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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이론

수필의 허구성과 상상력/유한근

에세이향기 2025. 7. 4. 09:34

수필의 허구성과 상상력/유한근

 

 

수필에 대한 담론 중에 지속적으로 논의되는 테마는 '수필의 허구성'문제이다. 수필의 허구성 논의는 상상력 사이의 문제로 이 양자의 유기적 구조와 미학의 문제이다. 수필의 상상력 문제는 동어반복으로 기회 있을 때마다 나는 말해왔다.

 수필의 허구성과는 별개의 문제로 그 문제를 상상력으로 문제로 편입시키려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원로 수필가인 김소운도이 점에 대히 이렇게 고민했던 것이 보인다. "'진실'이란 말은 반드시 '사실 그대로'란 뜻은 아니다. 사실만을 나열한다고 해서 그것이 문장을 이루는 것도 아니요, 하물며 문학이 되는 것도 아닌 것은 재언할 필요가 없다. ...​나 자신의 글이란 것을 돌이켜보면 실로 '허구' 그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진실이란 반드시 사실 그대로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소위 내가 쓴다는 글은 언제나 '사실'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목적이 있고, 읽는 대상을 의식하면서 쓰는 글- 그것이 과연 옳은 글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 의문이다." 사실을 그대로 글로 재현앴을 때 그 글이 진실된 문학 작품이라 할 수 있는가를 의혹해 하는 글이다. 동시에 상상력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에 따른 수필 문체文彩의 정수를 그는 이렇게 다시 말한다. "윗물을 흘려버리고 뒤에 남은 진국- 침전된 알맹이- 그것이 진정의​ 문장이라면, 언제나 목적의식을 꽁무니에 달고 다니는 내 글 따위는 부질없이 흘려버리고만 있는 한갓 '윗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그런 뒤, 그는 자신의 글에 대한 부족함의 이유를 성급한 기질 탓과 공상력 부족으로 돌린다. "내 글이 '사실'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의 하나로는 , 체질적으로 공상력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인간의 생활 그것을 문학이나 예술성보다는 한 걸음 앞서서 언제나 직시하고 분석하려드는 성급한 내 기질에 연유하는지도 모른다. 할 말이 너무 많고 보면 결론에 도달할 최단거리에 마음이 쏠려 '허구의 진실'같은 복잡한 수속을 밟을 겨를이 없다고 그렇게 보아주는 이는 무척 고마운, 너그러운 지기知己라고 할 것이다." (김소운의 <사실과 허구를 통한 진실한 삶의 구현>)고.

 

 수필문학에 있어서 사실과 진실, 사실과 상상력 중 수필의 허구성 문제와 수필 문채에 대한 논의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이 시대에 논외로 놓아도 좋을 담론 테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도 이 문제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우리가 '수필은 사실의 문학 장르다'라는 문예미학에만 매달릴 때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은 아닐까?

 

 상상력의 한계에 대한 고민도 있을 수 없다. 시작부터 수필의 허구성을 차단하는 소재를 택했으며, 그로 인해 신변 잡기류의 잡문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좋​은 테마이며, 사실을 토로해야만 한다는 이론(?)에 발목 잡히지 않아도 좋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통 수필은 이런 맥락의 수필에서부터 시작했고 그 맥을 이어왔다. 언제부터 우리 수필이 자잘한 신변 이야기, 자기 과시의 주변 이야기류의 수필이 판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런 수필 때문에 수필의 허구성 담론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아닌가. 그리고 수필에 있어서 상상력을 환기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아닐지.

 

 수필에 있어서 상상력을 통해 구현해 낼 수 있는 수필의 구조 미학의 한 단면을 통해 가능해진다. 그것은 문학적 상상력으로만이 가능해진다. 상상력을 통한 구조 미학적 처리다. 이런 상상의 힘을 빌어 구조적인 수필 미학을 실현할 때, 문학의 한 장르인 수필문학은 탄탄한 자리매김을 할 것이다.

