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발표작 평론

2023년 <수필과 비평> 4월호 월평

에세이향기 2023. 4. 9. 10:12

500

작가로서의 자각 / 엄현옥

 

 

1.

 

쓰는 일의 장점은 어떤 일보다 자유롭다는 점이다. 자영업자라 할지라도 업무 시간은 지켜야 하지만, 작가는 원하는 시간에 쓰고 싶은 만큼만 쓰면 된다. 경제적인 욕심만 내려놓는다면 이만한 일도 없다. 작가는 작품을 쓸 때마다 새로운 도전을 한다. 글을 쓰는 한 도전이 끝나지 않는다는 점도 장점이다. 대부분의 일은 근무 연한이 있어 정년퇴직이 적용되지만 작가는 예외다. 한 번 해병이 영원한 해병이듯 작가는 영원한 작가다.

 

그러나 그 노릇도 쉽지만은 않다. 캐내지 못한 보물은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으로 모니터 앞에 앉지만, 내가 하려던 말은 이미 누군가가 해버렸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렇다고 공산품을 생산하는 작업자처럼 무언가를 쉼 없이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굴복할 필요는 없다. 글쓰기에 몰입하는 즐거움과 쓰는 일의 보람을 맛보기 위해서는, 고통의 가치를 믿고 쉼 없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쓰는 일만이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작가는 일상에서도 작품에 대한 상념을 쉽사리 떨쳐내지 못한다. 산책길에서도 글감을 떠올리고 청구서인양 받아놓은 청탁이 글빚으로 여겨질 때도 있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 영혼의 자유를 누리고자 시작한 글쓰기이건만 현실은 글 감옥이 따로 없다. 모든 대상이 작품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을 수는 없음에도, 한 편의 글을 완성하기 위한 작가의 예리한 촉수는 수면에 떠오른 빙산氷山의 보이지 않는 부분처럼 일상의 곳곳에 잠식해 있다.

 

 

2.

 

《수필과비평》 3월호에 발표된 작품에서도 무의식에 강박처럼 자리한 좋은 수필에 대한 열망과 작가로서의 자각을 읽을 수 있었다. 일상의 습관으로 자리잡은 메모가 단순한 기억의 기록 장치가 아닌, 창작과정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단서로 작용하는가 하면(차재문의 〈메모개론〉), 낙화烙畵 명인의 대작 앞에서 자신의 글쓰기를 들추어보는 계기로 삼는다(변종호의 〈인두의 궤적 낙화烙畵〉). 마음과는 달리 글 한 편 쓰기도 버거운 작가는 다작의 결실을 거둔 작가들을 보며 멀리 뛰기에 부적절한 자신의 보폭을 자책하고(이용미의 〈멀리 뛰기〉), 더 이상 페달을 밟지 않게 된 낡은 자전거를 보면서도 문학의 열망을 벼리며(이정숙의 〈페달밟기〉), 오직 글로써 자신이 작가임을 입증하고자 한다. 분리수거장에 내팽개쳐진 책 묶음을 보며 책들의 속엣말에 귀 기울인다(황진숙의 〈헌책 경전〉). 오로지 작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사유와 고뇌다.

 

- 차재문의 〈메모개론〉

 

21세기에 등장한 메모광狂의 기록이 있다. 차재문의 〈메모개론〉이다.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기에 인간 기억 회로는 모든 것을 담아내지 못한다. 기억의 속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지거나 왜곡되므로 메모를 통해 기억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년의 유배 생활에서 정치, 지리, 의학, 철학 등 600여 권의 저술을 남겼던 것은 평소 필기구를 지니고 다니며 기록했기 때문이다. 연암 박지원 선생도 알려진 메모광이다. 연암은 1780년 중국 사절단에 간신히 합류하게 되자 맨 먼저 한 일이 지필묵을 챙기는 일이었다. 호기심이 강한 그는 압록강에서 열하까지의 일정 내내 자신이 보았던 신기한 모습과 다양한 광경을 메모했다. 이것이 〈열하일기〉의 발단이며, 메모가 있었기에 그토록 생생한 글이 나왔을 것이다. 필기도구조차 변변치 못했을 그 시절에는 메모도 예삿일이 아니었으리라. 〈열하일기〉가 오늘날에도 고전으로 읽히는 이유는 치밀한 메모를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기 때문이다. 진실을 능가할 무기는 없다, 여기에서의 진실은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는 메모에서 기인한다.

