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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할머니들 / 정희경

에세이향기 2021. 12. 26. 09:23


길 위의 할머니들 / 정희경
 
 
 


 
내가 사는 동네에는 벌거벗은 가게가 몇 곳 있다. 간판도 없고 커다란 유리벽도 없고 계산대도 없고 심지어 출입문조차도 없다. 횡단보도의 양 끝자락이나 버스 정류장 옆, 길이 휘어지는 모퉁이에 보자기만 한 가게들이 온종일 그림처럼 앉아 있다.
 
그 가게에는 끝없는 행인의 발길이 이어진다. 출퇴근길이나 약국에 가거나 정육점에 가거나 혹은 천 원 김밥집으로 가기 위해서 그곳으로 온다. 그저 지나가기 위해서.
 
발길들은 잠시도 머무르지 않는 물결처럼 무심하다. 가게들의 주인인 할머니들은 그 끝없는 변화와 흐름에도 아랑곳없이 밑바닥에 단단히 박혀 강물을 지키는 자갈 같다.
 
내가 한 점 물살처럼 거리로 흘러나왔을 때 할머니는 벌써 어디로부턴가 나와서 물끄러미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손수레에 가게를 싸 갖고 다닌다. 상품들은 할머니의 몸 둘레에 오밀조밀 펼쳐져 있다. 앞줄에는 푸른 고추 한 줌과 진보랏빛 윤기가 독처럼 흘러내리는 가지 서너 개, 엉덩이를 맞댄 통통한 양파 몇 알, 빨간 소쿠리에 담긴 노란 참외 몇 개가 자리를 잡았다. 뒷줄엔 검은 콩 보리 조 찹쌀 팥 따위의 곡식 봉지들이 밀가루 반죽 덩어리처럼 포개져 있다. 가장자리에 쌓아 올린 하얀 뻥과자 봉지는 후텁지근한 열기 속에 죽은 물고기의 부레처럼 떠 있다. 행인의 눈길을 잡아끌지 못하는 이 보잘것없는 상품들은 마지막까지 할머니의 생을 지키는 늙은 몸속의 낡은 내장은 아닐까. 아무도 모르게 잠깐 그것들 위에 닿았던 내 시선이 마르게 젖는다.
 
어쩌면 줄줄이 딸린 식솔들일지도 몰라. 젊은 시절 할머니가 부양해야 했던 시할머니․시어머니․시누이․시동생․아들․딸․조카들까지. 입들은 많았겠지. 전쟁으로 남편을 잃거나 바람처럼 밖으로만 떠도는 사내를 대신해 한 집안을 책임져야 했던 질박하고 강인한 지난 세대의 맏며느리들. 지금 저 길 위에 무심무심 흩어져 있는 것인지도 몰라.
 
어쩐지 내겐 그 할머니들이 그저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만 그곳에 나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수없이 그곳을 지나쳤지만 실제로 물건이 봉지에 담기고 돈을 주고받는 것을 본 것은 고작 한두 번에 불과하다. 대형마트에 가면 없는 물건이 없다. 번지르르한 상품에 길들인 도시 사람들의 눈에 자신의 물건이 어떻게 보일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속곳 주머니에 쓸 만큼의 돈은 이미 마련해 두었는지도 모른다. 장성한 자식들이 옷이나 맛좋은 음식에 큰 욕심이 없는 할머니에게 꼬박꼬박 얼마간의 용돈은 챙겨 줄지도 모른다. 어려운 시절, 가난을 버텨 온 억척의 습성으로, 남아 있는 생의 무료함을 번잡한 이 거리에 하루하루 조금씩조금씩 팔아 버리기 위해 밖으로 나오는지도 모른다. 그제도 어제도 팔지 못한 푸성귀와 곡물들을 오늘도 내일도 글피도 주섬주섬 챙겨서 말이다.
 