 

 수필도 문학이다. 문학이면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문학은 그것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상상력이 다소 과장되게 사실을 부풀리더라도, 상상력이 다소의 허구적인 상황을 전개시키더라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 그 '진실'을 전달하려는 의도에서 그 상상력을 증폭시켰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수필을 사실로 인정해도 좋을 것이다. 없는 사실을 있는 ㅅ실로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면, 불특정 다수를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 상상력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표현 구조로 ​인정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 인간에 대한 탐구 의식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위한 통찰력도 상상력과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쯤에서 상상력은 체험한 사실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환기한다. 그리고 한국 수필의 발전을 위해서는 문학적이고 창의적인 '상상력'이 무엇보다 필요함을 역설한다.

 

 

2.

 

 앞서 개진했지만, 수필의 상상력은 허구의 문제와는 별개이다. 수필은 허구의 문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필은 허구를 용납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필의 허구 문제를 극복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허구는 소설의 용어이지 수필의 영역에 속하는 문학적인 용어에서는 제외되어야 한다. 하지만 수필에서도 상상력의 문제는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문학의 핵심적인 장르이기 때문이다.

 

 상상력(lmagination)은 체험에서 나온다. 현실적인 체험에서 나오지 않은 상想은 이른바 '환상'이라고 말한다. 코올리지는 사상과 사물과의 조우가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문제를 상상력에서 찾았다. 즉 정신과 자연을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 상상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상상력을 '무한한 존재의 영원한 창조행위를 유한한 정신속에서 반복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신이 혼돈(Caos)으로부터 세계를 창조하여, 그 혼돈된 세계에 질서와 형태를 부여했듯이 유한한 정신(the finite mind)'인​ 인간의 정신도 신이 그랬듯이 질서와 형태를 부여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것은 인간의 정신이 신의 정신을 원형으로 삼아 만들어졌기 때문에 창조적인데, 그 창조적인 힘이 문학에 있어 상상력이다.

 

 상상력의 이론을 코올리지나 칸트는 세 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이 두 사람의 이론의 용어는 다르지만 개념은 유사하다.

 

 코올리지는 상상력을​공상(fancy)의 차이를 시간과 공간에서 살폈다. 첫 단계의 상상력인 공상은 연상의 법칙으로부터 미리 준비된 자료를 받아들일 뿐이며, 시간과 공간의 질서에서 해방되어 나온 기억의 한 형태일 뿐 실상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 단계를 칸트는 재생력 상상력(the riproductive imagination)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는 상상력을 일차적 상상력(Primary imagination)과 이차적​ 상상력(Secondary imagination)으로 나누어 생각했다. 일차적 상상력은 인간의 모든 지각의 원동력리며, 이 지각의 원동력은 무한한 자아 존재(=신의 존재)안에서 이루어지는 영원한 창작 행위가 제약된 존재인 인간의 정신 안에서 되풀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감각과 지각, 지각과 사상의 중개물로서 대상을 지각하게 할 뿐 아니라, 개념을 형성하게 하고 사고를 추출케 한다는 것이다. 이 단계를 칸트는 생산적 상상력이라고 부른다. 지성과 오성 사이, 사상과 세계와 사물의 세계 사이에서의 교량 역할과 상통된 점을 발견하는 단계이다.

 

 그 다음의 단계를 코올리지는 이차적 상상력(Secondary imagination)이라 하고 있는데, 이차적 상상력은 일차적 상상력의 반향으로 보고 있다. 이 양자의 차이는 의식의 차에 있다. 전자가 무의식인데 비해 후자는 '무의식적인 의지'에서 성립된다는 점이다. 칸트는 이 단계를 미학적 상상력(The aesthetic imagination)혹은 시적 상상력(The poetic imagination)으로서 우리에게 진실로 진실된 그 무엇, 또는 우주의 구조나 인간 경험의 기초적인 본질, 표면에 숨어있는 실재, 그 밖에 이러한 것들이 암시해주는 그 무엇을 보여주는 '힘', '관념화 되고 통일된 미적인 힘'을 보여주는 상상력이라는 것이다.