차재문에게 메모는 경험과 사유, 독서를 지피는 불씨이며 글쓰기의 자양분이여 창작의 마중물 역할을 한다.

 

나는 뒹굴다 여물어진 메모 밥을 먹고 산다. 밥 욕심이 대단하여 사방 곳곳에 메모를 남겨놓는다. 식탁, 서재, 화장실, 베개 끄트머리, 운전대 옆 도어포켓, 책장에도 메모한다. 책을 읽을 때는 A4 용지, 신문을 볼 때나 화장실에서는 포스트잇, 용어 개념을 해석할 때는 마커펜을 들고 냉장고에 부착한 화이트보드에 적는다. 버스나 기차 타고 여행 다닐 때는 휴대폰에 저장된 메모장이나 수첩을 이용한다.

 

차창에 스치는 풍경은 눈으로 메모하고 생각에 잠기는 인상은 감성의 진폭을 높이면서 끼적인다. ‘연초록’을 메모할 때는 봄의 소리를 듣고 ‘진초록’을 메모할 때는 여름 물이 들었다고 반긴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빛날 때는 손가락 힘을 빼면서 단숨에 한 편의 글을 써 내려간다. 생각이 이탈해 균열이 생길 때는 흘림체의 글줄들이 이어지다 끊어진 곳곳에 환칠의 흔적을 남긴다.

- 차재문의 〈메모개론〉에서

 

차재문의 메모는 시간과 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으며, 내용도 가시적인 형상의 기록에 한정되지 않았다. 계절이 전한 자연의 미세한 떨림까지도 메모에 담아내다 보면 한 편의 글로 탄생하기도 한다. 이쯤되면 차재문 작가를 메모광의 반열에 올려도 손색이 없지 싶다. 청년기부터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글로 쓰고 싶었던 작가는, 그런 내용의 메모에 적극적으로 매달렸으나 점차 부드러움의 힘으로 상처를 보듬곤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힘들고 지칠 때마다 메모지를 찾았다. 내가 사랑하는 메모가 내 곁에서 오래 남아주길 바란다. 수필가의 숙명으로 메모라는 씨앗을 심어 깊은 사유의 글 꽃을 피우며 살고 싶다.

 

메모는 고유한 존재다. 존재는 삶을 추동시킨다. 작가의 메모는 불멸, 긴장, 논리, 감성이 버무려진 팽팽한 승부의 호흡을 연출한다. 메모를 키우고 지우는 과정에서 심연의 글들이 탄생한다고 나는 믿는다.

- 차재문의 〈메모개론〉에서

 

작가에게 메모는 기억해야 하는 내용을 적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찰나의 영감이 떠오를 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우발적 현상이지만 작품의 토대로 작용한다. 좋은 메모는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닌 화두를 던지는 것이라는 경지에 도달한 작가에게, 시간의 흐름만큼 메모도 숙성되었다. 숙성된 메모는 세상과 작가를 위무하는 한 편의 글로 스며들 것이다.

 

차재문의 메모 유용론을 읽으며 필자는 한 편의 수필을 떠올렸다. 이하윤의 〈메모 광(狂)〉이다. 〈메모 광〉은 수필이 문학 장르로 자리매김하기 이전이라 볼 수 있는 1958년 발간된 《서재여적書齋餘滴》(경문사, 1958)에 게재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교수 수필집인 《서재여적》에는 당시 활발하게 수필을 쓰던 17명의 인문학자들의 작품이 실려 있다. 피천득, 박종화, 양주동을 위시한 필진들의 대표작은 오늘까지도 회자되곤 한다.

