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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그림자 집/김응숙

에세이향기 2021. 7. 9. 09:11

그림자 집 / 김응숙

 

 

 

전등을 끄자 집은 삽시간에 그림자로 가득 찬다. 화선지가 된 식탁 옆 벽면에 날렵한 가지 몇 개가 난을 친다. 갓 싹을 틔운 작은 잎사귀가 가지 끝에 돋아나 있다. 흰 벽면에 간결하게 그려진 수묵화는 간간이 바람에 흔들린다. 금방이라도 한 마리 새가 날아와 가지에 앉고 잎사귀 옆에 매화를 닮은 꽃이라도 피어 화조도를 완성할 것처럼 보인다.

안방 문틀과 문으로 굴곡을 이루며 그림자 그림은 이어진다. 좀 더 많은 가지와 잎들이 더 큰 그림을 만든다. 창밖 산사나무뿐만이 아니라 생강나무 그림자도 섬세한 필치를 더한다. 거실 소파 뒤 벽면은 배롱나무 그림자로 출렁인다. 마치 집 전체가 맑은 물속으로 가라앉고, 그 속에서 수초들이 일렁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림 하나 걸지 않고 하얗게 비워둔 벽면들이 그 진가를 발휘하는 시간이다.

거실 밖 제법 넓은 화단에는 산사나무, 생강나무, 배롱나무가 심겨 있고, 화단가에 키 작은 가로등이 서 있다. 아파트 일층이다 보니 낮에는 학교 가는 아이들, 택배 차량, 드나드는 주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일상의 소소한 풍경들이다. 그러나 해가 기울면 어두워지기가 무섭게 블라인드를 내리곤 했다. 행여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일까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으로 나는 이사를 하고 일 년이 넘도록 매일 밤 우리 집을 방문하는 그림자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늦은 외출에서 돌아온 어느 날이었다. 거실로 들어서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텅 빈 공간에 무언가 가득 찬 느낌이 엄습했다. 둘러보니 그림자들이 온 집을 점령하고 있었다, 벽면과 문, 심지어 천장까지도 그림자가 드리워져있었다. 창밖에는 달밤의 검푸른 물결이 출렁이고, 키 작은 가로등이 마치 빔처럼 우리 집 벽을 향해 그림자 영상을 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집을 나서기 전 블라인드를 내리는 걸 깜박 잊은 것이 생각났다. 그림자는 내가 입은 연회색의 원피스 위에도 어른거렸다.

사실 나는 그림자에 매우 익숙한 사람이다. 그림자는 한낮보다는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에 짙어지고 길어진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야간학교에 다니던 나는 친구들이 하교하는 시간에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곤 했다. 나는 큰길을 피해 되도록 그림자 진 골목을 따라 걸었다. 산자락에 있는 학교에 도착하면 운동장은 이미 교사(校舍)의 짙은 그림자에 덮여 있었다. 희미한 빛을 내기 시작하는 백열등 아래 계단에 앉아 나는 그 그림자가 완전히 어둠에 잠길 때까지 바라보곤 했다.

밤 열 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올 때는 그야말로 그림자가 친구가 되어주었다. 가로등도 행인도 뜸하던 시절이었다. 불빛이 없는 곳에서는 다급해지던 발길도 그림자가 나타나면 한결 느긋해졌다. 땅만 바라보며 내 발을 따라 걷는 그림자를 따라 걸었다. 보름달 아래 보리밭이 밤바람에 술렁여도, 강둑 아래 넝마주이 움막에서 등잔불이 도깨비불처럼 깜박여도 그림자는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즈음 나는 인생에도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너무도 가난해서 큰딸을 중학교에도 보내지 못했던 우리 아버지는 서산에 해가 기울 무렵이면 마당에 나와 종이에 말은 연초를 피우셨다. 마당 안쪽으로 길게 그림자가 지고 뿜어져 나온 연기도 옅은 그림자로 흩어졌다. 결코 떨칠 수 없었던 가난의 그림자가 아버지의 발목을 휘감은 채 자꾸만 짙어졌다.

아버지의 그림자는 우리 가족의 그림자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저마다 가난의 그림자를 끌며 인생을 살았다. 그림자를 상대하는 법은 제각기 달랐다. 아버지는 이상향을 향해 끝없는 희망 회로를 돌림으로써 그림자를 외면했고, 어머니는 견디다 못해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남으로써 그림자와 결별했다. 기특하게도 여동생은 그림자를 잊어버리는 방법으로 세상을 살았다. 불행하게도 남동생은 그림자에 갇혀버렸고 막냇동생은 그림자를 떨치려고 멀리 떠났다. 나는 그냥 그림자와 함께 살았다. 가난의 그림자들은 내 가슴에 짙게 배어들었다.

그림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림자를 끌어안고 살았던 나는 항상 우울하고 무거웠다. 나는 친구들과 낯선 사람들 앞에서 그림자를 숨기려고 애써 웃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어쩌다 사진을 찍으면, 찍히는 사진마다 그 웃음은 내 얼굴에 숨어있는 그림자를 남겼다.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기묘한 얼굴이었다. 나는 그런 나를 마주하기가 싫어서 사진을 찍을 때면 딴전을 피우며 자리를 피하곤 했다.

사실 그림자 속에 들어앉아 있으면 그림자는 그냥 어둠일 뿐이다. 밖으로 나와 큰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을 때야 그림자도 제대로 볼 수가 있다. 나를 그림자 밖으로 끌어내어 준 것은 글이었다. 이 집으로 이사를 한 그해에 나는 몇몇 수필 공모전에서 수상하며 그림자 밖으로 나오는 경험을 했다. 수필을 쓰면서 나는 내 그림자를 직시하려고 노력했다. 역린 같은 과거의 고통이 따라왔지만, 서서히 나의 그림자가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그림자는 단지 어둠이 아니라 빛의 이면이라는 것을. 그림자가 짙을수록 그림자에 배어 있는 빛도 강하다는 것을.

그림자는 실체를 가진 존재라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자신이라는 존재를 햇살 아래에 드러낼 때 그림자는 필연적으로 따라붙는다. 상황에 따라 모습을 바꾸기는 하지만 그림자는 분명 햇살을 받는 자신의 앞면이 투영된 뒷면이다. 어찌 보면 그림의 입체감을 살리기 위해 음영을 그려 넣는 것처럼 그림자는 존재를 더욱 깊이 있게 드러내기 위한 일환인지도 모르겠다.

마음만 먹으면 그림자들을 불러올 수 있는 이 집을 나는 그림자 집이라고 부른다. 자랑할 것이 별로 없는 나는 지인들이 찾아오면 곧잘 불을 끄고 그림자 그림 전시회를 연다. 작은 거실에 붙어 앉아 우리는 기이하고 아름다운 그림들을 감상한다. 그림자가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가끔 가슴이 뜨거워지곤 한다. 해가 져도 작은 불빛에 의지해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는 그림자 집은 오늘 저녁에도 여전히 공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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