 

 코올리지와 칸트의 상상력 이론을 장황하게 설명한 것은 시나 소설에서 뿐만 아니라, 수필 쓰기에 있어서도 이 상상력의 세 단계​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수필쓰기에서 위의 세 단계 중에서 가장 많이 적용하는 단계는 1단계, 코올리지의 공상과​ 칸트의 재생적 상상력의 상상력 단계이다. 많은 수필들이 이 단계에 의존한다. 과거에 체험한 사건이나 기억들 영상이나 느낌들을 재생하는 단계, 기억해 내는 단계, 체험한 사건이나 일들을 재생해서 질서를 부여하고 정리하여 기록하는 상상력에 의존한다. 수필은 체험의 문학이라는 문법에 의해 작가들은 자신이 체험한 일들을 기억의 창고에서 꺼내는 작업부터 하기 때문이다.

 

 이때 보조적인 상상력으로 두 번째 단계인 일차적 상상력, 혹은 생산적 상상력 단계의 도움을 받게 된다. 이 단계의 상상력은 재생해 낸 상상력 즉 기억에 의미를 부여하는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많은 체험 중​에서 취사·선택을 해야 하고 질서 있게 정리하기 위해서는 의미의 맥락에 따라 정리하는 것이 편하고 타당하기 때문이다. 작품의 주제에 따라, 분위기나 흐름에 따라 혹은 구성이나 다른 수필의 구성요소에 의해, 그리고 작가가 원하는 바에 따라 재생적 상상력에 의해서 기억해낸 에피소드를 선택한는 데에는 일차적 상상력. 생산성 상상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상력의 세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층위는 미학적 상상력이다. 이 미학적 상상력의 한계는 무한하다. 작가에 따라 그 범주는 다르지만, 그 범주의 깊이 크기에 따라 작가의 역량은 가늠했고, 감동도 다르게 나타난다. 발칙하다 할 만큼 까지도 문학은 요구한다. 

 

 발칙한 상상력을 수필문학은 허락하지 않는다. 수필은 개인적 삶의 체험을 기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그대로 그리면 일기문이 되겠지만, 문학적 상상력에 의해서 삶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상력이라는 것은 수필을 문학답게 만드는 힘이 된다. 수필은 허구가 없고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소설처럼 체험한 것처럼 꾸밀 수는 없지만, 작가가 체험한 사실을 미학적 상상력으로 증폭시켜 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대두되는 것 중 하나가 발칙한 상상력이다. 발칙한 상상력은 삶의 도의적 국면에서 사용되는 사전적 의미로서가 아니라, 도발적이기는 해도 도전적이거나 전위적 혹은 전복顚覆적인 창의적 상상력을 일컫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

 

 문학이 자아 성찰이나 자신만의 글이 아니고 독자를 염두에 둘 때, 분명한 것으 독자를 어떻게 설득할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 문제에서 문학의 표현 구조의 제 요소가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이다. 참신한 주제와 소재라 해도 그것이 독자의 손에 들어갔ㅇ르 때, 어떻게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인가 혹은 감동적인가 하는 문제는 표현 구조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작가의 언어 인식, 표현 구조, 문장력 등 제 요소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작가의 상상력과 직결된다. 작가의 상상력은 그 작가의 사고 구조나 감성 구조. 그리고 문학에 대한 이해, 문학관과 긴밀한 관계를 갖는다. 물론 여기에서 작가의 온축된 삶에 ​대한 체험, 가치관 등 자연인으로서의 모든 조건들이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가 하는 부분일 것이다. 작가의 상상력의 어느 곳으로 어디까지 뻗어나가고 있으며, 얼마나 깊고 높게 확대되어 나가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이 때문에 작가는 고뇌하고 괴로워할 것이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새로운 것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나타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는 소멸하게 되는 것처럼 문학은 죽게 된다. 폐기 처분될지도 모른다. 새로운 것에 대한 창조가 문학인의 소명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문학의 소명이기 때문이다. 이 소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확장시켜야 한다. 비록 그 상상력이 발칙하더라도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