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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상 앞의 풍경과 죽비에 대한 헌사/배한봉

에세이향기 2024. 5. 3. 03:02

내 책상 앞의 풍경과 죽비에 대한 헌사/배한봉

 

 

 

 

이야기 하나 ; 풍경과 죽비를 위하여

 

 

내 책상에 앉으면 두 개의 물건이 보인다. 하나는 풍경(風磬)이고 하나는 죽비(竹篦)다. 풍경은 책상 앞의 베란다와 통하는 거실 문틀에 걸려 있고, 죽비는 책상 옆, 손이 잘 닿는 곳에 있다. 이 풍경과 죽비는 나의 오래된 친구다. 잘들 아시겠지만 풍경과 죽비는 수행자들의 방일이나 나태함을 깨우치는 역할을 한다. 처음 이 풍경과 죽비를 내 곁에 둘 때만 해도 나의 방일과 나태를 경계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처음의 그 목적은 잊히고 그저 나를 묵묵히 바라보는 친구가 되어 있다.

 

친구와 포도주는 오래 될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오랜 벗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도 있다. 굳이 말하자면 풍경과 죽비도 그런 셈이다. 풍경과 죽비를 곁에 오래 두다보니 사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하나의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감정의 촉수가 내보내는 주파수들을 잘 이해해주는 동지쯤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불면과 고통, 세계와의 불화, 마음의 격동, 그리고 화해의 시간을 함께 보내며 조금씩 우의가 발효되었던 것 같다. 발효는 긴 숙성시간을 필요로 한다. 식품도 그렇지만 우의도 발효과정을 거치면 훨씬 깊고 좋은 관계가 형성된다.

 

 

이 풍경과 죽비가 내게 오고 난 뒤 어느 때 나는 외로움을 크게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가급적 어떤 사물에 마음을 주고 애착을 가지는 일을 하지 말자는 생각을 평소 해왔던 터라 이 풍경과 죽비가 본래 목적을 넘어서서 교감하고 친화된 존재가 될 것이라고는 짐작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희한하게도 이 물건들과 대화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이 사실을 나는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을 대신하기로 했다.

 

 

어떤 현상을 이해하기에 앞서 그냥 받아들이며 사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세상을 살다보면 몹시 서운하다고 여겼지만 그냥 받아들이고 보면 아무 문제 아닌 경우도 있다. 또 아무 것도 아닌 일로 마음을 다칠 때도 있다. 속사를 초월하지 않은 다음에야 도리가 없다. 얽히고설키지 않고 세상 살기가 어떻게 쉽겠나. 사랑과 미움, 번뇌와 갈등, 원망과 집착은 고통이지만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추동력의 하나가 되기도 한다. 인생의 맛이 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맛을 알기 위해 불화하는 것은 아니다. 살면서 그것들이 인생의 맛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 갈 뿐이다. 번뇌하고 갈등하고 사랑하고 집착하는 과정 속에서 화해와 상생을 모색하는 틈이 만들어진다. 틈은 일종의 발효 현상이다. 그러므로 틈은 허점이 아니라 품을 벌린 자리이고 아름다운 공간이다. 세상일 때문에 마음이 지치고 괴롭고 아플 때 가만히 풍경과 죽비를 대하면, 풍경과 죽비는 그 틈을 보게 하고, 때로는 스스로 그 틈이 되어 주었다. 나를 옭아매고 있는 무수한 어떤 것들 사이에 바람이 통하고 빛이 스며들 수 있는 미세한 통로가 되어 주었다.

 

그저 묵묵히 나의 말을 들어주고 침묵의 언어로 답을 하는 이 물건을 통해 조금씩 내 영혼이 정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그것은 미생물이 무산소 호흡으로 유기물을 분해시켜 에너지를 얻는 발효 과정과 유사했다. 물건과의 관계가 그러할진대 하물며 인간과 인간의 관계, 그 우의에 대해서야 더 무슨 말을 보태겠는가. 미생물의 유기물 분해 과정에서 우리에게 유해한 물질이 만들어지면 부패가 되고 유용한 물질이 만들어지면 발효가 된다는 점은 인간사의 인연에도 그대로 적용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도 풍경과 죽비는 나의 친구이자 경책자로서의 역할을 멋지게 수행해 주고 있다. 바람 불 때마다 스스로 몸을 때려 우는 풍경의 몸짓도 마음에 들고,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왼쪽 손바닥을 치면 ‘딱’ 하는 일갈의 소리를 들려주는 죽비의 묵직함도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 마음이 소요할 때는 고요를 불러오고, 마음이 적막할 때는 다정한 벗이 되어주며, 나태할 때는 방(棒)과 할(喝)이 되어주고 있다.