 

“내 메모는 내 물심양면(物心兩面) 전진하는 발자취며, 소멸해 가는 전 생애 설계도(設計圖)이다. 여기엔 기록되지 않는 어구(語句) 종류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광범위한 것이니, 말하자면 내 메모는 나를 위주로 한 보잘 것 없는 인생 생활 축도(縮圖)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쇠퇴해 가는 기억력을 보좌하기 위하여, 나는 뇌수 분실(分室)을 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이하윤의 〈메모 광(狂)〉에서

 

자칭 ‘메모광’이라고 부를 만큼 메모에 집착했던 선생은,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기록해야 직성이 풀렸다. 선생은 단순히 메모에 미쳐있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가 메모였으며 평소 철저한 정리 습관으로 물건을 분실한 적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집에서 메모 봉투를 잃어버렸다. 그것을 찾기 위해 ‘기차로 두 정거장이나 가서도 십 분 이상을 걸어야 하는 친구 집을 그 길로 다시 되짚어 찾아’가 메모 봉투를 찾아내고야 만다. 그것을 발견했을 때 즐거움을 무엇에 비기랴. 비로소 평소에 드문 편안한 잠자리에 들었다고 할 정도다.

 

이 일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그의 메모 습관은 자신의 말대로 ‘병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반면, 서술의 이면에는 자신만의 메모 습관에 대한 긍정과 자부심이 엿보인다. 선생은 사소한 일상에서 찾은 소재로 자신의 개성을 형상화하는 동시에, 자신의 습성을 진솔하게 고백하여 독자들의 유쾌한 공감을 이끌어냈다.

 

65년이 흐른 뒤에도 읽히는 〈메모 광〉의 매력은, 마땅히 기록했어야 할 것을 미처 기록해두지 못했을 때 느끼는 자괴감에 대한 진솔한 고백 때문이다. 메모를 “쇠퇴해가는 기억력을 보좌하기 위한 뇌수의 분실分室”로 서술한 대목은 자신의 메모 습관에 대한 재미있는 변辨이다. 메모를 대신할 각종 매체 사용이 일상적인 현대인으로서는 선뜻 공감할 수 없으나, 메모를 “보잘 것 없는 인생 생활 축도縮圖”라 했을 만큼 메모에 빠져있었기에 사회적인 중책을 감당해냈을지 모른다.

 

다시 차재문의 〈메모개론〉으로 돌아가 보자. 작가가 힘들고 지칠 때마다 메모지를 찾은 이유는 메모야말로 수필가의 숙명이라는 자각 때문이리라. 차재문에게 메모는 작가로서의 존재 증명이자 심연의 사유를 한 편의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발원지다.

 

내가 지금까지 끼적거린 메모는 온 사방에 차고 넘쳤다. 진짜 좋은 메모는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화두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질문은 지금 없는 것의 만남이다. 쌓이면 메모 추억이 되고 기다림의 시간만큼 메모는 숙성된다.

 

숙성되고 곰삭은 메모들이 한 편의 글로 완성되어 세상을 매만지고 위로할 때 비로소 나는 작가라는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리라.

- 차재문의 〈메모개론〉에서

 

이상의 결미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작가에게 메모는 단순한 기억의 기록 장치가 아닌, 창작과정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단서다. 숙성된 메모에는 “지금 없는 것”과의 만남인 질문이 담겨있다. 작가에게 메모가 화두의 의미를 지니듯, 삶 자체가 인간에게 던지는 화두일지 모른다. 삶은 화두를 풀기 위한 과정이다. 차재문에게 고유한 존재인 메모는 작가로서의 자신을 입증하는 창작 노트다.

