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한 때를 소요하다 / 김애자 행2025. 2. 2. 4:00URL저녁 한 때를 소요하다 / 김애자 나는 11월을 좋아한다. 11월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경계선에 놓인 징검돌이다. 단풍의 축제도 11월 중순이면 막을 내린다. 여기저기에서 나뭇잎은 바람이 불지 않아도 제물에 시나브로 떨어진다. 산책길은 물론 아파트 보도블록 위에서도 발자국을 떼 놓을 적마다 자박자박 밟힌다. 그야말로 일엽지추(一葉知秋)다. 떠날 때를 스스로 알고 돌아가는 잎들의 소연한 귀의가 아름답고도 쓸쓸하다. 현자들은 이런 현상을 두고 우주의 질서라 하였다.우주의 질서는 참되다. 소멸하는 것들이 있어야 태어나는 것들이 생긴다. 11월은 멸하는 것들뿐이다. 추수를 마치니 논도 밭도 텅 빈다. 텅 비어야 논두렁과 밭두렁이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