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칸짜리 장롱 / 전유경

반 칸짜리 장롱 / 전유경

 

여기 김포로 이사올 때 근 10년을 써오던 장롱의 한 쪽을 떼서 버리고 왔다. 시집 올 때 해 온 혼수였는데 고운 손때가 묻어 정이 든 것이었다. 그렇다고 다 싣고 와서 안방에 두자니 커진 안방 크기에 비해 장롱이 작아서 벽면이 많이 드러나 보기 흉할 것 같았다. 궁리를 하다가 연한 분홍색이라서 아이들 방에 넣어 줘도 괜찮을 것 같아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것도 역시 길이가 문제였다. 줄자로 이리저리 길이를 재보니 그 장롱 세트에서 반 칸짜리 하나만 떼어 내고 서랍장과 붙여 넣으면 그 방에 잘 맞는 한 세트의 가구가 될 것 같았다. 이렇게 몇 날을 고민하던 일은 반 칸짜리 하나를 버리기로 결정하면서 일단락되었다.
 
 이사하던 날, 경비실 앞 폐가구 수집 장소에 그 반 칸짜리 장롱이 마치 관처럼 서 있었다. 문짝이 하나인 것이라 더 쓸쓸하고 애처로워 보였다. 저만 덩그러니 남겨 두고 떠나가는 주인을 원망하는지 그 장롱은 그렇게 오롯이 서 있었다. 뒤통수가 당기고 찜찜했다. 이사 와서도 몇 날은 그 장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공부 방 베란다에 두더라도 가지고 올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애들 방에 너무도 딱 맞게 자리 잡고 있는 장롱을 볼 때마다 두고 온 장롱 생각이 났다. 다 쪼개지고 태워져 재가 돼 있을지도 모르는 그 반 칸짜리 장롱이 불쌍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마치 같이 살았던 식구 하나를 떼 놓고 온 것처럼 허전하고 맘이 무거웠다. 그래도 그것이 버려졌기에 나머지들이 제대로 쓰임새가 생겼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위안을 삼았다.
 
 이렇게 나는 내가 쓰던 물건 버리는 것을 힘들어한다. 오래 쓴 물건이고 아끼던 물건은 더 그렇다. 가지고 있어 봐야 군더더기 쓰레기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버리지를 못한다. 살이 쪄서 못 입는 여름옷이 한 상자나 된다. 내년 여름에는 입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반듯반듯하게 개서 상자 안에 잘 넣어 두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내년 여름에도 그 상자 안에 꼼짝 없이 들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버리질 못하겠다. 결혼 전에 입었던 정장 옷들도 얼마 전에 동생이 왔을 때 버려 줘서 정리를 했다.
 
 허섭스레기처럼 쌓여 있는 건 그릇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돈을 주고 맘에 드는 것을 골라서 산 것이 아니라, 음료수나 간장 같은 것을 사면 옆에 끼워서 주는 그릇들이 씽크대 한 칸을 차지하고 있다. 예쁘지도 않고 쓸모도 없는 것들인데 이사를 두 번이나 다니면서도 못 버리고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 그래서 정작 새 그릇들이 정리가 안 되고 포장된 채로 있는 것도 있다.
 
 잘 버리지 못하는 내 성격 탓에 쌓아 두고 있는 것이 어디 물건들뿐이랴. 훌훌 털어 버려야 할 전혀 좋을 것 없는 기억들도 버리지 못하고 가슴속에 켜켜이 쌓아 두고 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중학교 동창에게 전화를 받고 나서 그 친구와 다투었던 일을 떠올리기도 하고, 이사 오기 전에 친했던 정은이 엄마를 생각할 때도 그이가 나에게 거짓말하고 속였던 좋지 않은 일을 떠올리며 분개하기도 한다.
 