 

-변종호의 〈인두의 궤적 낙화烙畵〉

 

작가가 친구인 문인 화가와 함께 충북 보은을 찾아간 것은 불로 새기는 예술작품인 낙화烙畵장인을 만나기 위해서다. 귀한 지필묵을 구할 수 없던 민초들에게서 유래했던 낙화는 달구어진 인두가 절묘하게 만들어내는 전통 회화다. 작가가 만난 장인의 거친 손은 그간 장인이 걸어온 고단한 길을 짐작케 했다. 인두를 수없이 달구어 화선지에 남긴 궤적만으로 불상을 구현해야 하는 낙화의 공정은,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과정이다. 변종호의 마음을 사로잡은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는 조선 후기 화원 이인문의 대작으로 장인이 원작을 텍스트 삼아 일 년 남짓 매달려 완성했다. 장인의 예술혼으로 재해석하여 병풍으로 되살린 이 작품은 가히 낙화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할 만하다.

 

한동안 “강산무진도”를 바라보자니 계곡을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들려오고 흔들리는 나뭇잎도 보였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암만 봐도 이 대작을 수많은 인두질로 탄생시켰다니 감동이다. 회화이자 공예인 낙화는 물감처럼 잘못된 부분을 덧칠하여 수정할 수가 없다. 창작보다 모작 재현이 더 어렵다는데 미친 듯 매달렸을 것이다. 벌겋게 피어오른 숯 화로 옆에서 염천에 쏟은 땀은 얼마이며, 달궈진 인두질에 굳은살이 박이고 빗나간 인두로 데인 상처도 무수했으리라.

 

작가가 강산무진도에 매료된 것은 원작의 완벽한 재연 때문이 아니다. 평면의 작품에서 계곡의 물소리를 듣고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을 본 것이다. 캔버스에 붓칠한 작품이 아닌 화선지에 불로 달군 인두가 구현한 작품 앞에서 창작에 기울였을 장인의 피땀을 짐작한다. 국가가 인정한 낙화장이라는 영예로 그 공을 인정받았다. 세계에서 유일한 그 경지에 이르기까지 이면에 담긴 고뇌의 시간은 얼마였을까.

 

50여 년이 넘는 인두질의 장인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내가 걸어온 문학의 길이다, 일 년여 밤낮으로 몰입해 한 작품을 완성시켜 감동을 안긴 작품이 있을 리 없다. 원고청탁을 받으면 바닥난 사유의 샘을 길어 올리고 독자의 입맛에 맞추려 한 달간 전전긍긍한다. 나름 통찰의 사유를 넣고 비유로 버무려 간결하나 진솔한 문장으로 세상에 내놓고 나면 아쉬움만 남는다.

 

작가는 낙화 장인의 작품에서 받은 경이로움은 단순한 감동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글쓰기를 점검하며 창작의 변辯을 토로한다. 변종호의 작가 정신은 “삶의 무늬를 언어로 표현하는” 자신의 문학과 미술이라는 장르의 접점 앞에서 고뇌한다. 다른 장르의 예술 작품의 감흥이 사라지기 전에 자신이 걷고 있는 문학의 길을 곱씹으며 자신만의 문맥을 이어야할 이유를 찾고 있는 것이다.

 

- 이용미의 〈멀리 뛰기〉

 

이용미 작가는 평소 정류장에서 버스 발판을 딛고 거침없이 인도로 훌쩍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들은 자신과는 달리 모두 멀리뛰기에 능한 사람들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작가가 등하굣길에 건너야 했던 냇가의 돌다리는 작은 보폭으로도 건널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돌다리를 건너다가 책보 틈에서 빠져나온 주판이 물에 빠졌다. 당시 귀한 신문물이었던 소중한 주판은 간신히 건져냈으나 바지도 양말도 이미 찬물에 젖은 터였다. 그 일을 회상하면, 지금이라도 두 발을 모아 뛰는 일도 문제없을 듯한데, 마음뿐이다.

작가는 넓은 보폭으로 버스를 가볍게 오르내리는 승객들을 보며, 연이어 작품집을 낼 정도로 창작 활동에 열심인 사람들을 떠올린다.

