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이야기 / 김희자
기도 같고 통곡 같고 절규 같은 비가 내린다. 누가 이 구불구불한 생에 주석을 달 수 있단 말인가. 버리고 싶은, 돌아보고 싶지 않은 쓰라린 기억들이 모여 인생이라는 그림을 만든다. 꽃 한 송이 피우지 못했다고 참된 삶을 그리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고통보다, 통증보다 더 잔인한 한 남자의 마지막 생을 보았다. 젖은 도로 위의 차들이 아무 일 없다는 듯 질주하지만 나는 장례식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섰다.
조등이 걸린 저 안에서 그 남자가 영원히 잠들어 있다. 슬픈 날에는 눈을 감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울고 나면 나는 바닥을 본다. 모두 죽었거나 사라진 곳이 바닥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육신이 짜낸 눈물이 바닥에 뒹군다. 상처를 안으로 들이는 것들은 소리가 없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경계에서 바람마저 맥을 놓았다. 그 남자가 말하지 않았고 보이지 않았던 속살들이 젖은 바닥에 뒹구는 것 같다. 이야기는 상처 없이 만들어지지 않는 법이다.
홀로 견디는 일이 그토록 힘들었을까. 오늘 텅 비어 있는 침대를 보았다. 늘 짐승처럼 웅크리고 누워 있던 남자.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고독했던 그 남자가 보이지 않았다. 일터로 나오니 새벽닭이 울 무렵 이승을 떠났다고 했다. 나는 반 년 동안 한 남자의 마지막 생을 오롯이 보았다. 그 남자를 지켜보는 일은 인간의 슬픔과 고독, 모진 고통을 엿보는 것이었다.
그 남자의 가장 큰 고통은 허기였다. 허기가 지면 간호사실로 와 "배고파!' 하며 손을 쑥 내밀었다. 어렵사리 내뱉는 짧은 말 속에는 미안함과 배고픔의 고통이 묻어났다. 만성신부전증에 당뇨병까지 앓고 있는 그 남자에게 간호사들은 너그럽게 대했다. 저혈당 증세가 나타나 쇼크가 올 수도 있으니 스스럼없이 먹을 것을 주었다.
그 남자에게는 애타게 찾아오는 가족도 없었고 애틋하게 감싸주는 친구 또한 없었다. 보호자들이 자주 찾는 환자들 옆에는 간식이 넘쳐났지만 그 남자의 탁자 위에는 휴지 하나만 자신처럼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처자식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늘 혼자였던 남자였다. 찾아오는 이는 오직 한 사람, 여동생뿐이었다. 아주 가끔 방문하는 여동생은 오빠가 좋아하는 양념치킨을 사주었다. 그 남자는 허기가 유난히 지면 거침없이 먹었다. 식사량이 늘어 다행이다 싶으면 체해서 삼킨 음식을 토하곤 했다. 어렵사리 먹은 치킨도 토해 안쓰러웠다.
구토증세가 심해지면 몇 날 며칠 동안 먹지 못했다. 그러다가 구토가 멎고 상태가 나아지면 그 남자는 허기를 더 느꼈다. 어느 날 병실에서 그 남자를 나무라는 간병사의 목소리가 복도로 새어나왔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남의 것에 손을 대면 되겠냐?"며 꾸지람을 퍼붓고 있었다. 얼마나 허기가 졌으면 남의 간식에 손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문 밖에서 보자니 내가 더 무안해 다른 병실로 발길을 돌렸다.
그 남자는 유독 고독했다. 지독하게 고독했던 그 남자는 아무도 없는 휴게실에서 불을 끄고 앉아 티브이를 보거나 졸고 있었다. 자신의 침대가 있었지만 휴게실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휴게실에 홀로 있거나 침대에서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파도처럼 고독이 밀려들었다. 어두운 골짜기를 끝까지 걸어본 사람은 안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 남자에게 유난히 동정이 갔다.
