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령 / 김현숙
남편이 대구현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객지생활 3년 만에 집에서 출근하게 되어 내심 반기는 눈치다. 어제는 이전 숙소에 부려놓았던 세간을 옮기느라 이쪽저쪽 두 집이 분주했다. 곧 비울 방이라 여겨서인지 곳곳이 손을 놓고 지낸 흔적이었다. 객지 밥이 아무리 근기가 없어도 그렇지, 살림을 어찌 이만치나 날림으로 살았을까. 홀아비 냄새로 도배한 주방 벽에 양은냄비 하나와 손잡이 부러진 국자 하나가 겨우 달렸고, 몇 날을 깔아놓고 뭉갰는지 모를 이부자리는 작별을 눈치 챘는지 풀이 죽어있었다.
어느 것 하나 착 달라붙는 살림은 아니었지만, 돌아보면 지난 3년 남편의 지친 몸을 꿋꿋하게 받쳐낸 곳이다. 가족의 품을 대신했고 내 시중을 자처한 보금자리였다. 부평초 닮은 삶일지언정 바닥없이 떠돌지 않도록 그이의 마음을 붙잡아 준 곳이기도 했다.
빠뜨린 것은 없나 해서 집 안을 훑는데, 거실선반에 놓인 남편 작업화가 눈에 띄었다. 흙먼지로 지저분했던 신발바닥이 깨끗하게 씻겨있었다. 신발 끈 역시 여느 때보다 공들여 묶은 자국이 엿보였다. 노심초사 현장소식을 기다리던 그이가 저 신발을 붙들고 동병상련을 달랬던 모양이다. 평소 아무렇지도 않게 벗어놓던 작업화였는데, 무슨 심사로 저기에다 올려놓았을까. 혹여나 바라보면서 간절함을 염원했을까. 아니면 잠시 벗어놓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대기발령에 묶여 오도 가도 못한 발이었으니 오죽 갑갑했겠나. 이제 명命은 떨어졌고 함께 출정할 일만 남았다.
올해로 24년째다. 대한민국 전도全圖를 펴놓고 남편이 일했던 현장을 찾아 점을 찍으면, 북두칠성, 목동자리, 양자리를 거쳐 황소자리까지, 밤하늘 별자리를 빼닮은 인생 발자취가 그려진다. 산을 넘기도 하고 강을 건너 돌아오기를 반복한 긴 세월이었다. 이제는 한참을 떠올려야할 만큼 먼 이야기가 된 곳도 있고 가슴 한 자리에 원망으로 남은 현장도 있다. 이삿짐을 싸고 풀면서 유랑하듯 보낸 지난날이지만 펼쳐놓고 보니, 어느 하나 낙오된 것 없이 한 가닥으로 이어져 있었다.
‘만년 대기’ 남편이 스스로를 칭하는 말이다. 십년 전 대형 건설사를 퇴직한 뒤로, 작업복 속에 보호망인 양 걸치고 다니면서 자신을 지켜온 말이기도 하다. 경기가 안 좋으면 우물물도 인색해지는 법이라, 전국각지에 그이가 쌓아올린 기라성 같은 이력들은 능력 밖의 산물이 되어버렸고 주춤하는 건설경기를 따라 공사현장도 눈에 띄게 줄었다. 이런 야박한 물정이 해마다 돌림이 되자, 남편은 ‘만년 대기’라는 말을 앞세워놓고 조급해지는 스스로를 가라앉히곤 했다. 한 현장이 마무리 될 즈음 ‘다음 현장은요…’하며 끝을 흐리는 내게도 뒷말은 꼭 ‘만년 대기’였다. 때를 보자는 말이었다.
사는 일이 대체로 기다림이고 보면, 기다리는 것이 업業인 사람에게 무턱대고 잘잘못을 물을 일은 아니었다.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일도 결국엔 시간이 협조해야 되는 일 아닌가. 아파트 한 층을 올리자면 일단 바닥에 먹줄부터 긋고 봐야하며, 벽면은 어디 저절로 생기나, 거푸집을 채운 콘크리트가 굳지 않으면 주방도 만들 수 없고 거실도 만들 수 없다. 그렇게 한 계단, 한 계단 ‘시간’을 기본자재로 삼아 ‘세월’을 쌓는 일이 건설일이다. 만년 대기가 그래서 만년 대기려니 여기면 남편의 고된 마음이 헤아려지고도 남는다.