 

끊이지 않고 글을 쓰고 연이어 책을 내는 사람들을 멀찍이 바라본다. 멀리뛰기 선수들이다. 두 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그 모습을 보며 내 두 발을 앞뒤로 흔들어 본다. 장애는 아니다. 걸을 수도 있고 건강을 지키는 보행법을 알려준 대로 실행도 해보지만, 잠깐이다. 마음은 성큼성큼 걷는데 실지 내 보폭은 발 길이와 별 차 없이 쪼작 대서 쪼재기라 놀리던 옛 옆집 살던 할머니 생각을 하게 된다. 글 한 편 쓰기도, 힘 있게 한발 한발 내 걷는 것도 왜 이리 힘이 드는지 마치 악몽 같아서 빨리 깨어났으면 싶다.

 

삶은 경보競步나 단거리 경주가 아닌 장거리 산책에 가깝다. 사람마다 보폭이 다르고 걸음걸이가 다르기 때문에 빨리 걷고 멀리 가기 위한 조급함보다는 나만의 보법步法과 보폭步幅을 유지하면 된다. 자신에 알맞는 걸음으로 걸으면 그뿐, 다른 이의 걸음걸이에 마음을 기울일 일은 아니다. 보폭이 좁거나 느리게 가는 사람이 도리어 멀리갈 수 있다.

 

작가들이 글이 쓰여지지 않을 때의 불안함을 토로하는 경우는 많다. 무심히 스칠법한 일상의 장면에서도, 더디기만한 자신의 집필활동을 떠올린다. 글을 쓰지 않는다 해도 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작가로서의 소명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수필의 보편화된 특성의 하나인 자아반영적 요소는 장르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수필은 체험을 단서로 하기 때문에, 자성自省의 문학인 수필에서의 자아반영은 숙명일는지 모른다. 머지않아 넓지 않은 자신의 보폭을 도움닫기 삼아 더욱 멀리 뛸 작가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이정숙의 〈페달 밟기〉

 

작가의 자전거 타기 이력은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웃 마을 양조장에 막걸리 심부름을 하며 밟기 시작한 페달은 자동차가 생기기 전까지 작가의 일상을 지탱해준 빛나는 도구였다. 현재는 자전거 주차장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멈추어 있는 자전거를 바라보는 마음은 마음이 무겁다.

 

지금은 흉물로 변한 자전거를 살리기 위해서는 다시 페달을 밟아야 한다. 달리기를 멈춘 자전거의 추레한 모습은 글쓰기에 몰입하지 못한 자신을 불러오는 계기로 작동한다.

 

어언 등단 20여 년이 지났다. 당구집 개 삼 년이면 스리쿠션을 친다는데 몇 곱절의 세월을 보내고서도 허우적거리며 쩔쩔맨다. 어쩌자고 글을 쓰려 했을까? 타고난 재주도 없을뿐더러 생生이 힘들어 끄적거리던 낙서가 한 채 집이 되었다. 그래, 해보자. 발심한 게 초년생 글쓰기 시작이었다. 그리고 하느님의 보우로 문단에 입성했다. 봐라! 나는 글쟁이다. 어깻죽지에 황금 날개가 돋친 듯했다. 그러나 그뿐이다. 황금 날개로 허공화를 붙잡으려고 바둥거렸다. 있지도 않은 도구를 가지고 있지도 않은 대상을 욕망했다. 이름값을 하려고 몸이 달았다. 그러나 어찌하리. 저 높은 곳은 정말이지 높아도 너무 높았다. 봉황이나 앉을 자리에 참새가 시늉을 한다고나 할까. 가뜩이나 문재文才가 없다고 자탄했던 터라 더럭 겁이 났다. 한 데서 추레하게 누워있는 자전거가 떠올랐다. 저것이, 흉물이 되어버린 저것이 가슴을 쳤다. 자전거는 무죄다. 다만 페달을 밟지 않아 죽은 척할 뿐이다. 그렇구나! 계속 페달을 밟지 않으면 자전거는 만사휴의萬事休矣, 글쓰기를 실행하지 않아 동동거리는 나의 욕망도 만사휴의, 하등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밟아야 한다. 그래야 자전거도 살고, 나도 산다는 절박함으로 쓰러진 자전거를 일으켜 세웠다. 내 마음도 함께 기립시켰다.