은발이 머리의 반을 차지했지만 그 남자는 인생의 가을도 맛보지 못했다. 천성이 순하고 자존심이 강했지만 병세가 악화되면 불안해했다. 호흡수를 체크한다 싶으면 숨 쉬는 속도가 빨라졌다. 고르지 못한 호흡이 공포에 떨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산소흡입을 하고 링거를 맞으면서도 집에 가야 한다며 헛소리를 쳤다. 거동이 불편해 기저귀를 차자고 해도 기어코 화장실로 가다가 옷을 버렸다. 젖은 옷을 갈아입자고 해도 소리를 버럭버럭 질렀다. 그런 일이 잦아지자 간병사와 실랑이가 벌어졌고 몸에는 억제대가 묶여졌다.
그 남자는 어느 날 성난 짐승 같았다. 호출소리가 나 병실로 달려갔더니 손등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분노한 그 남자는 온몸과 침대에 흐른 피를 보고도 무심했다. 울분을 못 이긴 그 남자가 링거 줄을 뽑은 것이었다. 그 남자의 분노 속에는 슬픔의 감정이 내포되어 있었다. 바늘이 빠진 혈관에서 선홍색의 피가 나오고 있었다. 놀란 간병사는 허겁지겁 피를 닦고 있었다. 피가 흐르는 손을 맨손으로 지압하자 간병사는 장갑을 끼라며 소리쳤다.
화를 내지 않았다. 호통을 치지 않고 왜 그랬냐며 그 남자의 손을 잡았다. 그 남자는 고개를 떨어트린 채 말이 없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기에는 아직 이른 나이였고 현실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으리라. 신장이식이나 혈액투석을 하면 호전될 수 있겠지만 여동생도 포기를 했다. 삼 개월 정도 살 수 있다던 그 남자가 일 년 넘게 살아있으니 다행이라고 하기에는 애석했다.
그 남자의 외로움을 유일하게 달래준 여인이 있었다. 그 병실에 새로 온 간병사였다. 그녀는 진심으로 환자들을 대했다. 그 남자는 그녀가 간병사로 온 후부터 달라졌다. 심성 좋은 그녀가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 같았다. 고분고분하게 나누는 손길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수발을 받지 않은 나도 그녀의 정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녀는 언제나 꽃처럼 웃었다. 뭇 남자들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토사물까지 처리하면서도 인상 한 번 찡그리지 않았다.
어느 날 병실에 들어서던 나는 화들짝 놀랐다. 그녀의 어깨를 그 남자가 주물러주고 있었다. 상태가 좋아진 그 남자는 달라졌다. 그녀가 "장○씨!"라고 다정하게 불려주면 그 남자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연약한 몸으로 환자를 돌보는 그녀의 일을 거들었다.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하면서 힘을 나누는 걸 보면 흐뭇했다.
그녀의 어깨를 주물러주는 모습이 마치 연인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이상한 감정이 섞여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남자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음이 놀라웠다. 그런 날들 때문이었을까. 그 남자는 한동안 컨디션이 좋았다. 구토로 고통을 겪던 일도 해소되었다. 젊어서의 사랑은 자신의 행복을 원하는 것이고 황혼의 사랑은 상대가 행복해지길 바라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연인이 아니었지만 나의 눈에는 저물녘 황혼처럼 고매했다.
그 남자가 중환자실로 올라가기 전날 삶은 감자가 먹고 싶다고 했다. 이십사 시간을 근무하는 그녀는 다음날 감자를 삶아왔지만 그 남자는 이미 중환자실로 올라간 후였다. 그녀는 "그 흔한 감자 하나도 먹을 복이 없는 남자였다." 며 눈물을 훔쳤다.
