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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물들이다 / 전미경

에세이향기 2021. 11. 3. 16:54

물들이다 / 전미경

 

 

 

서녘 하늘은 불의 몸짓이다. 노을이 짜낸 주황빛을 스러지는 뒤태라 하기엔 되살아난 축제장이다. 긴 그리움을 지나 재회의 순간을 맞이하는 연인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달뜬 붉음에 눈빛만 담아도 온몸을 붉게 물들일 것 같은 태움의 시간이다. 마음은 이미 붉음으로, 시간보다 더 빨리 닿아 있다. 이렇듯 붉은 날이 온몸에 스며들 때면 아끼던 소지품 하나 둘 꺼내어 마음을 성형하듯 물들이고 싶다.

서랍 속 빛바랜 손수건이 재회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한때는 부러울 것 없는 귀족의 삶이 아니었던가. 드러내는 일에 가장 먼저 얼굴 내밀던 시절이 있었다. 예를 갖춘 자리일수록 그의 가치는 더했다. 외출할 때나 슬픔을 이기지 못할 때 마음을 닦아 내며 평정심을 유지시켜 주기도 했다. 다시 세상으로 나와 색을 품어, 당당해지고 싶은 것이 그의 간절한 소망이라면 지나친 욕심일까.

물들고 싶은 것이 손수건만의 꿈만은 아닐 터, 누구나 삶의 벅찬 기운이 온몸을 칭칭 감아올릴 때면 변화를 꿈꾼다. 이런 날은 오염되지 않는 빛깔 속으로 빠져들어 전신을 물들여도 좋을 터,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을 기대한다. 물들인다는 것, 얼룩진 내 안의 불순물이 녹아내리고 새롭게 거듭나는 귀한 시간의 결합이다.

천연의 색이 주는 편안함 때문일까. 시선 닿는 곳마다 자연이 풀어낸 빛깔이 하늘과 땅의 색을 닮았다. 천연염색은 자연에서 색을 얻는 일이기에 화학적이거나 인위적이지 않아 거부감이 없다. 오염되지 않은 색이 그대로 스민 탓에 기울인 정성만큼 색을 연출한다. 물들인다는 건 치우침 없는 바른 상태로 모나고 부족한 부분이 중화되는 행위다. 참이라는 진실의 손을 내밀 때 얼룩진 무늬를 지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물이 잘 들여진 사람을 만나면 눈빛에서 넉넉한 인심을 읽을 수 있다. 따뜻함과 부드러움이 그를 흥건히 적시고도 여유로 남아 향기로 흐른다.

자연의 빛 따라 치자 물을 곱게 우려낸다. 염색은 무엇보다 매염제의 역할이 중요하다. 천에 색이 스며들수록 자연친화적 농도는 수위를 제어한다. 섬유와 염료의 만남이 옅거나 짙지 않도록 조화로운 중매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물들여지는 염색처럼 거부감 없는 빛깔에서 이해와 배려가 읽힌다. 물들여지는 건 손수건만이 아니다. 내 안에 자리한 닦아 내지 못한 마음에도 물이 들고 있다.

세상 밖으로 꺼내놓지 못해 꽁꽁 싸맨 상처까지도 물들여져 그 깊이에서 거듭나는 간절함을 대야 속으로 밀어 넣는다. 깨어나지 않으면 얼룩진 색을 품은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침묵하면 상대의 표정과 마음을 더 잘 읽을 수 있기에 입술에 무게를 달고 색을 기다린다. 입을 통해 흘러나간 언어의 씨앗이 부메랑 되어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면 무한의 책임을 느낀다. 이성과 감정의 줄타기에서 늘 앞서가는 것은 감정의 뜀박질이다. 마음을 담금질하면서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할 터이다.

손수건이 치자 물을 받아들이는 동안 부유물처럼 떠다니던 기억에 변화가 깃든다. 이해의 부족으로 탈색된 색, 배려의 부족으로 빛바랜 색, 양보의 부족으로 군더더기 얹힌 색이 몸을 뒤척이며 새 빛을 기다린다. 통증 없는 성장은 없을 터, 원하는 색으로 물들여질 때까지 깎이고 마모되는 순간을 견뎌낼 일이다. 오랜 시간 방황의 굴레에서 서성거렸던 이유도 품어야만 물들여지는 기다림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살아가면서 참 많은 색과 마주하게 된다. 자신의 원하는 색으로 물들고 싶어도 그 빛깔을 흡수하지 못하는 때가 종종 있다. 염색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결합이 어느 것 하나라도 제 임무를 다하지 못하면 바라는 빛깔을 얻지 못한다. 소재의 재질과 두께, 염료의 종류와 농도, 매염제의 선택, 햇살과 바람의 양에 따라 드러나는 색은 천차만별이다. 쉽게 얻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마흔을 거뜬히 넘고 그 끄트머리에 서고 보니 타인의 마음이 읽히기 시작한다. 이기가 보이면서 배려가 읽히고 각진 마음이 보이면서 사랑도 읽힌다. 지인의 색이 나의 색이 되면서 또 다른 색을 연출하기도 한다. 마음이 교감되는 이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생각을 하며, 뜻을 같이할 때 서로에게 어울리는 색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얼룩진 색을 지워내는 일은 퇴색된 빛깔 위에 다시금 붓질을 하는 게 아니라 빛바랜 색을 과감히 벗겨내는 일이었다. 또 자신을 알아가며 걸러내고 보듬는 시간 속 정리이기도 했다. 그 속에는 스스로의 모습을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는 나만의 기록이 들어 있었다.

색동저고리는 하늘과 땅의 기운으로 모여든 색이다. 해와 달, 산과 강, 흙과 나무의 생명이 자연의 빛으로 스며들어 색색이 조화를 이룬다. 마치 물이 잘 들여진 듯 어색함이 없다. 서로의 색을 도드라지게 자신의 색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농도를 낮춤으로써 상대의 색을 높이려는 색동을 보며 어우러짐의 본보기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흐뭇하다.

자신과 부대끼는 사람들 속에서 융화하며 지내다 보면 각자의 빛깔이 옅게 혹은 짙게 드러난다. 같은 색이라도 누구와 함께 어우러지느냐에 따라 색은 달라 보인다. 저마다의 빛과 향기에 어울리는 색은 동색일 수도 있고 보색일 수도 있다. 품는 시야에 따라 명도도 달라진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 듯 가장 잘 품는 색일수록 존재의 의미는 돋보인다.

소멸의 시간에 가까울수록 어둠에 물들기 위한 준비는 이미 차려진 만찬이다. 쪽을 가까이하면 푸른빛으로 물들여지고 목단을 가까이하면 붉은 빛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온몸으로 스며든다. 또 어둠을 가까이 하면 전신은 검은빛에 둘러싸여 사방을 분간할 수 없게 만든다. 쓴소리, 단소리 모두를 흡수하는 물들임은 어색한 외부를 끌어안는 지혜의 눈일 터, 도드라지지 않음이 오해려 색을 더 선명히 할 수 있음을 참음과 기다림에서 배운다.

손수건이 색을 입는 동안 자신을 깨우는 물들임일까. 퇴색된 빛은 온데간데없고 선명히 드러난 색이 긴장을 풀어낸다. 빛바랜 손수건이 치자 물 곱게 배인 인내의 빛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노랗게 물든 손수건이 습하고 어둔 기운을 몰아낸 듯 환하다. 저물어 가는 해의 뒤태가 세상 근심 모두를 끌어안을 태세다. 내 안에 갇혔던 희미한 빛에도 소망하던 색이 도는 듯 설렘이 찾아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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