 

등단 20년이 지난 작가의 일상을 짓누르는 부담은 글쟁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쓰지 않는다 하여 비난받을 리 없으나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진 친교 활동만 무성하고 정작 글쓰기는 뒷전임을 토로한다. 자신의 욕망과 독대한 작가에게는 페달을 밟아주지 않으면 자생할 수 없는 자전거와 마찬가지로, 쓰지 않으면 문학이 주는 즐거움도 한갓 헛되고 헛되다고 생각한다. 오직 쓰는 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작가로서의 자각은 여운이 길다.

 

-황진숙의 〈헌책 경전〉

 

〈헌책 경전〉에서는 분리수거장의 폐지로 전락한 책들이화소로 등장한다. 한때는 서가에서 애지중지했을 책들을 유심히 들춰보니 사서삼경에서 백과사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수험서나 별책부록, 교양 도서도 같은 처지로 전락했다.

 

손때로 얼룩진 헌책도 한때는 모서리도 반듯한 새 책이었으며 잉크 냄새만으로 존재감을 입증했으리라. 페이지마다 들어찬 활자는 “사라진 제국과 머나먼 우주의 연결고리로, 문명의 수레바퀴로, 뭇사람들의 길잡이” 역할로 제 몫을 해냈다. 지금은 노끈에 묶인 채로 수거를 기다리는 책들은 역사, 천문학 도서는 물론 인문학과 실용도서는 누군가의 삶에 없어서는 안될 영혼의 양식이었으리라. 작가는 헌책을 들여다보며 서재 주인이 한 때 지식의 바다를 항해하며 밑줄을 긋고 책장을 넘겼을 장면을 떠올린다.

 

책을 문명의 상징물로 떠받들던 시대가 있었다. 선비들은 책을 구하기 위해 책 동냥을 하거나 어렵사리 구한 책은 표지에 비단을 씌워 애지중지했다. 직접 읽지 못할지라도 책가도를 그려놓고 대리만족을 했던 정도로 서책의 위상은 막강했다. 책가도는 조선 후기에는 문文을 중시했던 정조의 문치 정치의 표상한다. 책가도는 그림은 궁중과 상류 계층 뿐만 아니라 서민들에게까지 확산되어, 민화의 핵심적인 주제로 자리 잡았다. 책은 이렇듯 그림으로라도 대리소장하고자 했던 귀하신 몸이었으나 시대를 거스를 수는 없다. 언제부턴가 등장한 형체도 부피도 없는 전자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어찌 이리 됐을까. 시대를 잘못 타고난 불운을 탓하며 구시렁거리는 순간, 예까지 바람이 불어닥친다. 무작스러운 바람이 사정없이 따귀를 갈긴다. 아직도 과거의 영광에 머물러 있느냐고 일침을 놓는다. 디지털로 진화한 세상을 따라잡았느냐고 묻는다. 차라리 이쯤에서 e-book에 투항해 납작 엎드리란다.

 

각종 편리함으로 무장한 e-book의 효용은 알지만 전자책으로 전향할 수는 없다. 종이책 특유의 매력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종이를 펼쳤을 때의 냄새와 분위기. 손이 기억하는 촉감, 마음에 드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 등 아날로그 감성을 발산하기엔 그만한 대상도 드물다.한 때는 단순한 소장 욕구로 인해 종이책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수집하여 그것들로 가득한 서가를 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그런 장점에 매료되어 종이책을 읽다보면, 책장에 쌓여가는 책들이 부담으로 여겨질 때가 있다. 리더기 하나만으로 어디서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전자책이나 음성으로 지원되는 책을 보거나 듣고 나면,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왠지 책을 본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독서를 할 때면 대부분 한 번에 읽기보다 여러 번 나누어 읽게 된다. 책을 덮거나 펼칠 때마다 책표지를 들여다보며 그 책에 대한 이미지도 새긴다. 그래서인지 종이책으로 본 책들은 전자책보다 기억에 오래 머문다. 읽었던 부분을 다시 찾아보기 위해 뒤적일 때도 종이책이 훨씬 편하다. 전자책도 표시가 가능하지만, 아직까지 보편적인 책의 형태는 종이책이다.

