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 / 황영선
언제쯤이면 엄마라는 한 권의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배꼽 부위가 떫은 감 하나가 떨어져 나간 자리 같이 아릿하다. 가만히 손을 뻗으면 만져지는 몸의 중심 자리인 그곳. 두 손 모으면 자연스레 그곳에 손이 가닿는다. 그곳은 엄마에게서 나에게로, 나에게서 또 자식에게로 보이지 않는 길이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곳이다. 종착역인가 하고 돌아보면 그곳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점이었다.
탯줄을 끊고 배꼽을 묶었던 어린 딸아이가 작년 여름, 제 아비를 꼭 닮은 사윗감을 소갤 시키더니, 날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어미와 자식으로 몸이 분리된 지는 오래 되었지만, 지금껏 마음이 분리되지 않은 채 살아왔나 보다. 딸아이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데 어미가 딸을 떼어내지 못해 분리 불안증이 생긴 모양이다. 딸을 시집보내는 이제야 겨우 막내딸을 시집보내던 엄마의 마음을 읽고 있다.
자식은 내게 엄마라는 따뜻한 이름을 달아준 소중한 생명이었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준 삶의 원동력이었다. 딸아이도 살면서 가끔씩 어미 생각을 할 것이다. 머지않아 딸아이도 곧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자식의 배꼽을 묶으며 엄마로 거듭 태어날 것이다.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크나큰 울음소리와 함께 탯줄을 끊고 묶으며 새로운 길을 열던 그 꽃자리.
복주머니를 묶은 듯한 몸의 중심에 자리한 배꼽! 엄마랑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던 길이 끝난 그곳에서 새로운 길은 시작된다. 끝없는 갈등과 허기 속에서 때론 줄을 듯이 괴롭고 고달프지만, 마음 한가운데서는 무언가 새록새록 움트는 그 무엇이 있다. 마음이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도 나를 붙잡아주었고, 달아나고 싶고 회피하고 싶었던 순간에도 나와 직면하게 하던 그 흔적!
배꼽은 꽃씨 같은 희망이 움트는 곳이다. 우마차를 타고 가족 나들이를 가고 있는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 그림 속 풍경처럼 행복에 겨운 가족의 모습은 보는 이조차 즐겁다. 배꼽을 다 드러낸 채로 입천장이 보이도록 웃어대고 있지 않은가. 가족은 그런 것이다. 떨어져 있으면 그립고, 얼른 만나고 싶고, 함께 있고 싶은 존재인 까닭이다.
잠시만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도 딸아이는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을 미주알고주알 다 들려주고 싶은지 늦도록 교신하고 있다. 저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며 알콩달콩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겠지. 까만 깨알 같은 씨앗이 박히곤 하던 감꽃 같은 배꼽에 입을 맞추며 방귀 소릴 내며 까르르 웃음 짓는 아이를 가진 부모가 될 것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들어서면 온갖 피로가 스르르 녹아들고 긴장이 풀리어 새로이 충전을 할 수 있는 그런 가정을 이루었으면 좋겠다. 집의 평수가 아니라 마음의 평수를 넓혀가며, 손자 손녀가 생겼을 때쯤이면 마음이 시골 학교 운동장만큼만 넓어졌으면 좋겠다. 느티나무 그늘을 드리우고 흙을 밟는 푸근함을 알며 씨앗을 묻는 즐거움을 알아갔으면 싶다.
가정이란 것은 밭두렁의 호박 구덩이 같은 곳인지도 모른다. 착박한 삶의 무대였지만 삶의 질긴 숨결이 살아 있는 그곳에서 뻗어 나온 줄기에 주렁주렁 호박이 열리듯 자식들이 열리었다. 나는 그중에서 늘그막에 생긴 애호박 같은 막내딸로 태어나 잦은 병치레를 하며 자랐다. 손수 단발머리를 깎아주시던 부지런하고 손재주 많으신 아버지와 묵묵하게 뒷바라지하며 슬기롭고 억척스럽게 집안을 꾸려가시던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어렴풋이 부부의 모습을 봤다. 큰 결정을 해야 할 때면 비로소 나의 자리가 엄마의 자리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무엇을 버리고 취할 것인지 큰 줄기를 잡아가야 할 때면, 나도 모르게 손이 얹히곤 하는 배꼽 자리! 가족은 존재만으로도 따뜻한 위로가 되어야 함에도 때론 쓸쓸함을 안겨 드렸고, 전부를 쏟아 부으며 흙 거름이 되어 사셨음에도 부모니까 당년히 그렇게 사시는 건 줄로만 알았다. 얼마나 많은 것을 접으며 꿋꿋이 부모의 자리를 지켜내셨는지를 이제야 조금 가늠해 보는 것이다.
배꼽 둘레가 여름날 박하꽃이 피어나듯 화하다. 배꼽 아래 길게 남은 흉터의 자리에 손이 가서 얹힌다. 내 몸을 거쳐 두 생명을 세상에 내보낸 흔적이다. 한 녀석은 산달을 넘겨 낳았고 한 녀석은 조금 일찍 세상에 내보냈다. 몸이 자라고 생각이 자라더니, 이제 둘 다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외치며 독립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 짝을 찾고 새 둥지를 마련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딸아이는 씩씩하게 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엄마인 내가 잠시 중심을 잃고 휘청거린 건지도 모른다. 오솔길이라도 괜찮다. 이젠 마음을 내려놓고 딸아이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해주어야겠다. 엄마를 추억하는 한 삶이 궤도를 벗어나는 일은 없을 듯하다. 자식이 아니라 친구처럼 말동무가 되고 의지가 되었다던 딸의 빈자리!
진정 엄마는 그렇게 딸자식을 떼어 보내놓고 홀로 견디느라 사투를 벌이고 있었음을. 신혼집을 구하지 못해 시댁에서 지낼 때, 연락도 없이 사돈집 대문 밖에 나타나셨던 엄마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새벽길을 나서 예고도 없이 그렇게 막내딸을 보어 오셨던 것일까.
한동안 나에게 안부를 묻질 못했다. 배꼽 위에 두 손을 모으고 엄마를 생각한다. 마음을 어미고 또 여며도 소금 같은 찝찔한 눈물이 삐어져 나온다. 시집간다는 딸에게 해 줄 말이 참 많았던 것 같은데, 막상 할 말이 없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큰소리치면서도 엄마의 삶을 닮아간다고 하지 않던가.
‘딸아 넌 분명히 잘해 낼 거야! 사랑해!’
'좋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간은 어떻게 껍질을 벗는가 / 최민자 (0) | 2021.12.27 |
---|---|
길 위의 할머니들 / 정희경 (0) | 2021.12.26 |
숟가락 이야기 / 류미월 (0) | 2021.12.24 |
달달한 자궁 / 피귀자 (0) | 2021.12.21 |
파도에 너울거리는 비릿한 것들/마경덕 (0) | 2021.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