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멀못 / 권현숙
마당 한쪽에 우두커니 서있는 커다란 독 하나가 눈길을 붙든다.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상처투성이 몸을 볕살에 내맡긴 채 졸고 있다. 넓고 두툼한 입술 아래쪽에서부터 당산나무 허리춤 같은 배를 지나 발바닥까지 죽 이어진 거물 흔적이 돋을새김으로 뚜렷하다.
나무그릇이나 독에 금이 가서 깨질 염려가 있거나 갈라져버린 곳의 양쪽을 꽉 거머쥐어 원래의 모양대로 고정시켜주는 것을 '거멀'이라 한다. 봉합수술시 의료용 찍개처럼 물건과 물건 사이 버성긴 부분을 원래의 모양대로 단단히 붙잡아 고정시켜주는 것을 이른다. ㄱ자나 ㄷ자로 양 끝을 구부려 만든 머리가 없는 거멀못은 박힌 모양새 때문인지, 찰싹 달라붙어 거머쥐는 힘 때문인지는 몰라도 별칭이 찰거머리로 불린다.
예전에는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금이 가거나 깨진 독을 고쳐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깨져버린 독은 십중팔구 버려지는 신세가 된다. 바가지나 됫박을 기워 쓰는 일처럼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연함이라고는 없이 완강함만 남은 몸은 상처를 어루만져줄 손길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 그들은 상처로 잔뜩 날이 선 독을 잘 다루는 신박한 재주를 지녔다.
세심하게 상대의 마음을 살피듯 먼저 상대의 결부터 읽어낸다. 그리고 바짝 메마른 독을 물로 흠뻑 적셔준다. 초근해진 상처의 가장자리를 따라 작은 못을 대고 살짝 홈이 파지도록 소도리로 조심스레 두드린다. 패인 홈을 송곳으로 살살 돌려 파낸 뒤 나란하게 뚫린 양쪽 구멍마다 거멀못을 끼운 다음 뾰족한 끝을 서로 마주보게 두드려 박는다. 마지막으로 몸통 전체에 굵은 철사로 둥글게 테를 메우고 나면 한 십여 년은 너끈히 더 쓸 수가 있다.
철사로 거멀해놓은 담벼락을 본 적이 있다. 꼭대기에서부터 바닥까지 세로로 난 상처를 가로 땀으로 기워놓은 모양이 흡사 화투장에 나오는 흑싸리를 꼭 닮았다. 담벼락까지 꿰맬 생각을 한 주인의 기발한 발상이 웃음을 불렀다. 명의가 따로 없구나싶어 탄복하다가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노쇠한 집을 사력을 다해 지키고 선 담벼락이 안쓰러워졌다. 주어진 임무를 다하느라 한 평생 팽팽했던 신경줄을 이젠 그만 놓아버리고 싶지는 않을까. 눈치 없는 주인장 덕분에 더 살게 되었다고 좋아할까 슬퍼할까. 담벼락의 속내를 헤아려보느라 한참을 붙박이로 서 있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거멀못의 사명은 묵직하다. 보잘 것 없는 못이겠거니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단단하게 냉철해 보이는 겉모습 속에는 화합을 위한 의지가 결연하다. 뾰족한 생김새와 달리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기꺼이 내 한 몸 내어주겠노라, 각오도 둥글둥글 품었다. 서슬 오른 상처들을 보듬어 제 몫을 다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극히 이타적인 삶을 살아간다. 상처가 더 크게 벌어지거나 덧나지 않도록 온몸을 던져 양쪽을 단단히 잡아주는 일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여고시절 어느 봄날, 단짝과 불통 뛰게 싸웠던 적이 있다. 하루라도 안 보면 죽고 못 살던 친구와 한길에서 벌인 난투극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내게로 성난 황소처럼 내달려온 친구가 다짜고짜 내 뺨을 냅다 후려쳤다. 엉겁결에 불벼락을 맞은 뺨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화살처럼 날아와 꽂혔다. 미친 듯 악다구니를 써대는 친구의 눈빛은 무섭고도 낯설었다. 무지막지 달려들던 친구와 영문도 모른 채 머리끄덩이를 틀어잡고서 길바닥에 나뒹굴었다. 순전히 친구의 오해로 빚어진 사태였다. 죄도 없이 옴팡지게 당한 사실이 억울하고 분해서 그예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또 다른 '나'라고 여겼던 친구이기에 야속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은 단단하던 우정의 벽을 쩍 갈라놓았다.
