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 김 학 명
땡∼땡 땡그랑. 땡∼땡 땡그랑.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산허리를 돌아 산사로 내려 앉으면 풍경이 흔들리며 맑고 경쾌한 소리를 굴려 놓는다.
산내음이 그윽한 마알간 공기를 살며시 가르는 그 소리는 들을 때마다
마음을 밝게하고 편안하게 한다. 햇빛을 받은 이슬방울이 영롱해진 모습으로 서로 부딪치며 나는 소리라고 할까 고요하고 신비롭다.
맑은 마음,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세속의 눈에서 벗어나 참사람이 되라는 의미를 가진 풍경은 언제나 마음속의 깨우침을 두드린다. 산사는 늘 그렇게 마음을 끌어 안는다.
산사에서 소리를 내는 사물(종, 북, 운판, 목어)은 인위적으로 힘을 가해야 하지만 풍경은 그런 울림을 원하지 않는다. 종처럼 장엄하거나 북처럼 심장을 두드리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저 하늘에 맞닿고 눈비와 달빛과 바람이 함께하면서 울리는 자연의 소리, 내 스스로의 소리를 내고 싶어한다. 내가 내는 내 안의 울림 그것이 참소리이고 본성이며 깨달음의 소리가 아닌가.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작고 갸날픈 앙증맞은 소리이지만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건 맑은 자연의 울림을 들려주기 때문이고 천상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풍경은 울림의 소리속에 향기를 실어 나른다. 솔잎을 떨어뜨리며 부산하게 소나무 숲속을 지나가는 바람이 풍경에 살포시 볼을 부빈다. 댕∼댕 소리가 울려 퍼지면 세상은 온통 솔잎향기가 퍼져 나간다. 땅에도 깔아주고 세상에도 뿌려주고 하늘로 오른다. 울림의 소리가 클수록 향기는 진하고 은은한 여운이 오랫동안 멈추지 않는다. 한여름 긴 낮에 달구어진 몸을 식히려 바람을 찾아 헤메다가 축느러진 어깨를 어쩌지 못하고 눈을 뜬채 살며시 잠이 든다. 그것도 잠시 비가 내리면 정신을 번쩍 차리고 울림의 소리에 집중한다. 천둥이 치고 비바람이 강하게 불면 가슴아픈 사연들이 한꺼번에 솟구쳐 속이 후련하도록 큰소리로 한없이 운다. 어느덧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피어나면 일곱빛깔 희망의 울림을 아픈이의 가슴에 심어 놓는다. 울긋불긋 단풍이 산하를 덮으면 풍경도 달빛으로 꽃단장하고 화려한 오방색으로 뽐내는 처마와 사랑을 나누며 애정의 향기를 소리에 싣는다. 흰눈이 소리없이 내리는 날은 산사도 소리없이 밤을 지새고 풍경도 침묵으로 고뇌의 시간을 갖는 날이다. 하얗게 부서지는 지난날의 기억속에 흔들리며 상처받았던 시공의 어느시절 절절이 이어온 나를 회상한다. 아픈 흔들림이 있어 행복했다는 회상속에 아침을 맞는다.
대애댕 대애댕 풍경이 바람에 흔들리며 소리를 낸다. 흔들리는 아픔을 맑은 영혼으로 되살려 깨달음을 얻으라고 본성에서 토해내는 울림을 들려준다. 그 울림이 나를 깨어나게 하고 주위도 깨어나게 한다. 그렇다. 우리는 삶이라는 바람 앞에 늘 흔들리며 산다. 흔들림이 아픔이라고 상처라고 말하지 말라. 아픔은 늘 울림과 찾아와 소리를 내듯 깨달음을 준다. 이것이 인생에 성숙함을 더해주고 참사랑을 깨닫게 한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한번은 필요하지 않을는지 모르겠다. 흔들림이 작은데도 색이 바랜 소리를 내지는 않았는지, 큰 흔들림에 상처받고 인생을 다 잃은 것처럼 행동하진 않았는지 사색의 골목을 들여다 보자. 그리고 풍경처럼 아픔을 사랑으로 승화시켜 어떤 향기로, 어떤 소리로 품어내야 하는지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늘 흔들림에 감사하고 흔들릴 때마다 풍경 같이 좋은 소리로 또 좋은 모습으로 나도 주위도 본성의 깨달음을 얻어야 하지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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