 결국에 이런 나쁜 기억들이 좋은 날 모인 친정 식구들을 울리고 말았다. 큰집으로 이사한 딸 자랑하시려고 엄마가 외할머니를 모셔 오고, 그 참에 인천에 사는 이모들도 초대해서 자연스럽게 외가 분들을 모신 집들이가 된 날이었다. 외할머니의 딸들에 또 그 딸들의 딸이 모이니 재미있었다. 그 딸들이 안방에 모여 누워 옛 이야기를 했다. 사랑방 벽장 속에 인삼 잰 꿀을 감춰 두시고 혼자서만 드셨던 구두쇠 외할아버지, 그런 분이 외손녀 발에 누렇게 퍼진 고름을 입으로 빨아 짜내 주시며 애타하셨던 일, 그리고 여름 방학이면 어린 우리들을 즐겁게 해 주었던 시원한 냇가와 포도밭 이야기들을 쏟아 놓으며 우리는 옛날의 외가에 가 있었다. 그리움과 웃음이 안방에 가득 찼다. 그런데 이 좋은 분위기에서 내가 주책이지 서러웠던 유년 시절의 한 토막을 툭 꺼내 놓고 말았다. 마음속에 혹처럼 달려 있었던 씁쓸한 기억을 어리석게도 그 좋은 날 끄집어 낸 것이다. 공장에 나가 일하셨던 엄마가 내 초등학교 졸업식에 오지 않아 졸업식 내내 우울했던 일이 생각나자, 어떤 영화에서 보았던 까만 머리카락을 풀어 헤치고 텔레비전 밖으로 스멀스멀 기어 나오던 귀신처럼 내 가슴속에서 아린 기억들이 그렇게 기어 나와 마침내는 연탄가스에 대한 안 좋은 기억마저도 떠올렸다.
 
 그 당시에 많은 아버지들이 그랬듯이 우리 아버지도 해외 건설 노동자로 말레이시아에 나가 계셨는데 알뜰한 엄마는 아버지가 보내오는 돈은 다 저축하고 생활비는 엄마가 벌겠다며 인형 봉제 공장에 나가 일하셨다. 그래서 동생들 돌보는 것은 큰딸인 내 몫이었다. 그 날도 야근하시던 엄마를 기다리며 동생들과 놀다가 잠이 들었는데 옆집 아주머니와 엄마가 깨워 일어나니 머리가 너무 아프고 속이 메스꺼웠었다. 그게 연탄가스를 맡은 거였다. 엄마는 우리에게 동치미 국물을 떠 먹이는 것으로 응급조치를 끝내셨다. 헌데 그 때 맡았던 연탄가스가 문제였던지 여동생이 난치병인 재생불량성 빈혈에 걸려 지금도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 늘 그게 마음에 걸렸던 나는 옆에 누워 있는 엄마에게 우리가 연탄가스 맡았을 때 엄마가 우리를 병원에 데려가서 치료를 제대로 받게만 했어도 막내가 그런 병엔 걸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 버렸다. 좋은 날 즐거웠던 수다가 엄마의 눈물로 끝났다. 후회와 안타까움으로 엄마도 나도 말을 잇지 못했다. 얼마나 모질고 잔인한 말이었는지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 버렸다.
 
 왜 내 가슴속엔 이렇게 아프고 아린 기억들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꺼내 놓아도 좋은 얘기감도 되지 못하는 가까운 사람들을 울리는 슬픈 기억들이 가슴 한 칸에 쌓여 있다. 서럽고 억울하다고 느꼈던 기억은 그 사람의 마음을 독하고 모질어지게 한다. 누렇게 바래고 먼지가 쌓인 그것들은 그리움이 도지 못하고 상처만 준다면 버려야 할 폐품인 것이다. 버려야했던 그 반 칸짜리 장롱 같은 기억들이라면 버리는 것이 현명한 일일 것이다.
 
 가끔 꺼내 보면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도는 사진이 있다. 촌스런 바가지머리로 똑같이 자르고 차려 자세로 나란히 서서 찍었던 어릴 적 우리 형제 사진이다. 이 사진처럼 푸근하고 정감있는 기억도 내겐 많다. 비록 낡은 중고였지만 아버지가 얻어다가 새것처럼 고쳐 주셨던 자전거 때문에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소시지 없이 김치만 넣어서 싼 김밥 들고 식구들이 함께 올랐던 남한산성 계곡, 초라하고 남루한 나들이였지만 그 곳의 바람소리는 얼마나 청량했는지 산새소리는 또 얼마나 맑고 정겨웠는지, 이제 그런 기억들을 꺼내 보아야겠다.
 
 더 늦기 전에 또 주위 사람들을 울리기 전에 내 기억들을 분리배출 해야겠다. 간직할 가치가 있는 것은 소중히 간직하고, 남을 원망하고 미워하게 만드는 기억이라며 미련 없이 버리자. 그리고 그것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다정하고 행복했던 기억들로 채워 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