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맷돌 / 김희숙
망부석이다. 굼실굼실 다가서는 물결에겐 눈길도 주지 않는다. 차디찬 물살이 발아래를 스쳐도 안중에 없다. 오로지 먼 바다에서 들려오는 기척에 귀를 열고 섬 모퉁이 뱃길만 오매불망 바라볼 뿐이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동안 해변의 대나무 숲은 야금야금 산등성이까지 영토를 넓혔고 청둥오리의 생과 사는 여러 세대를 오갔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에 서 있다. 밀물이 들어오면 바다 영역이었다가 바닷물이 빠져나가면 개펄에 박힌 돌부리가 드러난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어느 편에도 속하지 못한다.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오고 육지에서 바다로 나가려면 거쳐야 하는 수문장이 되었다. 그러기에 배를 지켜주고 액운을 막으라는 임무도 함께 주어졌다.
여수선소 유적지, 거북선을 건조했다는 돌강을 지나 무기를 넣어둔 창고와 업무를 보던 세검정을 빠져나오면 오솔길은 끊기고 거대한 바위가 앞을 막아선다. 더 나아갈 수 없다. 몸을 돌려 모래밭으로 내려서면 물가에 어린아이 키만 한 선돌이 우두커니 바다를 향해 서 있다. 마치 마을 입구 언저리에서 자식 오길 기다리는 노모의 모습처럼 길쭉하게 내밀었던 머리는 골이 깊게 파였고 단단하던 마음마저 산화되었는지 돌거죽이 푸석하다. 임진왜란 때 세워져 거북선과 판옥선을 이 몸돌에 매어두었다. 애지중지 물살에 떠밀리지 않도록 발끝 힘으로 지켰고 옆에 늘어선 배들과 다투지 않도록 팽팽히 줄을 당겨 달랬다.
계선주라는 팻말을 달았다. 뱃말, 배맷돌, 밧줄걸이로도 불린다. 아무리 큰 배라도 홑줄 하나면 태풍이 불어도 휩쓸려가지 못하도록 몸통을 붙들어 맨다. 보성 조양마을의 배맷돌은 밧줄에 쓸린 목이 잘록하게 파인 채로 논가에 놓였고,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는 배를 묶어두었던 몸뚱이에 덧난 상처가 혹처럼 불룩하게 옹이졌다. 닻줄을 매어놓은 말뚝의 조상들이다. 요즘도 배가 드나드는 잔교 콘크리트 바닥에는 그들의 후손인 쇠말뚝이 굽은 버섯처럼 돋아있다. 선소 유적지 계선주는 씩씩한 쇠말뚝에게 제 일을 물려준 채 역사의 뒷방으로 물러났다. 오로지 바다로 나간 이들을 기다리고 돌아온 배들은 거두었다. 기다리는 자의 무게로 세월의 바람에 깎이며 견뎌내었다.
배는 스스로 돌아와 묶인다. 보이지 않지만 끌어당기는 배맷돌의 힘은 꽤나 세다. 아무리 거세게 가로막는 파도라도 기어이 뚫고 돌아오게 만든다. 컴퍼스 한쪽을 이곳에 꽂아두고 다른 쪽 다리만 밖으로 맴도는 것 같다. 항구를 벗어난 배는 잠시 다녀올 뿐이고 돌아오기 위해 나서는 떠남이다. 기다리는 자가 있기에 기꺼이 뱃머리를 되돌린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은 쉽지 않다. 잔잔하던 파도는 육지에 가까울수록 가파르고 산산이 부서진 포말이 뿌옇게 흩어져 꽁무니를 물고 늘어선 물길은 좀체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때면 줄에 매여 끌려오는 것인지 줄을 매고 끌고 오는 것인지 헛갈린다.
