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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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잉아/이상수

에세이향기 2024. 1. 5. 03:18

잉아/이상수








   날실을 걸자 베틀 위로 흰 강물이 흐른다. 수백 겹 가닥이 물결이 되어 잔잔한 파문을 만든다. 잉앗대가 위로 들려지고 그 사이로 씨실을 넣고 바디를 조여 베를 짜기 시작한다. 덜그럭 탁, 덜그럭 탁, 어머니는 한 척의 돛단배처럼 밤늦도록 강물 위를 덜컹거리며 떠다닌다.  
  잉아는 베틀의 부품이다. 날실을 한 칸씩 걸러서 끌어올리도록 고정해 놓은 굵은 줄을 말한다. 실이 헝클어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날실을 촘촘하게 매어놓은 모양이 마치 국숫발을 장대에 널어놓은 것 같다.  
  스물하나에 어머니는 동갑내기 남편을 만났다. 아버지는 결혼하자마자 학생이던 시동생 둘을 맡기고 입대해버렸다. 오롯이 가장이 된 당신은 병환으로 앓아누워 있던 시모를 비롯한 세 식구를 혼자서 감당하게 되었다. 남편을 대신해 집 안팎을 챙기게 되었지만 막내로 자라 집안일이라곤 전혀 몰랐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농사는 물론 밤엔 늦도록 베를 짜기까지 했다. 꾸벅꾸벅 졸다 베틀에 이마를 찍는 일도 있었다. 너무 벅찬 현실 앞에 혼자 눈물을 찍어내기도 다반사였다. 무엇보다 고된 일을 끝내고 자리에 누우면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게 더 힘이 들었다.  
  모시를 짜는 일은 손이 많이 가는 거친 작업이다. 어머니는 팔월 땡볕 아래서 혼자 모싯대를 베어 날랐다. 깻잎같이 생긴 이파리를 뜯어내고 바깥 줄기를 벗겨내면 하얀 속껍질이 나왔다. 물에 적셨다 햇볕에 널기를 네다섯 차례 거치면 모시타래가 태어났다. 어머니는 태모시를 이로 가늘게 쪼개어 머리카락처럼 굵기를 일정하게 만들었다. 그런 후 두 올의 양 끝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침을 발라가며 손바닥으로 비벼 길게 이었다. 실을 잣느라 입은 헐고 무릎은 헐고 벌겋게 부어올랐다. 
  아버지가 제대를 하고 나자 어머니의 새벽은 더 일찍 시작되었다. 아버지가 도시에 옷가게를 차렸기 때문이었다. 기차시간에 맞추기 위해 날마다 새벽밥을 지었다. 가장이 또 다시 자리를 비운 집에서 당신은 여전히 할 일이 많았다. 도시에선 끊임없이 이상한 소문이 들려왔다. 새로 생긴 옷가게에서 말만 잘하면 옷을 아주 싸게 판다는 것이었다. 장사수완이 없는 아버지는 이익을 남기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가지고 있던 전답을 처분하여 그 손실을 메워나갔다. 남은 토지마저 내놓았을 때 어머니는 그만 땅에 드러눕고 말았다. 차라리 나를 팔라며 목숨을 걸고 반대하자 그제야 가게를 처분했다. 괜히 미안함을 감추려고 아버지는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며 어머니에게 원망을 쏟았다.  
  잉아가 날줄을 잘 지탱해주어야 제대로 베가 짜지듯 어머니는 흔들림 없이 집안을 잘 챙겼다. 그러나 농사에 마음이 뜬 아버지는 좀체 마음을 잡지 못했다. 어느 해, 블록을 생산하는 가내수공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시멘트와 모래를 섞어 틀로 찍어내는 벽돌공장일은 건장한 남자들도 힘에 부친 일이었지만 직원은 어머니와 아버지 둘뿐이었다. 그나마 아버지는 주문받고 납품하러 다니느라 늘 밖으로만 나다녔고 생산하는 일은 어머니가 도맡았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나는 어스름이 깔리면 저녁밥을 지어놓고 휘청휘청 돌아오는 어머니를 기다렸다.  
  가닥이 많은 날실은 자칫 잘못하면 꼬여 일을 그르친다. 잉아가 실이 뭉쳐지지 않게 잡아주듯 어머니는 우리 가족이 헝클어지지 않도록 자리를 잡아주었다. 아버지며 삼촌, 어린 우리들까지. 하지만 실이 끊임없이 통과하는 잉아도 오래 사용하면 닳는 것처럼 고된 일로 채워지던 어머니 손가락도 어느새 지문이 다 닳아 없어졌다. 언제까지나 굳건하리라 믿었던 잉아도 속으로 삭아가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어느 날, 아버지는 외상을 받으러 갔다가 자동차 사고로 허리를 심하게 다쳐 돌아왔다. 당장 병원에 가야 한다며 아버지를 채근했지만 별것 아니라며 약으로 견뎠다. 그 이후로 비 오는 날엔 유독 신음이 커졌는데 어머니는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그렇다며 마음 아파했다. 몸도 다치고 돈도 떼이고 나자 블록공장은 문을 닫고 말았다. 얼마 남지 않은 농사는 소출이 적었고 갚아야 할 빚은 더 늘어났다.
