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각시를 찾아서
신성애
검은 비닐봉지를 든 한 노인이 들어선다. 희끄무레한 피부에 군데군데 검버섯이 피었고 머리에는 낡은 베레모를 눌러썼다. 모자를 벗으니 드러난 머리카락은 얼룩덜룩 제멋대로 자라있다. 목덜미를 덮도록 뒷머리는 덥수룩하고 귀 옆머리는 유난히 짧다. 면도날로 집에서 노인이 직접 밀었다는 옆 머리카락은 짝짝이다. 이발을 하고 싶다는 노인이 베레모를 다시 쓰고서 뒷머리를 만지며 거울 앞에 선다.
“미용사 양반, 삐어져 나온 머리를 얄브리하게 잘라주구려. 내사 암만해도 잘 안되는기라.” 머뭇머뭇 말을 건네고도 웬일인지, 노인은 의자에 앉을 생각을 않으신다. 나는 영문을 몰라 돌아선 노인의 다음 동작을 기다리며 애꿎은 거울만 문지르며 서있다. 노인은 소파에 놓아둔 검은 비닐 봉지를 집어들더니 나에게 다가와 속을 펼쳐 보인다. 레자 날이 달려있는 도끼 빗과 금 이간 손거울이 까맣게 절어있다. 빗질하면 자동으로 머리카락이 잘리는 빗을 꺼내 보이며 그것으로 다듬으면 쉬울 것이라고 하신다. 나는 그 빗이 없어도 멋있게 해 드릴 수 있다고 노인을 안심시키고 머리를 다듬기 시작한다.
앞머리와 정수리에는 몇 올의 머리카락만이 남아있고 주변머리는 아직도 머리카락이 무성하다. 지내온 세월, 그 만큼의 시간이 묻어있는 노인의 머리카락 모양새이다. 나는 최대한 머리카락을 살리면서 조심스럽게 커트를 한다. 말끔하게 잘린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사이로 노인의 가슴 두근거림이 느껴진다. 꼬깃꼬깃 꿍쳐 두었던 지폐를 호주머니에서 꺼내며 염색을 하고싶다고 말씀하신다. 손부끄럽다며 한사코 내민 노인의 마음을 담아 나는 머리카락에 물들일 채비를 한다. 비닐로 옷을 감싸고 염색약을 섞고있는 손길을 잠자코 바라보던 노인이 조바심을 내신다.
“하얀 염색약이 시간을 질게두면 지질로 검어지는 거요?”
“아니에요 .색깔별로 다르게 약이 나와요, 노랑머리가 하고 싶으면 노란색으로 빨강머리를 하고 싶으면 빨간 색으로 하면 돼요. 요사이는 회색이나 흰머리를 하는 사람도 있어요”.
“거참 희한하구려, 내는 까마구처럼 검게 해주구려”.
“네. 어르신, 십 년은 땡겨드릴께요”
나는 노인의 지난 생이 묻어나는 머리카락을 뒤적이며 이랑이 되어 있는 뒷머리부터 염색을 시작한다. 누리끼리하고 허연 머리카락이 차츰 차츰 어두운 색으로 변해간다. 마치 늦가을 익은 벼가 낫질에 쓰러져 드러눕듯 자 부러진다. 숨죽은 머리카락이 검게 물들자 노인의 두상이 추수 끝난 들판의 무논처럼 보인다. 그 무논에는 봄부터 못자리를 내고 피사리를 하던 노인의 젊은 날이 펼쳐진다. 두루마리 그림이 풀어진 그곳에는 키보다 큰 지게를 지고 땔감을 구하러 산을 헤매던 코흘리개가 있다. 맨몸으로 마련한 논마지기 앞에 선 뿌듯한 표정의 청년이 있다. 울타리를 만들어 폭풍우를 견디어낸 굳건한 가장이 거기 있다.
