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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막돌/김윤선

에세이향기 2023. 3. 28. 12:11

 


막돌

                                                                                                          김윤선


나는 지금 뒷마당에서 잔돌을 줍고 있다. 제 몸을 가누지 못해 늘 화병에 비스듬히 기대고 있는 행운목이 안쓰러웠는데 마침 친구가 작은 돌멩이를 채워 중심을 잡아준 것을 본 때문이다. 공연히 마음이 달뜨고 바쁘다.


모두가 막돌이다. 바로 전까지만 해도 허접한 돌멩이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새 앙증맞기까지 하다. 막 부화한 새끼들 같다. 열 손가락 크기가 다 다르듯 한 마당에서 주웠어도 크기와 색깔이 제각각이다. 검은색이있는가 하면 황색을 띤 것도 있고, 고운 결을 가진 것도 있다. 모서리가 뾰족하니 각진 것도 있고, 동글동글 닳아서 매끄러운 촉감의 것들도 있는 게 그간의 삶에 대한 제 나름의 고집으로 보인다. 소금물에 담가두면 색상이 더욱 선명해진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나서 잠시 돌을 양푼에 담갔다.


고만고만한 것들이 옹송그리고 있는 게 꼭 여학교 교실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아무렴, 어찌 재잘거림이 없을까. 계곡에서 물에 쓸려 내려온 것만 삶의 얘기를 지닌 게 아니다.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일지도 모를 세월을 땅속에서만 살아온 저들의 얘기는 또 어쩌랴. 지각을 변동할 만큼의 뜨거운 지열과 비바람을 맨몸으로 맞아온 저들의 애환, 바윗덩이에서부터이처럼 작은 돌멩이가 될 때까지의 고통, 저들의 재잘거림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친구의 집에서 본대로 화병에 나무를 세우고 헹궈낸 잔돌들을 뿌리 위에 얹은 후 물을 부었다. 과연 뿌리를 지그시 눌러 허리를 곧추세우자 푸른 이파리마저 목을 세워서 녀석의 기개가 그럴듯해 보인다. 막돌의 힘이다.
수석에 별다른 안목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물가에 가면 독특한 놈이 있나 하며 눈을 밝히던 때가 있었다. 그 때문에 시답잖은 돌멩이들이 제 살던 곳을 떠나 내 책상에 모이면서 꽤 많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언젠가 영월에 사는 집안 동생에게서 꼭 물개를 닮은 돌 하나를 얻어왔던 적이 있다. 언제 보아도 촉촉하니 물기가 느껴졌는데, 막 어미 품을 벗어나, 나, 이제 독립했어! 하듯 고개를 쳐들고 있던 자태, 길을 잃어 잘못 찾아들었다는 것도 모르는 놈이었다. 놈은 오랫동안 내 눈을 놓지 않았다.


가지고 있으면 돈이 들어온다던 흰색 돌도 있었고, 제부弟夫가 리비아에서 선물로 갖다 준 새를 닮은 날렵한 모양새의 돌도 있었고, 자잘한 꽃무늬가 마치 화석처럼 새겨져 있는 돌멩이도 있었다. 나무가 변질해돌로 변한 놈도 있었다. 그러나 나름대로 의미를 주어서 그렇지, 본질은 다 돌멩이 아니겠는가. 그래서인지 놈들은 미국 오는 내 이삿짐에 속하지 못했다. 친구에게, 형제에게 나누어 주었지만, 대부분이 땅으로 되돌아갔다. 그저 그런 모양새니 그저 그런 삶을 사는 막돌로 돌아갔으리라.


어릴 적, 고향마을엔 돌담이 많았다. 울퉁불퉁한 막돌들이 반쯤은 집안으로, 반쯤은 집 밖으로 얼굴을 내민 채 동네 안팎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큰 돌 틈새 낀 잔돌들도 제 쓸모를 드러내는 듯해서 정겨웠다. 다들 서툰 아이의 그림처럼보기에만도 웃음이 나는 후덕한 얼굴들이라 절로 순박한 고향 인심을 느끼게 했다. 특출하지도, 모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얼굴들, 막돌이 주는 편안함이다.


막돌의 쓰임이 이뿐일까. 잘게 으깨서 시멘트와 함께 섞어 건물의 단단함을 다지거나, 길을 포장하는 밑거름도 저들의 일이다. 돌창이나 돌칼의 재료가 된 것도, 남근이니 여자 생식기니 하는 돌도 따지고 보면 막돌의 기이한 형상일 뿐이다. 운주사의 천불상도, 마이산의 돌탑도 다 막돌 아니겠는가. 그러고 보면 구태여 쓰임을 가리지 말라는 호통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막돌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있는 듯 없는 듯 제 몫을 지키는 사람, 모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사람, 먼저 고개 숙이고 먼저 손 내미는 사람, 그러고 보면 제 몸으로 세상 이치를 보여주는 막돌들이 우리네 세상살이를 말하는 게 아닐까. 막돌이 흔한 이유를 알겠다.


로제타스톤이 아니어도 세상의 돌엔 유물이 많다. 어쩜 그건 우둔해 보이기는 해도 돌처럼 심지가 곧은 사람이세상의 믿음을 오래 지닌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닐까. 그러고 보면 머리가 아둔한 사람을 돌에 빗대는 건 실은 약삭빠른 인간들의 이기심이 아닐는지. 턱없이 정직한 돌, 돌은 깨질망정 휘어질 줄 모른다.
막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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