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성소(聖所) / 김애자
내게 있어 문학은 갈애渴愛의 파도다. 40대 후반에 만난 이 조화로운 물결은 끊임없이 가슴속으로 밀려와선 나를 옴짝도 못하게 하였다. 아니 물결이 나를 옴짝도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파도를 더 갈애하였으므로 스스로 옭아매어지기를 바란 비장한 선택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실로 이 비장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냥 입때껏 저 나른한 삶의 권태로움에 빠져 허구한 날 사는 게 왜 이모양 이 꼴이냐며 신세타령이나 늘어놓는 한심한 여자로 죽치고 앉아 세월만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어질머리 이는 내 나이 마흔일곱 살 적 혼란과 변화를 잊지 못한다. 그 해 봄은 참으로 시절도 수상하였다. 자고 나면 수 백 명의 학생들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였다는 죄목으로 끌려가 초죽음을 당하던 때였으므로 '밤새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말이 두려운 민주공화국이었던 것이다. 이런 거친 풍랑에 내 자식들도 휩쓸릴까 봐 한사코 두 아들을 지방 대학에 보냈다. 어미의 사정거리 안에 자식을 가두어 놓고 나니 긴장이 풀리었따. 스물두 해 동안 오로지 아내와 어머니라는 존재로 착실하게 살아왔다는 안도의 날숨을 고르게 내쉬고 보니, 텅 빈집에는 주부라는 제복을 입은 여자가 왜소하게 앉아 있었다. 어쩌면 이런 모습은 두 녀석의 볼두덩이에 거웃이 나고 서였거나, 남편의 입지가 향상되면서 귀가 시간이 자정을 넘기기 일쑤일 때부터 그리되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었다. TV 앞에서 아침 드라마를 보고 전원을 끄는 순간 24인치 검은 부라운관 속에는 새댁이란 호칭에서 아무개 엄마로, 그리고 누구의 안식구라는 변천사를 거쳐온 여자가 왜소하게 앉아 있었다. 아무리 단장을 곱게 하고 나서도 별 볼일 없는 40대 후반의 여자였던 것이다. 순간 '나는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는가'라는 절규에 가까운 존재론적인 질문이 비수처럼 가슴을 찔렀다.
그날 이후,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애지중지 다독거리던 살림살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세상일이 다 덧없다는 허무감에 빠져 며칠씩 아무 것도 입에 대지 않고 누워 지냈건만, 남편과 자식들은 아침만 되면 자기들의 일을 찾아 집을 나가는 것이었다. 내 가슴 밑바닥에서 들려오는 절규에 가까운 외침과는 전혀 상관없는, 마치 풍경으로만 존재하는 이방인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이런 가족들 뒤에서 나는 형언할 수 없는 비애를 느끼었고, 지금까지 허방다리를 짚고 살았었다는 회한에 무릎이 풀썩 꺾이었다.
그 봄이 가고, 여름 장마가 끝날 무렵에서야 나는 침체의 늪에서 일어섰다. 회한에 꺾인 무릎을 언제까지 껴안고 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성지순레 하듯이 책방을 찾아다니며 정신의 정기를 채웠다. 그리곤 저녁이면 '나는 지금 깨어지는 얼음장을 밟고 서 있다'라는 따위의 낙서로 가슴에 맺힌 울형을 풀어냈다.
책방 순례와 낙서로 황폐한 땅을 일구어 갈 무렵, 『충청일보사』에서 여성 칼럼을 써 달라는 청탁을 보내 왔다. 단골 서점에서 추천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폐허의 땅에서 낙서로 울혈이나 풀어내는 주제에 수많은 독자들을 상대로 칼럼을 쓴다는 것은 언감생김이었기에 손사래를 내저었따. 그러나 담당기자는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을 꼬투리 삼아 붙잡고 늘어지기를 나흘 간이나 계속하는 바람에 결국 승낙을 하고 말았다.
이 뜻밖의 사건으로 책상 앞에 앉았으나 200자 원고지 다섯 매는 아득한 준령이었다. 머릿속에 맴도는 문장들이 엉킨 실타래 같아서였다. 이틀 동안 날밤을 새우고 나서야 주제를 설정하고 문장을 구가해가며 진지하게 산맥을 넘었다. 칼럼 회수가 4회를 넘자 독자들에게서 편지와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대학에 몸담고 계시는 분들도 있었는데, 하나같이 문장력과 묘사력이 좋다며 등단한 것을 권유하였다.
이로써 문학에 대한 열기가 서서히 달아올랐다. 어느 장르를 선택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다가 수필을 쓰기로 작정한 지 6개월 만에 월간 수필문학사에서 『놋화로』초회추천을 받아 문학이란 조명탄을 쏘아 올렸다. 다음 해 3월에 『공사판 여인들』로 완료되어 문단의 말석에 이름 석자를 등록한 지도 이러구러 십 몇 해가 지나갔다.
이에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하는 존재론적인 자문은 하지 않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방법론이 더 중요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방법론의 구심점은 그 쓰기다.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내 삶의 부족함을 채우고, 세상을 애정의 눈길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문학은 내 영혼의 성소聖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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