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좋은 수필

안개/문경희

에세이향기 2021. 8. 18. 12:04

안개/문경희

  내리 삼일 째, 회색장막의 안개로 하루를 열었다. 오늘처럼 짙은 안개가 출몰하는 날은 고라니 울음소리가 유독 그악스럽다. 내 언어가 가난하여 울음이라는 밋밋한 표현을 옮겨다 놓았지만, 실상은 거의 악다구니 수준이다. 고작 언덕을 면한 나지막한 야산 따위에 결코 있을 법하지 않은, 무언가 크고 무시무시한 맹수를 연상케 만든다.

   평소와 다름없이, 어머니께서는 일찌감치 산책을 나서실 모양이다. 산 들머리에서 등치기 하기에 좋은 소나무 몇 그루를 발견했다며 오늘은 그쪽으로 가보실 심산이란다. 뭔가 불온한 기미가 느껴지는, 이런 날은 하루쯤 건너뛰어도 좋으련만, 화장실에 들러 속을 비운 어머니는 주섬주섬 입성을 챙기셨다. 간간 불어오는 된바람에 코끝이 시린 겨울의 초입, 싸늘한 안개를 밟고 나서는 팔순 넘은 노인네의 행보가 영 마뜩찮다.

   안개를 들먹이며 만류를 해보지만 '그깟 안개'에 굴할 것 같지는 않다. 하긴, 없는 살림에 다섯 자식을 건사하는 일이란 순간순간 안개 속을 더듬는 것과 무어 그리 달랐으랴. 가난이라는 보이지 않는 적수에 맞서기 위해서는 눈을 닦는 일보다 간담을 키우는 일이 먼저였을 것이다. 여든 한 번의 해가 바뀌는 동안 무수한 안개의 터널을 건너온 전력 덕분인지, 어머니는 출정을 앞둔 노장처럼 사뭇 상기된 표정까지 지으신다. 나날이 하강 곡선을 그리는 육신을 부축하며, 길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도 성큼성큼 보폭을 키우신다.

   어머니가 고샅길 모퉁이를 꺾어 돌자, 안개는 기다렸다는 듯 당신의 작은 몸체를 날름 삼켜버린다. 투명망토를 뒤집어 쓴 듯 당신의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불시에 안개의 피식자被食者가 되어버린 어머니, 사정없이 가슴이 벌름거린다.

   잽싸게 쌀을 씻어 안치고, 어머니를 찾아 나선다. 안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가시거리가 고작 여남은 걸음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미농지 두어 장을 겹쳐 붙인 듯, 산도, 들도, 길도, 집도 보일 듯 말듯한 실루엣 속으로 갈앉아버렸다. 그렇잖아도 추수 끝난 들판이 무주공산 같았는데, 안개는 그마저 몰강스레 거둬가 버렸나 보다. 화이트 아웃white out, 문득 세상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대재난의 현장에 서 있는 기분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닐 테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세상은 존재의 근원마저 의심케 만든다. 보고 듣고 만난 것들이 모두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허상이었나 싶을 정도다. 죄 행불行不되어버린 세상에 나만 홀로 남겨진 것처럼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앞앞을 막아서는 안개의 병정들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툴툴, 옷자락을 털어보지만, 숨을 쉴 때마다 눅진하고 배릿한 안개만 맡아진다.

   눈은 세상을 읽어 들이는 통로다. 허방 같은 세상에서 나아가고 물러날 때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은 눈의 진두지휘 덕분일 게다. 넘어지고 깨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 길을 찾는 일 역시 눈을 앞장세우고서야 가능한 일이 아닌가. 나의 최전방에서 나의 안위를 책임져 주는 눈. 안개는 허를 찌르듯 눈부터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다.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인간을 얼마나 무력화시키는지. 휘적휘적, 나는 내 신체의 일부인 두 발조차 마음껏 내지르지 못하고 있다.

   안개의 먹성은 어디까지일까. 요즘 유행하는 먹방의 주자들처럼, 상악과 하악, 그 깊은 골짜기 속으로 푸르고 붉은 풍경들을 꾸역꾸역 밀어 넣으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 것은 아닐까. 삼켰다 다시 게워낼지라도 먹는다는 포만감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며 끝없는 식욕을 변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채 씹지도 않고 삼켜버린 음식물처럼, 나는 희부연 안개의 뱃구레 속에서 무뎌진 촉수나마 빳빳하게 곧추세운다.

   멀찍이 전조등을 밝힌 자동차 한 대가 안개를 뚫고 온다. 첨단의 기술로 두뇌와 심장을 조립하고, 길이란 길은 모조리 발아래 둘 듯 호기로운 네 바퀴를 거느리고도 까치발을 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리게, 안개 속을 빠져나와 다시 안개 속으로 멀어져 간다. 온통 차가운 쇳덩어리지만, 그의 환한 출현에서 어렴풋이나마 공존의 온기를 느끼게 된다.

   그제야 예서 제서 터져 나오는 소리들이 귀에 들어온다. 귀에도 눈이 있는지, 안개가 트림을 하듯 뱉어내는 소리들이 익숙한 풍경 한 채를 허공으로 되살려낸다. 저만치쯤, 우공牛公들이 목청을 다듬는 곳에는 헙수룩한 소막이 있을 터이고, 그 옆 공룡처럼 우뚝한 2층집에서는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노부부가 투덕투덕 하루를 열고 있을 것이다. 뚝뚝, 나무들의 관절 꺾는 소리는 왕할머니네 감나무 밭 언저리에서 나는 소리이겠고, 소소하게 불어가는 바람도 사그락사그락 벗은 가지를 희롱하고 있으리라. 과수원 건너 멀대처럼 서 있는 적송의 장딴지에 야윈 등을 부딪치며, 어머니 역시 미거한 딸을 향해 건재의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 모른다. 새벽을 찢어발기던 고라니의 극성도 이를테면 존재의 증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잠시 안개의 농간에 휘둘렸지만, 다행히 변한 것은 없어 보인다. 눈에서 멀어졌을 뿐, 모두들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안녕하다는 소리의 타전이 구세주처럼 반갑다. 비로소, 나도 내 자리로 돌아가 느긋하게 세상을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밤, 안개는 그의 수하들을 처처에 심어 놓았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도시에서의 야행성 습성을 떨쳐내지 못한 나는 야밤을 틈타 이루어지는 그들만의 비밀스런 행보를 두어 번 목격한 적도 있다. 더 깊은 고요와 적막 속으로 세상을 인도하는 그들의 하얀 손을 지켜보느라 잠을 놓치기도 했지만, 분명 그들에게서 불순한 의도 같은 것은 읽어지지 않았다. 그저 기척 없이 왔던 것처럼 기척 없이 스러져 갈 것을 두고 과한 호들갑을 떨었던가 보다.

   잠시 세상을 꺼두는 대자연의 섭리에 나를 맡겨 둔 채,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의 경계마저 모호해진 길 위에서 두 눈을 감는다. 희미하게 남아 있던 세상의 잔해들마저 눈꺼풀 속으로 일시에 소등된다. 안개보다 더 캄캄해진 어둠이 나를 그러쥐지만, 사라져도 영영 사라져버리지는 않을 것들에 대해 애면글면하지 않기로 한다.

 

 

'좋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무 한 그루를 읽는 동안 / 최지안  (0) 2021.08.20
구만리 바람소리 / 박월수  (0) 2021.08.19
울지 않는 반딧불이 / 박일천  (0) 2021.08.18
말(馬) / 박시윤  (0) 2021.08.17
쇠똥구리 / 김애자  (0) 2021.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