 

 

 

 

 

 

이야기 둘 ; 풍경과 불이(不二)의 울림

 

 

내가 기억하기로는, 풍경을 처음 본 것은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라 부르지만)2, 3학년쯤이다. 10리쯤 되는 산길을 걸어 장춘사로 가을소풍을 갔다. 장춘사는 한국의 좋은 물 100곳(韓國名水百選)에 선정된 약수가 있는 절이다. 시금치나물과 단무지와 김치를 넣어 어머니가 말아준 통김밥, 삶은 계란과 삶은 고구마 몇 개, 뽀빠이 한 봉지를 책보에 싸 들고 세 줄에 5원인가 10원인가 하던 질긴 고무줄과자를 뜯어먹으며 절간에 도착했을 때 처음 귀에 들어온 것이 풍경소리다.

 

새소리, 물소리, 솔숲바람소리도 들렸겠지만 그것들은 촌뜨기들에겐 너무 익숙한 소리라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여하튼 풍경소리는 그때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소리라고 믿었던, 처녀 담임선생님이 쳐주던 풍금소리와도 다르고, 땡땡땡 교정에 울려 퍼지던 학교 종소리와도 다르고, 운동회 때 운동장을 가득 채우던 호루라기소리와도 다른 맑고 고운 소리였다. 가을바람에 실려와 온몸을 감싸는 풍경소리는 신비스런 여운을 가지고 있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절간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을 바라보았던 것 같은데 시간이 제법 흘렀던 모양이다. 점심을 먹기 위해 계곡으로 이동했다가 한 아이가 보이지 않아 헐레벌떡 찾아 달려온 선생님이 가쁜 숨을 내쉬더니 가느다란 흰 손을 내밀며 맑은 소리를 내는 물고기 달린 종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저 종의 이름은 풍경이란다. 처녀 선생님의 목소리가 풍경소리의 여운을 길게 따라가며 이어졌다. 풍경의 이름을 알려주는 여선생님의 눈빛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나는 가슴이 쿵쾅거렸고, 한동안 부끄러워 멀리 선생님이 보이면 푹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거나 숨어있다 선생님 모습이 사라진 뒤에야 가던 길을 마저 가곤했다. 순전히 풍경 때문이었지만, 얼레리 꼴레리, 그 일로 한동안 친구들의 놀림을 감내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내성적인 소년이었다.

 

 

소풍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면서 나는 내내 풍경이라는 이름을 까먹지 않으려고 손바닥에 손가락 글씨를 썼다. 집에 돌아와서는 부지깽이로 풍경을 그렸다 지웠다 그리기를 수도 없이 되풀이했다. 그런 내 어깨를 뒤란 감나무의 단풍잎이 팔랑팔랑 날아와 어루만져주었다. 풍경에 대한 나의 첫정은 불과 하루 만에 그렇게 깊어갔다.

 

그 첫정이 다시 발흥한 것은 한참 세월이 흐른 뒤다. 이런저런 일들에 휘둘리며 사느라 풍경소리라곤 어쩌다 한 번씩 여행길에 절에 들렀을 때 듣는 것이 다였다. 그러다 도시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백수가 되어, 허울 좋은 전업시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람사르습지로 알려진 우포늪 근처로 집 살림을 옮겼다. 날씨가 몹시 추운 겨울이었다.

 

마당 평상에 앉아 겨울이어서 더 새파랗게 쏟아지는 밤별을 헤아리는데 풍경소리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벌고 더 쓰는 삶 대신 덜 벌고 덜 쓰는 가난한 전업시인의 삶을 작정할 때는 오로지 열심히 시를 한 번 써 보자는 염원 때문이었는데, 막상 시작한 시골살이는 막막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 식솔들에게 미안했다. 별 뾰쪽한 것도 없는 살림에, 백수에, 시골살이라니.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그때, 잊고 있었던 내 마음 속의 소년이 간직하고 있는 풍경소리가 희미하게 되살아났다. 점점 깊은 울림으로 번져왔다.

 

 
그 울림은 나를 스무 살 청년 앞으로 데려갔다. 20대 초반에 나는 수년간 해인사 절밥을 축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겨울 저녁 세찬 바람이 불 때마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격렬하게 몸을 흔드는 풍경의 소리를 들었다. 절간 기왓골을 타고 산골짜기를 휘돌아서는 하늘로 감겨 올라가던 풍경소리. 그것은 거친 바람소리와는 확연히 구별되었다. 우주와 연결되는 소리였다. 흔들리는 몸은 격렬했으나 투명하기 그지없던 풍경의 소리를 따라 흰 눈송이가 하염없이 쏟아지는 날이 자주 있었다. 그런 날이면 나는 순식간에 절 마당을 덮고 산을 덮고 마침내 온 세계를 하얗게 점령하는 폭설 속에서 격렬하고 복잡하고 소란한 내면의 소리와 격렬하되 맑고 그윽한 풍경의 소리를 대비시키며 길이 사라진 골짜기를 숨이 턱 끝에 차오를 때까지 내달리곤 했다. 고뇌와 열망과 슬픔과 좌절이 뒤섞인 밤을 앓고서야 새벽이 시작되던 스무 몇 살 청년 시절이었다.

