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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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만무방골목/박시윤

에세이향기 2021. 9. 2. 18:51

만무방골목/박시윤 

골목 들머리에 간판도 없는 용역회사가 있다. 사람들은 그곳을 인력시장이라 부른다. 벌써 십 년이 훌쩍 넘도록 이 골목을 지나 다녔지만 나는 아직 용역회사의 업주가 누구인지 모른다. 내가 출근하는 여덟시 무렵이면 용역회사는 벌써 하루를 마무리한 듯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늦게 나왔거나 운이 좋지 않거나​, 무슨 연유로든 일감을 얻지 못한 인부들은 공친 하루를 원망하며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줄담배를 피거나 욕지거리를 해댄다. 인부들의 입은 다소 거칠다. 처음과 끝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절반이고, 설사 알아듣는다 해도 귀를 의심할 만큼 험악하다. 벌써 사흘째 일감을 얻지 못한 인부의 그을린 얼굴에는 웃음이 없다. 곧 시작될 장마에 그나마 있던 일감도 줄어들 터이고, 마른 날만이라도 일을 해야 한다는 그들의 눈은 근심이 서린 듯 허공만 쳐다본다.
 그들의 대화에서 이따금씩 등장하는 업주는 눈이 부리부리하고 ​꽤나 덩치가 크고 성질이 불같다. 여간해선 남자 서넛쯤은 맨주먹으로도 거뜬히 때려눕힌다. 때문에 불만이 있어 함부로 덤벼들었다간 사족도 못 쓰고 병원 신세를 져야 한다. 게다가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어 발도 넓은 데다, 다른 용역회사와 거미줄 식 유대관계를 맺고 있어 한번 눈 밖에 났다 하면 사흘이고 열흘이고, 재수 없으면 평생 이 바닥 일은 접어야 한다. 그나마 일감을 얻었다 해도 업주의 손바닥에서 일할 장소가 정해진다. 사방팔방 흩어져 종일 막노동을 하고 나면 벌어들인 일당에서 얼마간은 업주의 수수료로 제해지고, 손에 잡아 쥐는 건 고작 오륙 만 원이 전부라고 했다.
 나는 상상했다. 분명 아무렇게나 흩어져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있는 저 인부들보다 더 거칠고 악덕한 포주일 것이라고.
 용역회사와 벽을 나눈 쪽문 식당은 매일 북적인다. 일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아니 돌아가지 못한다. 남겨진 사람들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주인은 몸을 바삐 움직인다​.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깡다구가 있어 보이는 기둥서방을 대동하는 날이 드물지 않았다. 식당이라고 해봤자 고작 열 평 남짓, 어디서 주워왔는지 얻어왔는지도 알 수 없는 구닥다리 고물 테이블 세 개가 고작이다. 다 찌그러져 열고 닫히지도 않는 문짝에 '주류일체'라고 쓰인 글씨는 세월에 녹아 퇴색되고 벗겨져 쉽게 알아 볼 수도 없고, 준비해둔 주류라곤 탁배기가 전부인 듯 보인다. 이따금씩 구멍가게를 들락거리며 앞치마에 소주를 숨겨오는 주인의 모습을 보곤 한다. 주인은 탁배기 한 병당 도매가에 떼어 와서 김치나 푸성귀나부랭이 몇 조각과 더불어 삼 천 원에 팔고도 남는 게 없다고 투덜댄다. 그러니 구멍가게에서 소매 값으로 가져오는 소주를 찾는 이는 반가울 턱이 없다. 이따금씩 이문을 운운하며 터무니없는 장삿속의 아낙이라며 따지고 드는 사람에게는 못이긴 척 몇 백 원을 깎아주면서도 다른 곳에 가서 먹어 보라며 눈을 흘기곤 한다.
 인부들은 탁배기 두어 병 사이에 두고 마주 앉는다. 서로 얼굴을 아는 이도 있을 테고, 오늘 처음 면面을 트는 사람도 있을 게다. 내일 다시 보게 될 수도 있고, 오늘로 영영 이 바닥을 떠나는 처지가 될 수도 있는 인연 속에 모두가 이름 없이 '김 씨!', '이 씨!', '박 씨!' 그렇게들 불러댄다. 서로의 처지는 말 안 해도 탁배기 서너 잔 부딪히고 나면 다 통하는 것인지 때로는 의좋게 '형씨'로 바뀌어 있다. 술값은 다해봐야 만원 안팎이고 시시각각 천 원, 이천 원으로 형성된 그들만의 룰을 적용하여 따른다. 간혹 처음 일을 나온 멋모르는 신참들이 잘 부탁한다는 의미에서 한턱내기도 하지만 얻어먹는 사람이나, 술값을 감당하는 사람 모두 형편이 넉넉지 못한 것은 매한가지다. 그럴 때면 주머니 속에서 들쭉날쭉하던 지폐 몇 장이 굳었다며, 횡재를 한 듯 걸걸한 웃음들을 쏟아 놓으면서도 미안해한다.
 쩍쩍 금이 간 벽에 '외상사절'이라는 붉은 글씨가 붙어 있다. 그러나 그것도 무색할 만큼 빈 주머니를 털어 보이며 외상을 긋자 어거지를 쓰기도 하고, 세병 먹은 걸 두 병이라고 우기다가 주인의 기둥서방으로부터 멱살이 잡혀 내쫓기기도 한다. 다 같이 없는 처지에 너무한 것 아니냐며 내쫓긴 자는 주인을 향해 성을 내고, 주인은 벌써 몇 번째냐며 그간의 좋지 못한 행실을 낱낱이 까발리며 삿대질을 해댄다.
