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迷路)/정재순
환희 같은 은빛햇살이 찰랑거렸다. 서늘한 바람을 한가하게 가르며 날아다니는 철새들의 정경은 그림이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흙길에서 나무를 만나고 늪을 만나고 갈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도 눈짓을 나누었다. 숲처럼 으슥한 곳에서는 웅덩이도 만났다.
거울처럼 말간 웅덩이 속에는 나무들이 거꾸로 서 있었다. 웅덩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물끄러미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무수한 갈래로 이리저리 얽힌 빈 가지들이 미로 같았다. 잠시 동화책 속에 앉아있는 착각이 들었다.
늪을 한 바퀴 도는데 두 시간쯤 걸린다고 했으니 산책을 마칠 쯤에는 해가 질 무렵이다. 남편과 나는 우포늪의 적나라한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기대로 한껏 부풀었다. 늪을 감싸 안은 길에는 나란히 자전거를 타는 연인들, 종종거리는 아이들을 앞세운 가족도 더러 보였다. 까르르 웃음소리가 여울 속으로 퍼져나갔다.
이 늪의 조각배가 있는 장면을 화면으로 본 적이 있다. 두 시간은 족히 걸었으나 어인 일인지 조각배가 보이지 않았다. 색다른 운치가 느껴지던 그 곳이 왜 눈에 띄지 않는 걸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한 바퀴를 다 돌아야한다는 일념으로 나아갔다.
어느 순간에 사람들이 사라지고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혼자였다면 무서울 텐데 그가 곁에 있는 낯선 적요는 오히려 아늑하기 그지없다. 별도 달도 어디로 숨어버리고 두 사람의 발자국소리만이 정적을 깨웠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까 휴대폰을 등불삼아 살금살금 걸었다.
세 갈래 길모퉁이에 걸린 방향팻말을 발견하자 눈이 번쩍 뜨였다. 허나 아는 글자임에도 불구하고 어디를 말하는지 알 수가 없어 문맹자나 다름없었다. 이제 늪을 돌아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차가 있는 주차장을 찾아가야 하는데,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조차 오리무중이다.
발길 닿는 대로 걷는 이 길이 제발 우리가 가야 할 길이기를 빌었다. 징검돌을 밟으며 개울을 건넜다. 구비 진 늪을 몇 차례 지나고 예닐곱 채의 집이 있는 마을에 도착했으나 사람이라곤 구경할 수가 없다. 야트막한 산을 넘다가 오던 길을 뒤돌아보니 어두움이 깔린 늪이 거기 있었다. 해가 환하게 비추는 낮에야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겠지만, 달빛도 불빛도 없는 밤에는 그저 넓고 깊은 늪일 뿐이었다.
배터리가 한 눈금밖에 없는 휴대폰을 꺼 두었다. 희끄무레한 하늘빛에 의지하며 앞만 보고 걸어 왔는데 어찌 된 일일까. 아까 건넌 개울을 또 만나고 말았다. 왠지 가야할 목적지와 더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이러다간 여기서 밤을 지새워야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꿈틀거렸다.
마음을 다잡은 우리는 발을 맞추며 전진했다. 또 다른 작은 마을을 지나 시멘트로 단장한 길이 나오고서야 떡하니 조각배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제야 이 늪이 엄청나게 넓은 곳이라는 짐작이 갔다. 그토록 기다렸던 조각배를 휴대폰으로 비춤과 동시에 충전하라는 경고등이 떴다.
밤은 자꾸만 깊어지는데 으슬으슬 춥고 다리도 아팠다. 더 이상 우리 힘으로 주차장을 찾는다는 건 무리일 것 같았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이 늪에서 헤맬 것이 아니라 구조요청을 하더라도 일단은 도로에 나가야겠다고 마음을 추슬렀다. 저 멀리 가로등 비스무리 한 것이 보여 그쪽으로 발길을 재촉하니 이차선 도로가 나왔다. 버스 정류장임을 알리는 불빛이 늪의 안내판을 비추고 서 있었다. 운행 시간을 넘긴 정류장은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예기치 못한 일은 이렇게 해서 벌어지는구나, 살다가 이런 일도 겪을 수 있구나 싶었다. 겨울이 저만치인데 시골의 늦가을 밤공기는 장난이 아니었다. 시린 볼을 손으로 비벼도 온 몸에 한기가 몰려왔다. 간혹 자동차가 달려오기에 손을 들고 신호를 보냈으나 그냥 쌩쌩 지나쳐버렸다. 흉악한 사건이 빈번한 요즘에 어느 누구인들 야밤 이 한갓진 곳에서 낯선 사람에게 차를 세워줄 수 있으랴.