 

작가는 폐지로 실려 갈 책더미 앞에서 책의 존재와 직면한다. 분리수거장에 내몰린 책과 소통하며 책의 일생을 반추하며 전성기와 쇠락하기까지의 일대기에 동참한다. 한때는 주인의 애장품이었으나 쓰임을 다해 내몰렸다. 그들의 한살이가 의미가 있었음을 되새기며 타인의 추억을 유츄한다. 황진숙 작가가 버려진 책들을 외면할 수 없어 어르고 달래는 듯 하다. 이는 책을 만드는 일과 무관하지 않은 작가로서의 소명으로 보인다. 작가의 애틋함과는 무관하게, 이제 종이책들은 자리만 차지한다는 질책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왠지 모르게 쓸쓸해진다. 오갈 데 없이 허름해진 영혼들을 감싸주고 싶다. 거둬서 거처를 마련해 마음껏 쉬라고 자리를 펴주고 싶다. 안온한 곳에서 다시금 생명력을 얻어 오래오래 살아주기를 기도하고 싶다.

 

실밥이 터져 헐거워진 책을 품에 안는다. 내일이 없어 늘어진 책들도 집어든다. 찢어진 페이지는 풀로 붙여 생을 이어주고 표지를 잃고 방황하는 책엔 제대로 된 겉옷을 입혀주리라. 빛을 보지 못한 시가는 접어두고 숱하게 읽히고 호명되어 그만의 서사로 간직되기를 소원한다. 무명의 글자들이 귀청을 열고 속닥거리기를, 묵은내가 들어차 캄캄했던 활자들이 환해지기를 열망한다.

 

작가에게 헌책은 용도 폐기를 앞 둔 낡은 물상이 아니다. 글을 쓰는 한 밀접한 관계를 맺거나 소장할 수 밖에 없다. 위기에 놓인 책들을 자신이 품어 재생시켜 꿈꾸는 책들의 속말이 듣고 싶은 것은 화자가 작가이기 때문이리라. 자신이 지은 책이 아닐지라도 책이라는 대상과 체온을 나누고 애착을 버리지 못한다. 이는 종이책에 대한 작가의 단순한 상념을 벗어나 문인으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한 잠재의식의 발현이다.

 

 

3.

 

문학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피력하되 논리적이거나 현학적, 관념적인 것에 치우치지 않고 소소한 일상에서 직면하게 되는 작가로서의 소명을 담지한 작품을 살펴보았다. 더 나은 작품을 위한 작가의 고민을 어떤 언어로 토로할 수 있을까. 직접적인 표현에 의지하거나 이성에 호소한다면 문학성을 놓치기 쉽다. 작가의 의식을 담아낸다해도 주제가 상투적이거나 소재에 비해 거창하고 무거우면 공감을 줄 수 없다. 자신만의 체험에서 우러난 독자적인 시점만이 진정성을 담보한다.

 

다작과 작품의 질의 상관관계를 규명할 수는 없다. 작가들은 편집자의 청탁에 의해서도 글을 쓰지만, 이미 많이 썼음에도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무감과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아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쓴다. 지금껏 발표한 작품을 능가하는 작품만을 써야 한다는 강박과 부담에서 자신을 해방시켜 스스로 홀가분한 자유를 누려도 좋다. 비겁한 자기합리화인지 모르지만 내 생애 최상의 작품은 이미 썼는지도 모를 일이다.

 

문학에 대한 내면의 갈등은 작가의 숙명이다. 글을 쓴다 하여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나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주변을 느리게 변화시킬 수 있다. 독자들은 자신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작품을 지렛대 삼아 당면 문제들에 대해 직시하는 글을 써야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