뒤적이는 머리카락사이로 어린 벼 모종은 자라고 개구리도 개굴개굴 터를 잡고 울고있다. 농부의 발자국소리가 논두렁을 타고 넘으면 이슬을 먹은 벼 포기는 쭉쭉 자랐다. 그랬다. 듬성듬성 난 잡초를 걷어내면 여름내 자라난 벼 포기는 나락으로 탱탱하게 여물어 갔다. 그 해 가을, 장마 속의 햇살처럼 잠깐 얼굴 비치고 알곡은 손안에서 사라져버렸다. 쭉정이가 된 노인만이 빈집을 지킨다. 바람만이 거침없이 낡은 대문을 흔들다가 제 풀에 지쳐간다.
지친 마음 내려놓은 거울 속 노인의 머리카락이 추수 끝난 들판처럼 휑하다. 유년의 기억을 품고있는 주변머리는 보송보송하니 무성하고, 정수리의 머리는 거의 민둥산과 다름없다. 생의 기를 소진해버린 탓일까. 앞머리는 숫제 훤한 운동장이다. 제 갈길 찾아 모두가 떠나버리고 홀로 남아있는 노인의 모습이 주변머리에 머물고있다. 몇 올 남지 않은 정수리의 머리카락은 이제 마지막 남은 생명줄인양 위태롭다. 어둡고 쓸쓸한 노인의 일상에 남아있는 주변머리가 온전히 제구실을 할 수 있을까. 한껏 좁아진 앙상한 어깨위로 짙은 외로움이 는개처럼 내려앉는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주변의 역할은 생색을 내지 않은 한 망각의 늪에 묻히기 마련이다. 복판이 환히 빛날수록 주변에 서있는 사람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지아비라는 이름으로 가장자리를 내어주고 바람막이로 살아온 노인이 석양 앞에 서있다. 나는 노인의 머리카락 속에서 힘들게 한 시대를 살아온 이 땅의 모든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우리는 때때로 주변이 감싸고 있기에 가장자리가 존재한다는 걸 잊을 때가 많다. 사람의 머리카락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머리카락이 뭉텅 뭉텅 빠지기 전까지는 모든 선망의 시선은 앞머리와 정수리에 쏠리고 주변머리에는 눈길조차 보내지 않는다. 관심도 지나치면 해가되는지, 무대를 장식하던 가장자리부터 머리카락은 빠지고 남은 것은 괄시받던 주변머리뿐이다. 이제는 더 이상 보듬어야할 정수리가 없어도 주변머리는 남아서 제자리를 지킨다. 주변머리와 노인은 늦게 야 동행이 된 동병 상련을 가진 친구의 모습이다. 가야 할 길이 뻔한데 주변머리마저 없다면 노년의 머리모양은 얼마나 더 삭막할 것인가.
찬란히 빛나는 정오의 태양보다 때로는 황혼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황톳길을 걸어본 사람은 안다. 움츠리고 닫혀있던 노인의 가슴을 열고 누군가가 주변을 에워싸고 가장자리로 밀어 올린다. 거울 앞에 서서 주변머리를 끌어올려 빈 머리를 메우려고 자꾸만 거꾸로 빗질을 한다. 매무새를 고치고 마음을 다잡은 노인이 다시 금 바깥세상으로 나들이를 하려한다.
어쩌면 나락 베어낸 발자국마다 우렁이가 터를 잡은 것처럼 노인의 황량한 가슴에도 우렁각시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말쑥하게 손질된 머리를 매 만지며 노인은 손거울로 뒷모습을 비춰본다. 검게 물들여진 주변머리가 노인의 얼굴에 생기를 돌게 한다.
“이만하면 공원에서 할멈들이 한번 쳐다봐 줄라나.”
독백하듯 중얼거리시며 비스듬히 베레모를 쓰고 어깨를 으쓱 이며 골목길을 빠져나간다. 어딘가에 숨어 있을 우렁각시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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