 

열 살 소년과 스무 살 청년이 들었던 풍경소리는 고요함과 격렬함으로 대비되었으나 실상은 나를 정화시키고 내면의 공간을 확장시키는 불이(不二)의 울림이었다. 시도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격정, 광기, 고통, 절망, 숭고, 순수, 영성, 이 모든 것들은 시의 몸을 갖는 순간 불이의 생명이 되는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이튿날 나는 창녕읍내 시장 입구에 있는 불교용품점에 들러 풍경 하나를 샀다. 책상이 놓인 방의 창문에 풍경을 달았다. 바람이 가볍게 물고기를 흔들었다. 열 살 소년이 창가에 서서 감동 겨운 얼굴로 귀를 활짝 열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퀭한 얼굴로 우두커니 허공을 바라보던 스무 살 청년도 귀를 활짝 열고 서 있었다. 사람과도 좋은 인연이 있듯 물건과도 좋은 인연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어떤 좋은 예감이 1억 살 우포늪의 바람을 데려와 자꾸만 댕그랑 댕그랑, 내 영혼에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이야기 셋 ; 죽비와 질문하는 사물

 

 

아무리 단단하게 결심해도 방일과 나태는 봄날의 졸음처럼 몸과 마음을 파고드는 법이다. 한 철 정도야 적응 시간이라 여길 수 있지만 문득문득 처음 우포늪 근처 시골집으로 살림을 옮길 때의 결심에 회의가 드는 것은 변명거리가 만들어 지지 않는 일이었다. 내 초발심을 다시 점검해야 했다. 나를 추슬러 줄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마침 그 무렵 유명한 절에 취재를 갈 일이 생겨 겸사겸사 기념품 가게에서 묵직하고 근엄하게 생긴 죽비 하나를 샀다. 나에게 방일이나 나태함이 찾아왔을 때 이 도구로 스스로를 경책하고자 했다.

 

죽비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는 근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책상 옆에서 종일 묵직한 표정을 유지하며 온갖 잡념을 몰고 다니는 나를 주눅 들게 했다. 역시 나의 선택은 탁월했어. 게으름과 망상을 쫓아내기에 딱 적당하군. 불에 그슬리어 검은 윤기가 도는 죽비를 보면서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마치 살아있는 어떤 생물과 눈을 마주치는 느낌이랄까.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을 긴장하게 했으므로 경책 도구로서의 자격이 충분했다.

 

죽비를 볼 때마다 흡족했다. 직장인들이 출근할 시간에 스스로 마음을 다지는 의미에서 죽비를 한 번 탁! 친 뒤 나는 우포늪으로 갔다. 우포늪과 살을 섞고 그 살 냄새를 맡고 싶었다. 그 살 냄새로 시를 쓰고 싶었다. 결과는 나중 일이지만 당장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그것은 나를 속이는 일이고 가족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제대로 된 시를 한 편이라도 써야 이곳으로 이사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박도 생겼다. 죽비 소리를 내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두려웠다. 세상을 사는 일이 두려웠고, 시를 쓰면서 느끼는 한계도 고통을 넘어 두려움이 되었다. 곁에 두려움을 나눌 친구가 없었다. 외롭고 쓸쓸하고 막막했다. 사방을 둘러보면 우포늪을 감싼 풀과 나무, 철새들과 달빛과 바람소리 같은 것들뿐이었다. 너무 적막했다. 어쩌다 먼 곳에서 손님이 오면 그 핑계로 우포늪이 보이는 식당에서 붕어찜을 시켜놓고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나는 두려웠다. 그 두려움을 넘어서기 위해 시를 썼다. 스스로 내리친 죽비에 맞은 어깨가 시퍼렇게 멍드는 날이 많아졌다.

 

탁! 탁! 탁! 어깨에 스스로 죽비를 내리치다가 그것은 나를 위해서도 시를 위해서도 좋은 일은 아니라는 자각이 들었다. 나는 평생 시를 쓸 사람이라는 것. 그 사실은 나를 새롭게 자각시켰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고통과 두려움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기쁨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 이 단순한 사실을 생각하고부터 얕아서 바닥이 보이던 고요가 조금씩 성숙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우포늪을 도는 일이 행복했다. 아들이 함부로 죽비를 가지고 놀아도 탓하지 않게 되었다.