  불행은 설상가상으로 찾아왔다. 초등학교 다니던 막냇동생이 뇌염으로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났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는 수개 월 동안 깊은 시름에 빠졌다. 식음을 전폐하면서 혼자 멍하게 맞은 편 산을 바라보는 일도 있었다. 그럴수록 베틀에 앉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종일 말도 없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저러다 잘못되면 어쩔까 싶어 걱정을 하곤 했다. 
  베 짜는 방은 실이 끊어지지 않도록 눅눅해야 해서 무더운 여름에도 문을 꼭꼭 닫아두었다.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나 보면 골방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어머니는 낡은 러닝셔츠를 입은 채 베를 짜고 있었다. 어둠으로 둘러싸인 사위는 조용하고 베틀소리는 커억커억 속울음을 삼키는 듯 덜컹거렸다. 그런 날엔 뒷산에서 밤새 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밤에 우는 새소리엔 뭐라 말할 수 없는 먹먹함 같은 것이 묻어있었다. 
  어머니의 시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느 해 여름, 심한 태풍이 몰아쳤다.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가 밤새 계속되었다. 집 앞 도랑으로 뿌리 뽑힌 나무가 마구 떠내려 왔다. 우장을 갖출 새도 없이 비를 뚫고 논으로 달려갔다. 도착했을 때 둑은 이미 흘러내리는 토사에 떠내려 가버렸고 논 가득 자갈과 모래가 밀고 들어와 똑바로 선 벼가 없었다. 모든 걸 잃었다는 절망감으로 무연히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삼 남매의 대학 등록금, 농기계 할부금, 논 살 때의 잔금은 오롯이 어머니가 해결해야 할 몫이었다. 집에서 키우는 짐승의 끼니를 챙기느라 마음 편히 외출도 못했고 부부동반 여행은 늘 아버지 혼자 다녀왔다. 오일장에 강아지를 팔러 나가면 돈이 아까워 국수 한 그릇도 사 먹지 못하고 집에 와 찬물에 밥 말아 허겁지겁 주린 배를 채웠다. 소중한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했던 어머니는 그래도 걱정 중에 돈 걱정이 제일 작은 거라며 입버릇처럼 말했다. 
  장롱에 잘 개켜놓은 모시를 들여다본다. 어떤 부분은 올이 가늘고 섬세하지만 어떤 부분은 울퉁불퉁하다. 부드러우면 부드러운 대로 거칠면 또 거친 대로 거기엔 어머니의 한숨과 눈물과 기쁨이 빼곡하게 무늬져 있다. 날실은 때로 끊어지고 가늘어지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다시 이어지고 힘을 얻어 옷감을 짰다. 많은 우여곡절과 견디기 어려운 상황들이 있었지만  당신은 잉아처럼 튼튼하게 그것들을 갈무리해서 세상에 둘도 없는 옷감을 만들었다.    여든을 넘긴 동갑내기 부부는 이제 여행도 함께 다닌다. ‘세상에 니 엄마만한 사람이 없다’며 젊어서는 손에 봉지를 들고 다닌 적이 없던 아버지가 생선이며 과일을 수시로 사 들고 온다. 휴대폰에서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노래가 연결음으로 흘러나온다. 
  어머니가 양지쪽에 나와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도 이제 꼬리를 감추고 북쪽으로 물러났다. 거풍하기 위해 들고 있는 치마가 바람에 흔들린다. 순간, 베틀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당신은 지금, 그 옛날 잉아에 시간의 날실을 걸고 한 필의 베를 짜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덜그럭 탁, 덜그럭 탁, 햇살 비치는 마당 한켠이 모시처럼 고운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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