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광 저수지/김평엽
여기에 천만 근 무거운 소리들 가라앉아 있구나
사람과 사람들에 버림받은 소리들 종적을 감추더니
이곳에 와 거대한 슬픔 이루고 있었구나
세상에 제대로 된 슬픔 이루고 있었구나
세상에 제대로 된 슬픔 하나 머물지 않던 이유
알겠다, 내 언제 굵은 슬픔 만나보았으랴만
작달막한 슬픔들만 남아 수다스런 세상,
그 얄팍한 세상에 빠져나와
이곳에 이룩한 거대한 슬픔을 만나노라
세상의 파릇한 슬픔이 평화를 누리는 곳
이곳이 슬픔의 천국, 신성한 소도임을
수면을 날으는 가마우지조차 지그시 눈 감고
만취의 비행 즐기지 않느냐
하늘에 깔린 꽃보다 더 반짝이는
저 수천 수만 애태울 것 없이 그저 맑은 물빛으로
맑은 것끼리 은빛 피라미 쑥쑥 낳는
저 세례 받지 않은 것들이 내 머리에 손을 얹나니
지혈되지 않던 누이의 울음을 청둥오리가 호위하는 이곳
아, 그래서 장마철 수문 열면 탱탱 불은
슬픔들 터져 나오는가
바닥에 깔린 천만 근의 하얀 찌꺼기 토해내는가
반짝이는 모든 것엔 슬픈 내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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