순간 저 멀리서 트럭 한 대가 좌우로 불빛을 비춰가며 천천히 오고 있었다. 반가움에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도망을 치듯 트럭은 더 외진 옆길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그들은 한밤에 짐승들을 잡는 밀렵꾼들이라고 그가 일러주었다. 이러다가 폰의 배터리가 동이 난다면 아무런 대책이 없을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절박함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콜택시가 전화를 받지 않아 어쩔 수 없이 119에 도움을 구했다. 누르기만 하면 무엇이든 해결해 주리라 철석같이 믿었건만 연결이 되지 않긴 마찬가지였다. 귓속에서 윙 소리와 함께 머릿속까지 아득해졌다. 온몸이 마구 떨렸다. 휴대폰은 죽어간다고 깜빡깜빡 야단인데 몇 번을 다시 걸어도 매한가지였다. 애가 바짝 탔다.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제법 떨어진 도시의 119로 통화를 시도, 연결에 연결을 거듭한 끝에 겨우 택시를 보내달라는 도움을 청할 수가 있었다.
꽁꽁 언 눈과 코와 입은 내 것이 아닌 냥 분리되려 갖은 용을 써댔다. 잔뜩 옹그린 자세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딱딱 어금니를 마주치며 자극을 주었다. 일 분이 여삼추 같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저기 구세주 같은 택시의 불빛이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더러 있었던 모양이다. 택시기사는 늪을 다 돌아보려면 종일 걸어도 모자란다며 자상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름길로 달렸는데도 주차장 까지는 삼십 분이나 걸렸다. 조금만 더 미련하게 버텼다면 밤새도록 늪에 서 달달 떨었을 것이다.
갈대가 서걱거리는 밤에 늪은 우리에게 잊지 못할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설마 무슨 일이 있으랴, 하고 인터넷으로 검색한 내용을 대충 읽고선 길을 나섰다. 그 결과가 얼마나 대략난감한 일인가를 제대로 경험한 날이었다. 평소에 초행길은 안내지도를 유심히 살피는데 그것마저도 깜빡 했던 것이다. 마치 나무를 거꾸로 비추던 웅덩이에 홀렸다가 빠져나온 것만 같았다.
누가 언제 무슨 일을 겪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비록 미로(迷路) 속을 헤맨 건 몇 시간이었으나 사람살이가 돌아다보였다. 살아온 환경이 판이하게 다른 그이와 부부의 인연을 맺은 지 수십 년이니 숱한 사연이야 말해 무엇 하리. 탄탄대로의 화창한 길도 더러 있었으나 까마득하고 어둑한 미로가 더 많았다. 기나긴 생의 여정에서 되돌아가야 하는 어귀에선 둘러서 가고, 방향을 잃었을 땐 둘이 한 마음이 되어 한 걸음씩 천천히 걸었다. 그러면 마구 달리던 때 보다 더 많은 것이 보였고 더 많은 것을 이뤄 낼 수 있었다.
세상의 일이란 단번에 얻어지는 기쁨보다 옹차게 매달렸음에도 얻지 못하고 깊은 좌절감을 맛보기가 십상이다. 하지만 재깍재깍 시간이 흘러가듯 모든 것은 지나간다. 궁지에 몰리는 지독한 고통도 세월이 지나면 별스럽지 않은 것처럼 생각된다. 꽃이 흔들리면서 피는 것처럼 사람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가운데 여물어진다. 어렵사리 이루어가는 과정을 겪으면서 서로 간에 애틋한 속심이 생기고 더 돈독해지는 것이다. 언제나 길은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다. 끝없이 자전하는 우주처럼 우리들의 삶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오늘에서 내일로 매순간이 미로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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