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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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물염勿染/고경서

에세이향기 2021. 9. 2. 18:06

물염勿染/고경석

이곳은 '물염정'이다. 물염勿染이라는 호를 가진 선비가 낙향하여 지은 정자다.  
 오랜 세월의 풍파에 제 살을 깎아낸 암벽치고는 평온한 표정이다. 희끄무레한 바위틈에서 소나무가 웅크린 자세로 벼랑 아래 강물을 굽어본다. 때마침 불어온 칼바람이 절대 고독을 외치는 솔가지를 흔들어, 산의 적요를 몰아 동복댐 쪽으로 빠져나간다. 옹기종기 둘러앉은 풍경이 무심한 듯 진솔하다. 나는 숨을 고르는 적벽을 건너다본다.
 편액에 누대로부터 내려온 풍경이 붙들려 있다. 당대의 시인 묵객들이 노래한 시문들이다. 꿈쩍 않는 풍경도 나이를 먹는지 너른 강은 물줄기가 약해졌고, 산과 들은 속속들이 비우고, 채우는 아픔을 강물에 내비치면서 조금씩 닮아 온 듯하다. 그러나 옛 선비들의 예리한 감성만은 시간의 거리를 넘어 오늘을 억척스레 버텨내는 중이다. 산야는 온통 휘뿌연 빛들로 가라앉아 있다. 채색을 덜어낸 그 빛들은 마치 지칠 대로 지친 세상살이에서 잠시 풀려나 뜬구름에 시선을 좇는 한 남자의 고뇌어린 낯빛을 닮았다. 눈앞에 불쑥 나타난 벼랑에 잔뜩 긴장한 나는 몇 발짝 뒤로 물러선다.
 방랑시인 김병연의 동상 앞에 서 있다. 저무는 길 위에서 하룻밤 유숙할 곳을 찾는 그가 보인다. 이곳 풍광에 젖어 해진 삿갓을 추어올리며 비장한 시 한 수 읊었으리라. 어둠보다 무겁고 캄캄한 절망을 짊어진 괴나리봇짐을 추스르면서 말이다. 그는 누구인가. 과거 시험에서 조부를 욕되게 한 자책으로 평생을 초야에 묻혀 떠돌았던 방랑자가 아닌가. 험난한 운명의 표상인듯 얼굴을 파묻은 삿갓에 자꾸 마음이 얹힌다. 그런데 느닷없이 이 삿갓이 그의 불우한 생을 구속하는 감옥이었으며, 수인囚人으로서의 삶을 살게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뇌리에서 맴돈다. 그 감옥에서 벗어나려고 세상과 맞섰지만 진정 자유로웠는가를 되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설사 방랑 생활에서의 육신은 자유를 찾았을지 모르지만, 정신만큼은 완전한 자유인은 아니었을 것 같은 생각이 꼬리를 문다. 새로 조성된 시비도 하나의 정지된 풍경으로 있다. 민초들의 궁벽한 삶에서 탐관오리의 횡포를 신랄하게 풍자하던 날 선 언어의 칼날이 무서우리만치 섬뜩하다.
 
 밝다 밝다 하면서도 사람은 밝지 못하고
 어물전 어물전 하면서도 어느 한 집 밥상에 생선은 없네
 
 그의 시「길주 명천」의 한 대목이다. 나는 이 구절에 이르면 결코 순탄하지 않은 생애를 살다 간 지식인의 결기를 읽는다. 분기 탱천하는 목소리에서 가슴에 품은 응어리가 한숨으로 터진다. 비록 시·공간은 다르지만 그가 겪었을 암담한 절망이 나에게 비린내처럼 옮아오면서 뭉개지고 짓물러진 속내를 밖으로 드러내기보다 안으로 감추고 숨겨 두기에 급급했던 내 남루한 삶이 겹쳐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은둔자로서의 삶을 고집하고, 그를 구원했을 방랑에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것이다. 그가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 것도 우연만은 아닌 성싶다. 나 역시 차가운 현실에 치열하지 못한 자괴감으로 잠깐 도피한 셈이다.
 '물염'처럼 살고 싶다.
 물염은 '세상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고, 티끌 하나 속됨 없이 살겠다'는 뜻이다. 옛 선비는 산수의 즐거움에서 풍류를 즐기되 미혹함이 없어야 하고, 혼탁한 시류에 물들지 않으며, 화려한 복식을 멀리하고, 청렴한 생활을 일러 물염이라고 헀다. 하지만 물질문명이 득세하는 시대에 이러한 마음가짐이 어디 쉬운가. 혼자 힘들게 세상을 살아낼 때, 아무리 노력해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미래를 꿈꿀 때 물염은 나로 하여금 시험에 들게 한다. 아슬아슬한 생의 줄타기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삶의 고비 앞에서 제가끔 살아가는 방식을 달리했던 것 같다. 좌절과 희망을 동시에 끌어안고, 그는 유랑을 나는 칩거를 택했지만 그 방법이라는 것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도록 중심을 세우는 일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 경계가 가지는 접점에 서면 나도 모르게 움츠러든다. 겨울 풍경에서 꼿꼿하고 두루뭉술한 물염의 정신과 교감한다고나 할까.
 오래 전 아호雅號를 받았다. L선생이 보내왔다. 두루마리 한지에 단아한 필체의 붓글씨 한 점이 들어 있었다. '빙호氷壺'이다. 얼핏 차갑다. 옥 항아리 안에 든 지극히 맑은 마음, 그에게 보인 내 모습이 낯설었다. 어느 화사한 봄날, 담소를 나누던 중에 호가 없다고 했더니 그걸 기억했던 모양이다. 호를 풀이하는 당나라 시인 왕창령의「부용루 송신점」이 적혀 있었다.
 