지금이야 예민하게 굴 일도 아니지만 십년 전 그때만 해도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남편이 발령을 ‘집’으로 받아 온 해였다. 누구 명命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을까. 그이의 이력이 그렇게 간단한 경력이었나. 무너지고 싶어도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아가던 살림이라서 무조건 버텨야 했다. 골조공사 다된 집을 시멘트 모자란다고 부도낼 일은 아니지 않는가. 남의 돈 돌려가며 생활을 이어가긴 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남편은 누구의 말도 들으려하지 않았다. 땅을 파고 토굴 같은 방을 만들어 숨어버렸고 절망은 에두르지 않고 그이를 토굴바닥으로 끌고 내려갔다. 집 잘 짓는 사람 아니랄까 봐, 지금껏 그만큼 빈틈없이 지은 방은 처음이었다. 성실하게 일 해온 사람이기에 곧바로 부름 받아 나갈 줄 알았다. 하지만 천직과 같은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밀렸다.
속을 끓이는 그이를 보면서 그때 나는 단 한 번도 ‘이번 기회에 좀 쉬는 게 어때요’ 라고 말하지 못했다. 힘들 때마다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솔직히 나는 진정한 동반자라 할 수 없다. 골방으로 파고드는 남편을 밖으로 끌어내고 세상으로 밀어내며 일도, 가정도, 꿈도 포기하지마라고 내 입장만 주문했으니 말이다. 십 년만 고생해, 아니 십오 년만, 저울대 한 쪽에 세월을 올려놓고 가장의 능력과 한계를 내 맘대로 재고 달았다.
그럴 줄 알았으면 선심이나 쓸걸. 내가 아무리 그 사람을 밖으로 밀어냈어도 세상일은 이치가 있고 때가 있었다. 끝내 남편은 일 년을 넘게 쉬었다. 그가 자신의 상황에 익숙해지는 만큼 나는 그 현실에서 두 배로 멀어졌다. 조여 오는 불안과 바닥을 보이는 지갑, 문 열고 드나드는 것이 온통 돈이 아니면 안 되던 시절 가장의 실직은, 자기만 바라보고 있는 식구들을 눈칫밥 먹게 했다. 따로 내색하지 않아도 반찬을 간소하게 냈고, 아이들은 저들 책임인 양 요구가 줄었다. 내가 뭘 더 아끼고 줄이면 남편의 일자리가 늘어날까. 매일 고민했었다. 지나고 보면 힘든 시간도 삶의 프리즘이라, 내 생에 고루 쓰임이 되리라 여기며 버텼다.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오는 시간처럼 그이도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포항 오천에 현장이 하나 났는데 말이야’ 몸담을 회사가 바뀐 날이었다. 규모가 작은 것도 작은 거지만, 이미 공사가 시작된 곳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첫 삽 뜨지 않은 현장이 없었던 사람인데, 일이 진행 중인 데를 가겠다는 말이었다. 그 결정은 뜻밖이었다. 아픈 시간이 쌓이면 순리의 거름이 된다고 하더니, 동굴 같았던 칩거생활의 끝에서 다시 회복의 빛을 보았을까. 일의 규모보다 눈앞에 현실을 먼저 생각해준 그이가 고마웠다. 숭고한 삶의 부름을 받은 사람처럼 남편이 몸을 일으켰다.
발령이라는 이름 안에는 소명calling의 의미가 담겨있었다. 그것은 어떤 태도로 자신의 일을 바라봐야하는지, 새로운 기준점이 되어주었다. 물질적 보상과 성취감을 뛰어넘는 어떤 값어치, 사명使命. 더구나 사람 사는 집이 하늘 끝에 가닿는 세상 아닌가, 그러니 집 짓고 건물 올리는 일만큼은 단순히 밥벌이로 여기면 안 되지 싶다. 남편이 일을 놓고 보낸 지난시간은 허투루 흘러가지 않았다. 그 어떤 누구도 아닌 자신의 힘으로 판단하고 스스로 몸을 일으켰으니 말이다. 해보겠다는 ‘내면의 부름’ 어쩌면 그것이 진짜 발령일지도 모른다.
오늘처럼 숙소살림을 정리하는 날이면, 나는 십년 전 그때를 교과서처럼 꺼내 본다. 낡고 귀퉁이가 찢어진 옛일이지만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살피고 헤아리면 크게 어긋나지 않음을 일러주고 공들여 짓는 삶이 어떤 모양인지 다시 보여준다. 이제 그이는 우리 옆에 있어도 된다는 ‘부름’을 받고 돌아왔다. 얼마가 될 런지 기약은 없지만, 다음현장 때까지 따셨으면 좋겠다. 가족 곁으로 왔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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