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소리 / 문육자
북소리가 날아오른다. 길 없는 하늘에 길을 만든다. 소망을 매단 소리다. 가끔은 가슴을 멍들게 하고는 매몰차게 뿌리치고 휭하니 가는 연인의 뒷모습 같다. 북은 비어 있어야 우람한 소리를 낸다. 맞아야 울음을 운다. 그 소리가 어떤 색깔을 가지든 그들은 운다.
고모는 사흘 낮밤을 할아버지로부터 매를 맞았다. 북이 아닌 고모는 북처럼 맞았다. 신이 내렸다고 했고 할아버진 집안 망신에 남세스러워 바깥에도 나갈 수 없다고 같이 목매달자고 추운 겨울인데도 홑적삼에 무명치마 입은 고모를 한을 담아 힘껏 때렸다. 오히려 고모부는 데면데면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역부족이었고 그 시린 겨울의 서리 내린 마당에서 버선발의 고모는 대를 잡았다. 신이 내렸다고 했다. 얼굴은 번질거렸고 정신없이 흔드는 대나무 끝에는 고수敲手의 손을 떠난 북소리가 한 번 걸렸다간 날아오르곤 했다. 고모보다 북소리가 마당을 채웠다. 뭐라고 지껄이는지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길을 만들며 날아가는 북소리는 댓잎 끝에서 파르르 떨다가 승천하듯 날아가고 있었다. 어린 내게 안겨주었던 북소리는 하늘로 오르는 길을 만드는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문을 닫아걸고 신음하듯 누운 할아버지보다 북소리는 더 큰 존재 같았다. 고모의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밖으로 울음을 뱉어내지 않는 북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여러 종류의 북에 딸려 있던 설명들, 그러나 분필로 희끄무레하게 겨우 형체만이 드러난 북 옆에 쓰인 설명, 동네북. 울 줄 모르는 북. 누구나 치거나 건드려도 말 없는 북, 헝클어진 머리 흔드는 여인 같은 북, 울음을 안으로 삼켜 강물 같은 물소리가 되어 흔들리기만 한다고 했다. 화를 풀어내는 북이라 했다. 크나큰 인식의 순간이었다. 어머니가 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도 그때였는데 어머닐 치고 다니지 않았건만 이리저리 마구 떠밀리는 소리 내지 않는 동네북. 아버지와 나를 단골로 둔 어머닌 종일 두들겨 맞는 동네북이었다. 아버진 사업에 실패함도 무위도식에서 오는 열등감도 뱉어내지 못하는 짜증과 무능함을 두더지 잡듯 두들기고는 휑하니 나가버리곤 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함이 무기였다. 그것은 손에 쥔 면죄부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교를 다니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음도 물론 당연한 일이었다. 수많은 결핍에서 자유로워지지 않는 안타까움을 그렇게 견뎠을까. 이름할 수 없는 설움이거나 답답함으로 점철된 젊은 날을 보낼 때 북을 치며 막힌 가슴을 뚫었다. 한 줌도 안 되는 동네북을 맘껏 때리며 숨 고르기를 익혔다. 거기에 합세하는 사람이 언니였다. 뇌성마비 아들 하나 달랑 안고 사는 멋쟁이 언니도 한 번씩 집에 들러 북을 치고는 개운한 듯 휑하니 나가버리면 그뿐이었다. 두들기고는 모르는 채 가버리면 그만이었다. 묵묵부답으로 동네북은 사위어가고 있었다. 아니 멍들어가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북은 아픈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었으니, 북은 맞아야 함을, 지금도 어디선가 맞고 있을 테니까.
가슴이 퍼렇게 저며진 북소리를 안고 어머니는 바닷가를 찾곤 했다. 처음엔 정월대보름에만 소지燒紙를 올리기 위해 바닷가를 찾더니 가슴에 북소리가 차서 운신을 할 수 없을 때 찾곤 하는 것 같았다. 아마 우리들이 북을 때리며 내뱉는 소리들을 소지에 올렸지 싶다. 소지에 불을 붙여 그 종이가 훨훨 공중에서 재가 되어 사그라질 때까지 머리를 조아리며 손이 닳도록 빌었다. 우리들이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없기를 빌고 또 빌었던 것 같다. 태어날 때부터 병약했다는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 얹힌 돌이었고 눈물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긴 시간을 그렇게 빌었을까? 결코 더 이상 동네북이 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넉넉한 평화로움으로 다시는 동네북이 필요 없기를 소망하는 작은 기도였다.
소지를 올릴 때는 훨훨 높이 올라가 까맣게 되다 못해 하얀 재로 변해야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것은 청아한 소리로 북소리가 더 긴 길을 만들며 날아가야 영험한 일이 생긴다고 하던 고모와 같은 맥락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어머니는 우리들이 건드리고 치며 두들겨도 소리 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그렇게 종이 한 장에 담아 올리곤 했던 것이다. 그건 동네북의 들리지 않는 울음이었다. 심술을 쏟아붓는 것조차도 복에 겨운 듯 아버지가 일찍 비명횡사를 하자 동네북은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혼자만이 북 하나를 가졌음을 자랑이나 하듯 의기양양하게 마구 치고 다녔다. 어머니는 결코 피하는 법이 없었다. 단지 오늘이 어제 같기를, 내일이 오늘처럼 모두가 그대로이기를 빌다 눈을 감았으니 그 막막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실컷 마음 털어낼 자리 하나 없어 아픔만을 안고 살다 간 어머니가 삭힌 인고의 세월을 조금씩 헤아리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지금도 어디선가 북은 울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북소리를 그리워하고 동네북을 갈망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모두에게 이름할 수 없는 한이 쌓여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북은 울어야 한다. 마당 한가운데서 울리던 북처럼 살아 있어야 한다. 그렇다. 북소리는 소망을 위해 길 없는 하늘에 새로운 길을 열고 휘날리는 깃발이 되는 것이다. 투명한 함성 같은 그 소리를 들어보라. 어디서인지 지금도 북소리는 그렇게 길을 열고 있으리라. 어머닌 그 소망의 소리를 가슴에 묻었으니 이젠 펄럭이는 깃발이 되어 하늘을 맘껏 유영할 것 같다. 그러다 구름 한 장 덮고 편히 쉬려나. 들릴 듯 말 듯 내뱉던 말, '저게 언제 사람 꼴 갖추나.' 이 말조차도 가슴에 안은 채 북소리가 되어 날아갔다. 울 줄 모르는 게 아니었다. 울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세상을 품고 산 어머니는 가장 크게 우는 동네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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