단짝친구와 멀어진 동안 얼마나 마음을 앓아댔던가. 시간이 지날수록 원망과 미움은 점차 수그러들었지만 마룻장 위에 쓸데없이 튀어나온 못대가리 같은 자존심 때문에 여전히 아프고 괴로웠다. 명백한 치구의 잘못인데 어째서 먼저 손 내밀지 않는 걸까. 한번 씩 툭툭 괘씸해졌다. 유연하게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나도 싫었다. 여러 날들이 지나 갈라졌던 우리사이를 친구들이 나서서 어찌어찌 다시 붙여주었다. 흉터는 남았지만 오해가 화해로 바뀐 후 우정은 보다 더 야물어졌다. 그때 거멀못이 되어주었던 친구들이 있었기에 지금은 추억을 우려먹으며 살아간다.
못은 바탕재료보다 더 강한 재질이어야 한다. 깨져버린 사이를 가운데서 든든하게 잡아주어야 하는 거멀못은 여느 못보다 더욱더 강해야만 한다. 천도가 넘는 뜨거운 불 속을 견뎌내기는 독이나 거멀못이나 마찬가지다. 두 번의 불가마속을 거쳐 말랑했던 흙은 돌처럼 단단한 독으로 태어난다. 유연함을 몽땅 잃어버린 탓에 작은 충격에도 깨져버리기 십상이라 갓난아이 다루듯 해야 한다. 거멀못은 독보다 수십 번은 더 달춰지고 숱한 메질과 담금질을 당하면서 점점 더 강해진다. 그럼에도 끝내 유연성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강하지만 구부러질 수도 있기에 벌어진 상처를 힘껏 끌어안고 든든히 버텨낼 수 있는 것이리라.
평생의 글벗이려니 여겼던 문우와 사이가 깨져버린 지 두해가 지나도록 벌어진 상처가 아프다. 서운함과 원망이 조금씩 엷어진 자리로 슬금슬금 그리움이 들어와 앉는다. 꿈속에서나 풀어지는 그리움이 허탈함을 안겨줘도 내 자존심은 여태도 뾰족한 모양이다. 도무지 구부러질 용기가 나질 않는다. 먼저 손 내밀어볼 아량은 고사하고 누군가 다시 우리 사이를 감쪽같이 거멀해주기만을 고대하고 있는 꼴이라니.
……
나무그릇이나 독에 금이 가서 깨질 염려가 있거나 갈라져버린 곳의 양쪽을 꽉 거머쥐어 원래의 모양대로 고정시켜주는 것을 '거멀'이라 한다. 봉합수술시 의료용 찍개처럼 물건과 물건 사이 버성긴 부분을 원래의 모양대로 단단히 붙잡아 고정시켜주는 것을 이른다. ㄱ자나 ㄷ자로 양 끝을 구부려 만든 머리가 없는 거멀못은 박힌 모양새 때문인지, 찰싹 달라붙어 거머쥐는 힘 때문인지는 몰라도 별칭이 찰거머리로 불린다.
예전에는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금이 가거나 깨진 독을 고쳐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깨져버린 독은 십중팔구 버려지는 신세가 된다. 바가지나 됫박을 기워 쓰는 일처럼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연함이라고는 없이 완강함만 남은 몸은 상처를 어루만져줄 손길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 그들은 상처로 잔뜩 날이 선 독을 잘 다루는 신박한 재주를 지녔다.
세심하게 상대의 마음을 살피듯 먼저 상대의 결부터 읽어낸다. 그리고 바짝 메마른 독을 물로 흠뻑 적셔준다. 초근해진 상처의 가장자리를 따라 작은 못을 대고 살짝 홈이 파지도록 소도리로 조심스레 두드린다. 패인 홈을 송곳으로 살살 돌려 파낸 뒤 나란하게 뚫린 양쪽 구멍마다 거멀못을 끼운 다음 뾰족한 끝을 서로 마주보게 두드려 박는다. 마지막으로 몸통 전체에 굵은 철사로 둥글게 테를 메우고 나면 한 십여 년은 너끈히 더 쓸 수가 있다.