 나는 골목의 이런 풍경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다수가 사십의 중반에서 오십을 훌쩍 넘겨 보이는 남정네들은, 내가 출근할 무렵이면 이미 만취한 상태로 골목 바닥을 장악하고 있다. 담벼락에 대고 소변을 보거나 아무렇게나 버젓이 누워 한잠을 자기도 한다. 때로는 이제 막 세 돌을 넘긴 작은 아이를 불러 세워놓고, 천 원짜리 한 장으로 유린하며 고추 좀 만져보자고 으르는가 하면, 재활용 수집 차가 오거나 나와 큰아이처럼 등교나 출근시간에 쫓겨 바쁜 걸음을 치는 사람들에게 길을 열어주기는커녕 되려 비켜가라고 소리를 친다. 공친 하루에 대한 억울한 심정을 보상이라도 하라는 듯 목청껏 삿대질을 해대며 시비를 걸기도 한다. 보다 못한 주민들의 신고로 달려온 경찰들도 아랑곳하지 않고, 해 볼 테면 하라는 식의 무대보 행동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이런 풍경들에 대해 불만이 적지 않다. 하루하루 머리가 굵어지는 큰아이가 어른들의 철없는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염려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했던가. 이사를 생각 안 해 본 건 아니다. 그러나 번번이 시어머니의 반대에 부딪혀 나의 생각은 무산되고 말았다. 육십 평생 이 골목에서 나고 자란 정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시어머니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엎어지면 코 닿을 위치에 홀로 계시는 팔순의 친정노모에 대한 애틋한 마음에서 더더욱 떠나지 못하시리라. 그런 시어머님의 마음을 난들 왜 모를까. 시어머님은 이런 골목들에 대한 풍경을 볼멘 며느리 앞에 조곤조곤 아름답게 여기라 말씀하신다.
 내심 섭섭함마저 든다. 저 양반들 술은 자셔도 해코지 하지 않으니 그냥 점잖게 보아 넘겨도 된다 하신다. 게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삭막해져 가는 골목에 저 양반들 저렇게 터줏대감처럼 버티고 있으니 나쁜 맘먹고 와서도 저 양반들 웅성거리는 모습에 외려 도망가지 않겠냐고 나를 설득하신다. 어머님은 간혹 인부들에게 탁배기 한잔 받아주며 집안의 사소한 일을 부탁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잡곡밥 한 솥 정성껏 안쳐 밥들은 자셨냐며, 아침 댓바람에 술부터 푸면 속 버린다며 그들을 먹이곤 하신다. 그러면서 정 저 사람들이 싫으면 골목 반대 길로 둘러서 다니라고 이르신다. 어머님의 말씀대로 아이와 나는 오 분이면 충분한 거리를 두 배나 먼-길로 돌아다니는 방법을 택했다.
 내가 퇴근할 무렵까지도 서넛은 골목을 떠나지 않았다. 소솔하게 벌어지는 화투판은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 공친 하루의 지루함을 때우기 위한 단순한 놀이 정도인 것 같다. 종일을 패가 돌아도 판돈은 고작 몇 만 원에 불과했으리라. 패가 돌려지고 손에 쥔 화투장이 바닥에 깔린 화투장을 내리칠 때의 소리는, 보지 않아도 그들의 공친 하루에 대한 보상과도 같은 시원함이 묻어 있다.
 취기에 쓰러져 인사불성이 되어 잠든 한 인부의 곁에 가방이 놓여 있다. 오래되어 헤진 틈사이로 흙투성이 신발이며 허름한 옷가지들이 삐져나와 있다. 고장 나 닫히지도 않는 자크 사이로 망치며 톱, 녹슨 공구 따위들이 함께 흘러 내려 있다. 저것들이 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살림밑천 이었을까. 험한 일 속에 함께 동거동락 하는 작업복, 작업화, 손때 묻은 연장들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짠-해오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동정심만은 아닐 게다.
 그러고 보니 남겨진 대다수가 내 아버지와 닮아 있다. 일당쟁이로 하루하루 몸을 빌어야만 목구멍에 풀칠하는 삶들은 보지 않아도 훤하다. 새벽밥 차려대며 가장의 출근을 배웅했을 마나님의 얼굴에는 하루 끝에 묻혀오는 비릿한 돈 냄새가 그리웠을 테고, 하루를 공친 빈털터리 주머니로 돌아가기엔 그들의 어깨가 너무 무거웠을 터이다. 손만 내밀면 일이 만 원을 넘는 자식들의 참고서비와 수십,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교육비에 벌어도 벌어도 채워지지 않는, 끝없는 삶의 허기진 고단함에 등골이 휘었을 게다. 늙어가는 부모가 계실 것이며, 뒷바라지해야 할 자식들을 등에 업고 앞으로 앞으로만 내달리는 중년의 삶이었으리라.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달려온 세월에 삭아 내린 뼈마디의 고통도 떳떳이 드러내지 못하고 그저 괜찮다 괜찮다 서로를 위로하며 오늘도 탁배기 서너 잔에 몸뚱어리의 노동을 파는, 이 시대의 가난한 아버지들이 오늘도 경제가 나아질 것 같지 않다며 근심어린 얼굴로 골목 바닥에 쭈그리고 있다.
 시큼 떨떠름한 탁배기가 보얀 진액을 드러내며 잔 가득히 이시대의 가난한 아버지들의 삶을 위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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