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들이 손가락들한테
윤근택(수필작가/ 문장치료사/ 수필평론가)
62년 동안 살아오면서 왜 그걸 여태 깊이 깨닫지 못했던고?
오늘 새벽, 산골 외딴 농막을 나서다가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엿듣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관찰자로서만 바라보고 듣고 하였을 따름.
발가락들이 입 모아 손가락들한테 말했다.
“그래, 우리 같은 ‘끝’은 늘 시려. ‘말단(末端)’은 늘 시려. 너희도 마찬가지지?”
그러자, 손가락 열이 화답(和答)했다.
“ 맞어. 과부 심정 홀아비가 안다더니 ... . ”
손가락 열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을 그렇게 달리 말했다.
발가락들은 다시 손가락들한테 고마움을 표했다.
“ 그런데 너희들 말이야! 아까 방을 나서기 전에 우리네가 얼세라, 양말을 두 켤레씩이나 겹으로 끼워주었어. 너희들도 시릴 텐데, 정작 장갑을 끼기에 앞서. ”
손가락들이 제법 겸양(謙讓)이다.
“ 사실 우리네야 너희들보다 놀림이 재바르니까. 해서,‘재바른 손놀림’이라고들 하지 않던? 특히, 우리들 가운데 엄지와 검지는 웬만한 궂은 일 잘도 해왔잖니?”
그들 주인이 농막 문을 나서자, 이내 발가락들과 손가락들이 엄동설한에 시려, 끊어져 나갈 지경이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오른쪽 손가락들은 자신들이 꼈던 털장갑을 잠시 벗었다. 그러고는 자기 주인의 털신을, 얼른 발가락들이 시릴세라, 신겨주었다. 검지로 구둣주걱 삼아, 발뒤꿈치가 털신에 쉬이 들어가도록 도와주었다.
그러자 발가락들이 일제히 감격해 했다.
“너희들도 시리기는 마찬가지일 텐데, 우리부터 이렇게 챙기다니!”
손가락들은 일제히 손사래 친다.
“원, 별 소릴! 우리야 너희들에 비해 비교적 자유롭잖니? 그에 비해 너희들은 항상 양말에, 고린내 나는 신발에 갇혀, 우리네 주인의 무게를 다 감당해야 하지만... .”
발가락들은, 시릴 때마다 손가락 열이 합심하여 자기네를 먼저 주물러주던 것까지도 기억해 내어 말하였다. 뿐만 아니라, 자기네가 62년여 자기네 주인한테 말없이 봉사해왔던 일을 내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 주인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것도 세상에 태어나서 62년여 만에.
‘그래, 그 누군가가 아무리 비단결 같은 말을 할지라도, ‘하바리 [下--] 인생’들은 늘 시린 법이야! 시린 이들만이 남 시린 걸 진실로 아는 법이야! 그 나머지는 죄다 허위(虛僞)이거나 과시(誇示)일 따름인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