  한우연강야입오寒雨連江夜入吳
  평명송객초산고平明送客楚山孤  
  낙양친우여상문洛陽親友如相問     
  일편빙심재옥호一片氷心在玉壺
 
 찬비 강에 내리는 밤에 오나라 땅에 들어와서는
 새벽녘에 나그네를 전송하니 초나라의 산도 외롭게만 보인다
 낙양의 친구들 내 안부 묻거들랑
 한 조각 얼음 같은 마음이 옥 항아리 속에 있다고 하게
 
 마지막 결구인  '一片氷心在玉壺' 에서 따왔다는 '빙호'를 읽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안의 차고 시린 구석에 놓고 간 얼음 한 조각, 입 안이 얼얼해지면서 차가움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살얼음을 뚫고 뒤따라오는 골짜기의 물소리처럼 이별의 정서가 애잔하기 이를 데 없다. 얼음만큼 맑고 깨끗한 물상도 없는데 그것을 옥 항아리에 넣는 이미지의 조합이 눈부시지 않는가. 게다가 보내는 이의 눈물마저 결빙되는 회자정리의 마무리가 참으로 절창이다.  
 무념무상의 고요가 깃든 얼음이다. 그 얼음이 단숨에 녹아내리고 깨질지라도 떠나는 이의 순수한 마음에도 흘러들어 발걸음이 가볍지가 못하다. 얼음에 대고 지나간 삶을 관조하듯 나를 투영한다. 심연에 깃든 헛된 욕망이며 사념의 부스러기를 들여다보면서 뼛속 깊이 한기를 느꼈다.
 빙판길을 걷는 듯 조마조마했던 나를 염려하는 마음으로 이 봉서를 보내왔던 게 아니었을까. 불투명한 현실은 심지가 얕은 나를 자주 흔들었고, 이런 내가 안타까웠을 것이다. 아니면 과거를 한 장의 얼음으로 응축시켜 내 삶을 되비추는 거울로 삼으라는 뜻인지도 알 수 없지만 그날의 감동은 동정호의 햇살에 반짝이는 물비늘을 보는 듯했다. 그러나 아직 호를 쓸 자격을 갖추지 못해 세상에 드러내 놓고 부르지 못하니 이 또한 송구할 따름이다.
 '빙호'라고 소리 내어 불러 본다. 서늘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어느새 몸은 설한풍에 꽁꽁 언 얼음 같기도 하고, 비취빛 옥 같기도 하다. 다행히 맑고 푸른 하늘이 내게로 흘러드니 녹아내린 얼음물에 목마름을 축이고, 어리석음과 날 선 회오를 씻어낸다.
 나는 '빙호'다. 얼음은 세태에 물들지 않는다. 내 성정대로 내 빛깔대로 살다 보면 물염에 이르지 않을까. 머지않아 봄볕은 얼어붙은 강에서 물안개를 피워올리고, 나무들은 연둣빛으로 점차 영역을 넓혀 갈 것이다. 사람들은 절망이나 고통을 은폐한 채 다시 길 위에 설 것이다. 더러 거센 물살에 갇혀 새로운 물길을 만들기도 하면서 말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한줄기 광선을 희망처럼 투과해 내던 얼음의 투시력에서 나는 물염을 본다. 아니 물염의 정신을 이해한다. 물염이나 얼음은 가만히 깊어지는 것이 아닐까. 맨발로써 세상을 받쳐 들고, 삶의 진정성을 찾아 헤맸던 그가 물염적벽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온다. 노곤한 볕살에 시린 가슴을 데우며 경계로 앉아 있는 나를 바람같이 휘익 지나간다.
 거기 사철 푸른 꽃을 피우는 소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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