 

아들의 죽비 놀이라고 하니까 생각나서 하는 말인데, 죽비 소리를 날마다 듣고 자란 어린 아들은 장난감처럼 저도 심심하면 죽비를 툭툭 치고 다녔다.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었다. 나중에는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마당에서 질질 끌고 다니다가 바깥출입이 잦은 강아지를 경책하고 함부로 웃자라는 마당의 풀들을 경책하기조차 했다. 그 바람에 새 죽비를 사야했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사물을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사물도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것은 오래 전에 보았던 설치미술에서 느꼈던 묘한 감정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때 그 전시장에 갔을 때 한 무더기 빠짝 마른 나무뿌리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화가는 어떤 의도로 그런 배치를 했을까. 어쩌면 화가의 의도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보고 느끼는 그 순간 화가의 의도는 이미 성공한 것일지도 모르니까.)나는 그 한 무더기 나무뿌리를 보고 땅속에서 꿈틀거리던 검은 생명의 에너지가 단단하게 한 덩어리로 뭉쳐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말라서 생명의 기능을 멈춘 나무뿌리들이 어떻게 되살아났을까. 화가의 예술성 때문이라거나 나무뿌리를 비추고 있는 화랑의 불빛과 화랑의 흰색 내부가 자아내는 조화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다 설명되지 않는 느낌이 내내 남아있었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생명을 가진 사물, 그 가운데서도 죽비는 질문을 하는 사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젊은 날 절간에서 수도 없이 대했던 죽비의 은유와 상징을 나는 잊고 있었던 것이다. 경책이란 잠시 잠깐 망각했던 본질에 대한 질문을 일깨우는 것이고, 죽비는 그 질문의 은유이자 상징이라는 점을 간과했던 것이다. 그 뒤부터 죽비를 내리치는 일은 나에게 있어서 사물의 생명성, 생명의 신성성에 대해, 세계의 근원에 대해 질문을 하는 일이었다.

 

 

 

 

이야기 넷 ; 새 기원을 기다리며

 

 

나는 지금도 풍경과 죽비의 신비, 그리고 은유와 상징을 믿는다. 자연의 위대성, 생명의 신성성을 믿는다. 첨단 디지털이 지배하는 문명시대에, 사이보기제이션(cyborgization)을 향하는 이 시대에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욱 우리가 달리고 있는 반대 방향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우포늪을 떠나 철새도래지로 널리 알려진 주남저수지의 도시 창원에 살고 있다. 내 삶의 틈이 되고 시의 틈이 되어준 풍경과 죽비는 여전히 책상에 앉았을 때 눈길과 손길이 가장 잘 닿는 데 있다. 내 삶에 있어서 풍경이 할(喝)이라면 죽비는 방(棒)이었다. 그 할에 귀를 열고 방에 눈을 뜨며 한 걸음씩 걸었던 시간이 발효되어 현재까지 나를 데리고 왔다. 더러더러 찾아오는 방일과 나태란 것이 실은 시를 쓰면서 느끼는 한계 때문에 생기는 방황의 다른 이름임을 제법 긴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았다. 시의 정점은 늘 까마득한 고도처럼 존재했고, 그로 인한 좌절과 비탄은 나의 내면을 향한 분노가 되기도 했던 까닭이다. 풍경과 죽비는 이제 내 삶에서 하나의 사물이 아니라 좀 더 나를 이해하고 믿어주는 따뜻한 무엇으로 존재한다.

 

풍경과 죽비를 통해 나는 생명 본성과 연결된 영혼의 자유와 평화, 그 힘을 느낀다. 해서 책상에 앉아 시를 쓰거나 강의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준비하다가, 또 아니면 별로 할 짓 없이 쉴 때 풍경의 물고기를 가볍게 쥐고 흔들어 보곤 한다. 또 죽비로 피곤한 어깨를 안마 삼아 툭툭 쳐 보기도 한다. 물 먹는 하마처럼 피로를 먹어주고, 더러는 카오스(chaos)와 피시스(physis)의 숨소리를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풍경과 죽비는 사물이라기보다 차라리 인간적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듯하다. 그러므로 나는 친구이자 경책자라는 표현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한다. 풍경과 죽비가 주는 위안과 질문 역시 나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제대로 된 시를 한 편이라도 쓰는 날이 온다면 그날이야말로 나에게 위안 따위는 더 이상 필요치 않은 기원이 될 것이다. 벌써 새벽이다. 댕그랑 댕그랑, 시원한 바람이 풍경소리를 굴리며 밀려온다. 한낮에는 또 불볕이 대지를 달굴 것이다. 폐 깊숙이 신선한 새벽 공기를 빨아들이며 하늘을 본다. 탁! 탁! 죽비소리가 동쪽 산을 깨우고 있다. 뿌우옇게 동트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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