의미 있는 글자를 몸의 앞뒤로 새겼기에 살아남았다. 덩치만 커다란 바위였으면 다시 빛을 볼 수 있었을까. 허리가 부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