아니, 어쩌면 그게 아닐지도 모르지.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노년의 절박한 생계 수단일는지 또 누가 알까.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거나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차마 물을 수 없는 질문을 나처럼 누구나 한 번쯤은 가져 보았을 것이다.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유물 같은 것들을 건성건성 훑어보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 할머니들은 이따금 아주 귀한 것들을 갖고 나온다. 무더위에 입맛이 뚝 떨어진 팔월, 아스팔트 위로 펄쩍 뛰어나온 개구리처럼 등짝이 푸릇푸릇한 울타리 호박이 그것이다. 할머니도 그것의 진가를 아는지 몇 덩어리의 호박은 생활정보지에 꼭꼭 싸여 있다.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는 뒤통수만 살짝 열어 놓고 은근히 자랑을 한다. 일 년 중 단 한 번만 찾아오는 뜨내기손님에게 삼천 원을 부른다. 히에-, 작은 비명이 새어 나온다. 오백 원만 깎아 달라고 입품을 팔아 보지만 할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쩟쩟,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어 보다가 하는 수 없다는 듯 삼천 원을 내민다. 
'이거- 진짜여어.'
  꾸깃꾸깃한 비닐봉지에 호박을 담아 올려 주는 검고 주름진 손등이 돌아가신 내 할머니를 닮았다.
 
집에 돌아와 가운데 칼을 넣으니 금세 구슬처럼 맑은 진액이 송글송글 배어 나온다. 코끝을 대어 본다. 드문드문 어린 씨가 박힌 노릇한 속살에서 싱그러운 여름 들판의 향기가 살랑살랑 흘러나온다. 귀한 여름이 달아나 버릴까 봐 얼른 랩을 붙여 두었으면 싶은 생각마저 든다. 따박따박, 호박을 채 썰고 풋고추를 다져 부침개 몇 장을 구우면 한여름은 그 무엇보다도 고소하고 맛있다. 한 그릇에 사천 원을 받는 유명 제과점의 팥빙수는 댈 게 아니다. 하나 더 사서 참기름을 넣은 호박 볶음도 해 먹으면 어떨까. 그러나 소나기와 태풍에 여름은 가 버렸다. 울타리 호박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길 위의 할머니들은 지역 신문 기자 노릇을 해도 좋을 것이다. 구청이나 주민센터 직원들보다 이 동네를 훨씬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자동차와 행인의 통행량과 어떻게 자동차 사고가 났는지, 지난여름의 기온과 이번 겨울엔 며칠 동안 폭설이 내렸는지, 언제 방학을 시작하고 개학을 했는지, 맞은편 빵집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또 언젠가는 저 허름한 차림의 할머니가 와이셔츠를 반듯하게 다려 입은 대학 철학 교수보다도 멋지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횡단보도에서 잠시 서 있었을 때 나는 할머니의 야릇한 시선을 목격했다. 할머니의 눈은 세상 밖으로 나가 있었다. 허름한 상품들 가운데 몸은 그대로 붙어 있었지만 시선은 복잡하고 시끄러운 길 위를 벗어나 저 먼 허공에 물끄러미 꽂혀 있었다. 마치 유체 이탈이라도 일어난 듯.
 
그때 나는 할머니가 타임머신을 타고 잠깐 과거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지 곤지 찍고 족두리를 쓰고 혼례를 올리던 일, 첫아이를 낳고 젖을 먹이던 일, 술에 취해 밥상을 뒤엎었던 남편, 병든 시어머니의 배설물을 받아내던 일, 졸업식 날 학사모를 씌워 주던 장남…… 도깨비처럼 흘러가 버린 할머니의 인생은 이제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홀연히 세상을 벗어난 먼 눈길 속에나 차곡차곡 포개져 있을 뿐.
 
철학 교수가 오랜 연구 끝에 얻어낸 성과, 스님이 수행 끝에 알아낸 깨달음, 목회자의 설교의 오묘한 뜻을 할머니는 이미 다 깨우쳐 알고 있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이제는 그리 많은 말들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요즘은 실제 나이보다 젊은 외모를 가진 할머니들이 많다. 빨간 립스틱도 바르고 밝고 세련된 옷차림도 즐긴다. 그러나 그런 멋쟁이 할머니가 나의 할머니 같지는 않다. 아이구, 내 새끼 내 새끼, 하며 까맣게 웃던 주름지고 햇볕에 그을린 얼굴, 속곳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지폐를 꺼내 과자 사 먹으라고 쥐어 주시던 손, 배탈이 난 작은 배 위를 둥글게 둥글게 돌아가던 그 손바닥의 거친 무늬, 그것들만이 내 할머니 같다.
 
또 한 시대가 지나가고 나면 길 위에서 가난한 살림의 밑바닥을 일구던 자갈 같은 할머니들은 모두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국 유목 민족 여자의 것처럼 너무 질기고 따가운 태양에 소실점을 잃어버린 내 할머니들의 눈동자, 먼 기억의 박물관 속에나 가만히 박혀 있을 것이다. 아주 오래된 그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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