철사로 거멀해놓은 담벼락을 본 적이 있다. 꼭대기에서부터 바닥까지 세로로 난 상처를 가로 땀으로 기워놓은 모양이 흡사 화투장에 나오는 흑싸리를 꼭 닮았다. 담벼락까지 꿰맬 생각을 한 주인의 기발한 발상이 웃음을 불렀다. 명의가 따로 없구나싶어 탄복하다가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노쇠한 집을 사력을 다해 지키고 선 담벼락이 안쓰러워졌다. 주어진 임무를 다하느라 한 평생 팽팽했던 신경줄을 이젠 그만 놓아버리고 싶지는 않을까. 눈치 없는 주인장 덕분에 더 살게 되었다고 좋아할까 슬퍼할까. 담벼락의 속내를 헤아려보느라 한참을 붙박이로 서 있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거멀못의 사명은 묵직하다. 보잘 것 없는 못이겠거니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단단하게 냉철해 보이는 겉모습 속에는 화합을 위한 의지가 결연하다. 뾰족한 생김새와 달리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기꺼이 내 한 몸 내어주겠노라, 각오도 둥글둥글 품었다. 서슬 오른 상처들을 보듬어 제 몫을 다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극히 이타적인 삶을 살아간다. 상처가 더 크게 벌어지거나 덧나지 않도록 온몸을 던져 양쪽을 단단히 잡아주는 일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여고시절 어느 봄날, 단짝과 불통 뛰게 싸웠던 적이 있다. 하루라도 안 보면 죽고 못 살던 친구와 한길에서 벌인 난투극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내게로 성난 황소처럼 내달려온 친구가 다짜고짜 내 뺨을 냅다 후려쳤다. 엉겁결에 불벼락을 맞은 뺨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화살처럼 날아와 꽂혔다. 미친 듯 악다구니를 써대는 친구의 눈빛은 무섭고도 낯설었다. 무지막지 달려들던 친구와 영문도 모른 채 머리끄덩이를 틀어잡고서 길바닥에 나뒹굴었다. 순전히 친구의 오해로 빚어진 사태였다. 죄도 없이 옴팡지게 당한 사실이 억울하고 분해서 그예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또 다른 '나'라고 여겼던 친구이기에 야속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은 단단하던 우정의 벽을 쩍 갈라놓았다.
단짝친구와 멀어진 동안 얼마나 마음을 앓아댔던가. 시간이 지날수록 원망과 미움은 점차 수그러들었지만 마룻장 위에 쓸데없이 튀어나온 못대가리 같은 자존심 때문에 여전히 아프고 괴로웠다. 명백한 치구의 잘못인데 어째서 먼저 손 내밀지 않는 걸까. 한번 씩 툭툭 괘씸해졌다. 유연하게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나도 싫었다. 여러 날들이 지나 갈라졌던 우리사이를 친구들이 나서서 어찌어찌 다시 붙여주었다. 흉터는 남았지만 오해가 화해로 바뀐 후 우정은 보다 더 야물어졌다. 그때 거멀못이 되어주었던 친구들이 있었기에 지금은 추억을 우려먹으며 살아간다.
못은 바탕재료보다 더 강한 재질이어야 한다. 깨져버린 사이를 가운데서 든든하게 잡아주어야 하는 거멀못은 여느 못보다 더욱더 강해야만 한다. 천도가 넘는 뜨거운 불 속을 견뎌내기는 독이나 거멀못이나 마찬가지다. 두 번의 불가마속을 거쳐 말랑했던 흙은 돌처럼 단단한 독으로 태어난다. 유연함을 몽땅 잃어버린 탓에 작은 충격에도 깨져버리기 십상이라 갓난아이 다루듯 해야 한다. 거멀못은 독보다 수십 번은 더 달춰지고 숱한 메질과 담금질을 당하면서 점점 더 강해진다. 그럼에도 끝내 유연성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강하지만 구부러질 수도 있기에 벌어진 상처를 힘껏 끌어안고 든든히 버텨낼 수 있는 것이리라.
평생의 글벗이려니 여겼던 문우와 사이가 깨져버린 지 두해가 지나도록 벌어진 상처가 아프다. 서운함과 원망이 조금씩 엷어진 자리로 슬금슬금 그리움이 들어와 앉는다. 꿈속에서나 풀어지는 그리움이 허탈함을 안겨줘도 내 자존심은 여태도 뾰족한 모양이다. 도무지 구부러질 용기가 나질 않는다. 먼저 손 내밀어볼 아량은 고사하고 누군가 다시 우리 사이를 감쪽같이 거멀해주기만을 고대하고 있는 꼴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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