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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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동태 / 김덕임

에세이향기 2022. 3. 16. 11:54

동태 / 김덕임

 


 


꽃샘바람이 분다. 운명의 신이 나를 시샘이라도 한 것일까.
죽어서도 감지 못한 똘망똘망한 내 눈. 그 속에는 오호츠크해의 끝 모를 수평선이 빗금처럼 그어져 있다. 까치파도에 부대끼는 수평선 위로 주먹만 한 별들이 밤마실을 내려왔고, 나는 세상모르고 그별들과 밤드리 노닐었다.
매초롬한 몸매로 파도 속을 유영하던 날이다. 촘촘한 그물이 느닷없이 내려왔고, 검푸른 바다를 붕새의 날개처럼 에워쌌다. 그때는 검은 바다의 물주름도 숨을 죽였다. 출구가 빤히 보이지만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는 미로였다. 갖가지 편법에 능숙한 인간들은 이럴 때도 미꾸라지처럼 잘 빠져나갈 텐데, 마음속에서만 수백 겹의 물마루가 굽이쳤다. 나에게는 그런 재주가 겨자씨만큼도 없다. 내 탓일까. 조상 탓일까.
그 후, 몸단도리할 틈도 없이 집채만 한 냉동고 속에 안치되었다. '자의 반 타의 반'도 아닌 온전히 타의他意에 의해서다. 뱀이라도 기어가는 듯 선뜩한 기운이 등줄기를 훑었다. 감을 잡을 수 없는 우주 같은 냉동고 안이다. 몸 거죽이 얼기 시작하면서 나의 일생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맨살에 엉긴 추위가 뼛속까지 톱날처럼 파고들었다. 이런데도 인간들은 자연을 보호한단다. 위선이다.
'명태 살려!' 불을 먹은 듯한 비명은 오호츠크해 해빙선 밑의 얼음덩이처럼 입안에서만 떠다녔다. 그 순간은 땅거미 같은 절망으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체념과 상실감이 드잡이를 하던 뇌속이 하얗게 비어버렸다. 드넓은 바다에서 키워오던 붕정만리鵬程萬里의 꿈은 한순간에 재가 된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기왕 이렇게 된 바에 동안거冬安居에 든 선승이 되어보리라.'는 다짐이다. 그 순간, 시시각각 마비 되어가는 나의 몸 구석구석을 또 다른 내가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것 아닌가. 아주 편안하게도 굳어가는 육체의 고샅에서 오감五感이란 다섯 아이가 들락날락 숨바꼭질했다.
미끈하던 몸뚱아리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서서히 깃을 세운다. 등과 배와 꼬리에 돋아 있는 지느러미 하나도 내 몸이 아니다. 세포 틈새마다 슴배드는 차가운 공기에 내장까지 모두 얼어붙는다. 숨이 무한정 내 것인 줄만 알았는데, 그것을 주신 이가 도로 앗아가려 한다. 끝내는 생각의 덩어리인 푼더분한 머리통까지 의식이 희미해진다. 아가미 밑을 쉬지 않고 드나들던 숨이 서서히 멎는다. 산사山寺를 떠나서 험산 준령을 타는 종소리의 맥놀이처럼.
바다에선 해초 이파리 하나의 몸짓에도 촉각을 세우던 나였다. 그러던 몸피가 오감을 잃어버리고, 활활 타는 아궁이에 넣으면 금방이라도 불길이 옮겨 붙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믐날 밤 별들처럼 정신은 더욱 말짱해졌다. 말간 영혼은 누에 실 같은 숨이 끊어져가는 내 안을 들여다본다. 해탈解脫의 경지에 든다는 게 이런 상태일까? 이대로 면벽 수도하여 성불成佛할 수 있다면….
그뿐이 아니다. 바닷속을 유영할 때 귀담아 들었던 나에 대한 동화 같은 이야기가 또렷이 떠오른다. 내 이름은 원래 동태가 아니고 명태였다. 함경도 명천군에 사는 '태' 씨라는 어부가 잡아서 관찰사의 밥상에 처음 올렸다. 그때까지는 이름도 없는 천덕꾸러기였던 것이다. 나리님께서 이름 없는 물고기의 시원하고 캄칼한 국물 맛에 푹 빠져버렸다. 그리고 그는 명천군이라는 지명과 어부의 성씨를 버무려서 '명태'라는 멋진 이름을 하사했다.
자연 만물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리고 변화에는 감당키 힘든 나름의 고통이 따른다. 나라고 여전할 수 있을까. 명태가 동태로 변하던 아픔이라니. 유태인의 가스실 같은 냉동고에 갇혀서 명태는 듣도 보도 못한 '동태'라는 이름이 되었다. 수많은 선조들이 일제 치하의 한민족처럼, 낯선 이름으로 개명당할 때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런데 억누를수록 솟구치고, 밟아 썩히면 발효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인 것을 어쩌랴.
여수항 수산물 공판장에 동태 상자가 포갬포갬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하늘에 닿을 듯하다. 동태라는 이름의 인기는 세월을 넘어 사시사철 사그라지지 않았다. 당랑거철螳螂拒轍, 두 뼘 안팎의 얼어붙은 내 키가 그 산더미인 양 우쭐해진다. 윤똑똑이이다.
60여 년 전, 함평 문장장터 말미에 화투짝 같은 간판을 내건 어물전 앞이었다. 동태 짚꾸러미 하나를 생강 같은 손에 쥐려고 장꾼들이 줄을 섰다. 그날 금곡 마을 초가마다 저녁이 풍성했다. 칠이 벗겨지고 흠집이 많은 두레상은 호롱 불빛으로 불콰했고, 둘러앉은 일곱 식구의 숟가락은 시원한 국물로 남실거렸다. 장작개비 같던 나의 또 다른 변신으로 이루어진 보시였다. 그 순간이 바로 영장靈長인 인간과 하나되어 대지에 스며드는 귀소歸巢의 시각이 아닐까.
하나뿐인 내 몸을 인간들에게 통째로 주어버린 뒤의 이 풍요를 저들은 알까? 주검까지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되는 이 평화를 ….
그저 안분지족安分知足할 뿐이다. 동태라는 이름 외에 더 무엇을 바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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