왜 굳이 돌아오는가. 먼바다의 윤슬은 눈을 가려 세상을 반짝이게 하고 갯내음은 코끝을 간질거려 향기로 유혹한다. 묶이지 않았기에 어디로든 갈 수 있을 터이다. 그러나 만선의 기쁨을 누리고 목적지 없이 흘러갈 자유를 얻었더라도 배들은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항구로 뱃머리를 돌린다. 날카롭게 쪼이던 도시의 불빛도 바다에서는 거실을 데우는 난롯불처럼 그윽하게 떠오르고 어깨를 짓누르던 삶의 무게도 그리움 앞에선 백지장처럼 가벼워진다.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는 남편의 생사를 알지 못한 채 구혼자들을 피하기 위해 베짜기를 했다. 낮에는 베를 짜고 밤이 되면 짠 베를 풀었다. 오디세우스가 돌아올 동안 기다린 그녀는 배맷돌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다시는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도 있다. 인천에서 닻줄을 푼 배는 제주에 도착하지 않았고 열아홉 청년은 수리하던 문과 들어오던 열차 사이에 끼었으며 아침에 집을 나선 가장은 화재 현장에서 진화 작업 중 한 줌의 재로 남았다.
나는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초등 5학년 여름, 동생들은 내가 키우겠으니 멀리 떠나라며 어머니의 등을 떠밀었다. 당신이 눈앞에 없으면 아버지의 의심병도 잦아들겠지 여겼고 주눅 들어있는 어머니의 삶을 당당히 살아갔으면 바랐다.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짓고 냇가에 빨랫감을 이고 가 손으로 비비는 일쯤은 얼마든지 해낼 수 있었다. 꼴을 베어와 소에게 먹이고 말끔하게 치우는 돼지우리 건사도 늘 해오던 일이라 문제되지 않았다. 어머니 없는 궁핍한 삶보다 밤마다 어머니가 지르는 고통의 소리를 듣는 것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 어머니와의 이별을 기꺼이 받아들였으나 한 달 만에 아버지의 억센 손에 이끌려 들어서는 어머니의 초췌한 모습을 발견했을 때는 반가움보다는 한숨이 저절로 나와 고개를 돌려버렸다. 되풀이될 전쟁 같은 시간이 오히려 두려웠다.
배맷돌 하나에 밧줄 여러 개가 묶여 있다. 밧줄이 당기는 무게에 짓눌려 위태로워 보인다. 당신인들 얼키설키 꼬인 줄이 옥죄여 올 때는 벗어나고 싶지 않았을까. 막상 집을 나섰으나 두고 온 어린 자식들이 들썽들썽 눈에 밟혔으리라. 돌아온 어머니는 자식들이 장성해 떠날 때까지 다시는 집을 나서지 않으셨고 우리는 엄마 없는 애들이라는 말은 듣지 않고 자랐다. 살면서 그때를 떠올릴 때면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으로 가슴을 쓸어내린다.
법정스님은 밤낮으로 돌보던 난 화분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과감히 다른 이에게 줌으로써 홀가분한 자유를 얻으셨다. 자신의 삶이 타인에 의해 묶였는가 스스로 묶어 두었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스님은 과거와 미래에 매이지 않으려 하였다.
어머니가 차마 떨쳐내지 못한 결혼이라는 밧줄을 나는 어렵게 걷어내었다. 묶은 줄을 끊어낸 삶은 한동안 세상의 높은 파고 앞에서 끝없이 떠밀렸고 깊은 바닷속으로 침몰하기도 하였으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나 또한 조막만 한 배맷돌이 되었다. 어릴 때는 당신의 돌아오는 선택이 답답했으나 내가 어미가 되어 몇 번의 파도를 넘나들고서야 어머니와 나는 동류의 배맷돌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묶어 맨 밧줄에게 자신의 살점을 서서히 떼어주면서 고단한 나날을 버텨내었다는 것을.
선소 유적지 주변을 맴돌다 인근 항구까지 가 본다. 바다로 나갔던 어선들이 돌아와 몸을 뉘었다. 밀물이 몰고 온 파도가 방파제를 넘나들며 들이치는 데도 겁나지 않다는 듯 미동도 없다. 믿는 구석이 있다. 굵은 밧줄은 세찬 물살과 대치 중인데 배를 매어놓은 쇠말뚝은 늠름하게 꿈쩍도 하지 않는다. 덕분에 밤새도록 그물을 거두느라 지친 어부도 맘 편히 다리를 뻗고 곤한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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