그 남자에게 결핍된 것은 한둘이 아니었다. 젊은 날 대기업에 다녔다던 그 남자에게는 물질도 사랑도 부족했다. 어느 날은 안경알이 빠지고 없다며 안절부절 못했다. 어디에서 빠졌는지 모르는 그 남자는 주치의한테 내려가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안경알을 넣기 위해서였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그 남자에게는 그나마 세상을 볼 수 있는 안경이 소중했기 때문이다.
그 남자를 돕기 위해 병실로 갔다. 침대 이불을 털고 시트 사이사이를 눈여겨보았지만 안경알은 보이지 않았다. 병실 바닥과 복도까지 두 눈을 부릅뜨고 찾았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 마음은 돕고 싶었지만 허투루 나설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결국 여동생이 해결했지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돈을 빌리려던 그 남자를 보며 아팠다.
그 남자에게 위기의 순간이 몇 번 있었다. 어떤 날은 동공이 풀린 그를 발견해 응급처치를 하기도 했고 이번이 마지막 순간인가 싶다가도 다시 살아났다. 그러다 일주일 전부터 백지장처럼 얼굴이 창백해졌다. 수혈을 받았지만 호흡곤란과 삼키는 기능을 잃었다. 밥이 죽으로, 죽이 미음으로 바뀌더니 왜소해져 갔다.
예견된 일이었지만 팔에는 링거가 달리고 코에는 산소마스크가 씌어졌다. 그 남자는 웅크리고 누워 숨을 가쁘게 쉬었다. 뒷바라지를 하던 여동생도 주치의를 만나고 오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인간은 자기를 대항해서 바리케이트를 쌓는다고 타골은 말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저항할 힘도 소멸되고 없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나약해지는 비극 앞에서 그 남자의 번뇌와 갈등을 이해하려 애썼다. '그래, 죽음에 이르기까지 병원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니 외로운 죽음보다는 낫지 않는가?' 하며 되레 나 자신을 위로했다.
그 남자가 살아있음을 확인한 날도 있었다. 한날은 남자로 존재하는 그를 발견했다. 혈당을 체크하러 휴게실에 갔더니 티브이 앞에서 넋을 놓고 있었다. 소녀 가수들이 춤추며 노래하는 모습에 푹 빠져 있었다. 걸 그룹이 예쁘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모든 것을 상실한 듯 보였지만 본능은 살아있던 남자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그 남자를 보았던 날도 예쁜 소녀들이 노래를 하고 있었다.
몸매가 쭉쭉 빠진 걸그룹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던 그날 밤, 그 남자는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되어 중환자실로 올라갔다. 몸 안에 산소가 부족해지자 죽고 싶다고 소리를 쳤다. 자신의 생을 포기한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 남자는 상태가 악화되자 체념을 했다. 고통을 기피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본능.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죽고 싶다고 했을까? 이처럼 삶은 산처럼 무거우나 죽음은 깃털처럼 가볍다. 그토록 먹고 싶었던 감자 한 톨도 못 먹고 그 남자는 떠나갔다.
그 남자는 자유로워졌다. 쓰디쓴 인생과 깊은 고독을 맛보고 떠나갔지만 더 이상 고통 받지 않을 것이다. 이제 휴게실에서 그 남자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는 일도 없을 것이다. 나는 그 남자에게서 희망보다 등 뒤 있는 절망을 위로하는 법을 배웠다. 그 남자가 가는 길이 비단길이기를 바라며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다. 그 남자는 일이 서툰 나를 편하게 해준 사람이었지만 나는 그를 위해 마음 한 번 푼 적이 없어 가슴이 시리다. 가을 하늘에서 내리는 차가운 저 비처럼...
'좋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간의 무늬/김훈 (0) | 2024.08.18 |
---|---|
열대야의 지구 독법 /허은규 (0) | 2024.08.17 |
죽 쑤는 여자 / 남태희 (0) | 2024.08.16 |
베개 / 엄옥례 (0) | 2024.08.16 |
잠은 힘이 세다 / 권현옥 (0) | 2024.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