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이 왔다 / 김서령
연일 하늘이 맑다. 바람이 연일 산들산들 잘도 분다. 땅에 돋아난 모든 식물들, 나무든 풀이든 농작물이든 땅에서 솟은 것들은 지금 물기가 살짝 걷히고 있다. 열매엔 단맛이 깊이 스미고 이파리는 슬쩍 시들고 알곡은 탱탱하게 익어간다.
그 섭리를 관장하는 것이 저 바람이다. 부드럽고 감미롭되 가차 없고 잔인한 저 바람. 햇살은 다만 무심한 기록자일 뿐이다. 물기를 잃는 양을 정교하게 기록할 의무를 배당받았다는 듯 진행과정을 땅 위에 또렷하게 새겨넣는다. 무심하게 밝게 완벽하게 뿌리 인근에서부터 시작되어 땅 위로 길게 드러눕는 나무와 풀의 그림자.
물론 그 그림자는 고정되지 않는다. 바람결을 따라서 함께 흔들린다. 흔들 흔들 흔들… 연일 세상이 온통 흔들리고 있다. 흔들리면서 나무들은 조금씩 제 욕심을 내려놓는다. 이제 때가 왔다. 지난여름은 이미 지나갔으니… "잘가라. 우리 여름날의 뜨거운 햇볕이여!!" 이젠 곧 이파리도 떨꿔야 할 때, 열매에 단맛을 들인 후 그들마저 후두둑 땅위로 떨궈버려야 할 때, 의욕도 호기도 미련도 집착도 그만 내려놓아야 할 때, 그러면서 흔들흔들 흔들린다.
바야흐로 구월이 시작되었다. 이 바람에 저항할 수 있는 식물은 지상에 없다. 나무들은 흔들리면서 제 몸의 물기를 거둬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자각한다. 아니 그걸 자각케 하려고 바람은 구월 한 달을 저렇게 부드럽고 달콤하게 나무를 온통 흔들어대는 것이리라… 나는 창으로 면한 침대에서 아침에 눈을 뜬다. 눈앞에 못 견디게 흔들리는 대나무 이파리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가 세차게 벽면을 부비 대고 있는 것을 본다. 눈뜰 때부터 지금까지, 뜰에서 거리에서 사무실 내 책상 앞에서 진종일 그렇게 나뭇잎과 가지들의 흔들림을 지켜본다.
애틋하면서도 벅차고 씁쓸하면서도 달콤하다. 좋고도 싫은 것, 익숙하면서도 새삼스럽고 낯설면서도 친숙한 것, 세상 아무 것도 부럽지 않게 자족적이면서도 동시에 온 마음과 몸이 텅텅 비는 기분, 공허와 충만이 일식날 해와 달이 겹쳐지는 것처럼 차츰차츰 겹쳐지는 기묘하고 비일상적인 느낌, 이것이야말로 그 옛날 내가 숱하게 맞았던 구월의 원형이다.
초가을, 물기를 거두는 바람결과 사람의 뼛속까지 들이비칠 듯한 맑은 햇살 아래서 내 마음은 젊은 날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구나. 투명하고 맑은 것들, 쓸쓸하고 아름다운 것들, 서럽고 벅찬 것들이 가득한 세상이 나는 여전히 견디기 어렵다. 바람결이 부드럽고 햇살이 맑고 그림자가 또렷한 이런 날들을 감당하는 기술을 나는 여태도 익히지 못했다. 공중엔 약속이나 한 듯 잠자리 떼가 나타나 온종일 맴을 돈다. 어쩌다 날개위에 햇살이 닿으면 그 섬세하게 얽어진 엽맥같은 날개는 애틋하게 빛을 튕겨낸다. 흙속에 묻힌 사금파리처럼 짧은 순간 빛을 반사하는 잠자리 날개, 날개에 돋은 가는 혈관들이 탁본하듯 땅위에 또렷한 그림자로 찍히는 순간, 그 어지러운 군무를 나는 창 이 쪽 안에서 꿈속의 풍경인 양 하염없이 내다봤다. 아주 오랫동안, 아마도 열두어 살 어름부터 나는 구월이 오면 창가에 붙어 서서 그런 풍경을 내다보고 서 있었다.
어제는 한부총리와 즉흥적으로 점심약속을 했다. 압구정동 포도에도 여기 홍릉과 똑같은 햇살이 내려앉고 있었다. 생명을 감사하게 되는 아름다운 빛의 일렁임, "오늘 같은 햇살은 세상을 작별하는 마지막 순간에 떠올리게 될 것 같아요." 했더니 "그렇지요? 그래서 이런 빛을 '파라다이스 빔'이라고 부른답니다." 하신다. 온화한 미소에 아름다운 은발, 그러면서 소년 같은 장난기가 비치는 전직 부총리의 눈빛에 나는 잠깐 발을 멈췄다. 아아, 파라다이스, 파라다이스라고? 이맘때 보도블록 위에 잔디 위에 또렷한 나무 그림자를 그려 넣는 빛살을 <파라다이스 빔>이라고 부른다고?
내가 수십 년 창가에서 바깥을 내다보며 종내 마땅한 이름을 찾지 못했던 그것, 시공간을 초월하듯 비지상적인 감격, 그걸 언어로 치환한 것이 바로 '파라다이스'였구나. 사람들이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서 같은 풍경 앞에 서면 같은 감정을 가진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외롭지 않구나. 유한한 생명을 받아 일 년에 한 달 이상 파라다이스 빔을 맞으며 가을볕과 바람속을 일렁일렁 걸어 다닐 수가 있는 존재로구나. 아 신기하고 정다워라. 안타깝고 또 눈부셔라… 구월은 그렇게 내게로 왔다.
내 책상 앞에서 내다보이는 참나무와 능수벚나무는 이파리가 눈에 띠게 두께를 잃었다. 빛깔은 여전히 짙은 초록이지만 이파리의 수분 함유도는 8월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 같다. 처서 지난 지 열흘 만인데.
세상의 절기는 어김없이 바뀌고 인간이 거스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아침신문은 20년 만에 바닥을 드러내는 아랄해를 보여주지만 북극의 빙산이 녹아내려 북극곰이 머무를 곳이 사라져간다지만 그건 지구내부의 사정일 뿐, 지구에 닿는 태양빛은 여전히 절기를 잊지 않는다. 고맙게도.
오늘은 어제처럼 파라다이스 빔이 유감없이 땅위에 쏟아지는 날이었다. 진종일 바람을 내다보고 앉아있었다. 이파리를 견딜 수 없이 뒤집어대는 바람은, 아프지 않게, 부드럽고 감미롭게 나뭇잎에서 물기를 걷어간다. 나는 혼자서 저 바람의 이름을 세월이라고 불러본다. 둘 다 손에 잡을 수 없고 쉼없이 흘러가고 지상의 생명에서 물기를 앗아간다. 그러니까 구월은 세월이 온종일, 눈에 보이게 일렁일렁 일렁거리는 달이다. 팔뚝에 살짝 소름이 돋는다. 내 몸의 물기가 사그락 증발하는 소리를 듣는다… 가혹하고 감미로운 9월이 다시 내게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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