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둥어 국/김규성
여든 여덟 어머니가 끓여주신 망둥어 국을 먹는다
평소 간간하던 간이 영 싱겁다
짠 것은 내 혈압에 해롭다는 지나친 염려 탓이시다
그런데 아무래도 통 몸통이 보이지 않는다
살점은 손자들 다 주고
엊그제 큰아들 떠나 하나뿐인 아들에게
설마 뼈다귀만 일부러 골라 먹이실 턱은 없는데,
아! 가뜩이나 어두운 눈에 전기를 아끼느라고
컴컴한 부엌에서 급히 큰놈을 고르다보니
애먼 대가리만 눈에 밟히셨구나
기막힌 魚頭一味
골라 낸 것들을 다시 천천히 발라먹는다
눈물이 한 방을 뚝 떨어져 마침 간을 맞춰준다
―졸시 '망둥어 국' 전문
아직 젊은 형이 가고 나서부터 어머니는 급격히 기력을 잃으셨다. 그 부럽던 총기도 눈에 띄게 흐려지셨다. 그 것은 내게 있어서 설움이나 안타까움만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형벌이다. 위의 시는 그 정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풍경화이다. 다만 쓰지 않고 써진 것이다. 이를테면 자동기술인 셈이다.
어머니의 일거수일투족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어도 모두 절절한 시가 된다. 모성과 모국어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는 모두의 깊고 끈끈한 정서를 공통분모로 하기 때문에 굳이 해석이 필요 없다. 어머니를 주제로 한 시에 있어서는 어떤 평론이나 해설도 한낱 사족일 뿐이다.
아버지 주정이 황소울음 같은 코골이 속으로 묻힌 뒤면 골방에서는 어김없이 다듬이 소리가 났다. 아무리 쓸어내려도 가시지 않는 가슴 치다가 까맣게 멍이 들면 어머니는 한밤에도, 새벽에도 불끈불끈 일어나 외딴 집 정적을 깨셨다. 때로는 폭폭 저미는 통곡이요, 때로는 푹푹 찌는 울분이며, 때로는 팍팍한 한숨인 방망이는 더 이상 닳을 군살이 없는 맷집과 어울려 가학과 피학의 경계를 오락가락 했다. 나는 그 메아리를 좇다가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그 뒤부터 나는 슬프고, 우울하고, 절절한 음악이 흐르면 울컥 술 생각에 젖다가 잠투정하던 아이가 엄마 품에 안기듯 곤한 잠에 든다.
이제, 여든 여덟 살이라는 그 아련한 세월만으로도 괜히 눈물 그렁그렁하게 하시는 어머니. 찬물에 말끔히 헹구어 풀 먹인 무명 조각으로 당신의 베갯잇을 손수 꿰매 입히시려는 중이다. 불면의 누에가 실을 잣듯이 머리칼 내 곤한 바늘귀 모로 세워 가는 길. 눈길에 미끄러지고 겨우 수렁을 피해 더딘 숨결 안간힘을 모아서 비틀비틀 가신다.
이윽고 안개의 톱니 같은 발자국 멎으면 그 서툰 길의 끝자락을 베고 누우실 것이며, 다시 낯선 바느질을 아무도 몰래 한 땀 한 땀 떠가실 것이다. 그 생각만 하면 눈물 따위 외려 사치인 거기. 아버지와 누나, 그리고 엊그제 간 형이 전생을 딱딱한 목침으로 베고 기다릴지 모른다.
그러나 시방 어머니는 차마 마저 부려놓지 못한 길 위에서 돋보기를 벗었다가 다시 닦아 끼시는 손등이 바르르 떨리고, 그때마다 점점 선연한 저승꽃이 화들짝 낯을 붉힌다. 그 검붉은 꽃술이 독한 술처럼 어른거리는 팔베개에 내 반백의 듬성듬성한 머리숱을 가지런히 눕혀보고 싶지만 뼈만 남은 그 뼈가 눈치를 해 차마 못 한다.
바느질을 마치자마자 어머니는 그 베개를 베고 누우신다. 그리고 막 잠에 들다가 깬 아이처럼 누워서 나를 바라보신다. 특별히 아프지도 않으면서 오늘은 내가 바짝 다가가도 일어나지 않으신다. 수평선처럼 누워서 아직 중천에 떠 있는 해 덩어리를 지긋이 올려다보신다. 한꺼번에 다 볼 것처럼, 내일은 못 보기라도 하실 것처럼이나.
일찍이 저토록 오래 뚫어져라 나를 바라본 여자는 없었다. 나는 쑥스러웠지만 깜박이지 않고 아픈 눈을 맞춘다.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 내 앞에서 누워 계시는 어머니를 본 적이 별로 없다. 밖으로 나와서야 와락 눈물의 물꼬가 터진다. 몇 번이고 술병을 만지작거리다가 못 볼 것이라도 본 양 외면한다. 내일 또, 흐린 어머니 눈길에 태양처럼 환한 아들로 눈 맞추기 위하여.
김규성 시인
평소 간간하던 간이 영 싱겁다
짠 것은 내 혈압에 해롭다는 지나친 염려 탓이시다
그런데 아무래도 통 몸통이 보이지 않는다
살점은 손자들 다 주고
엊그제 큰아들 떠나 하나뿐인 아들에게
설마 뼈다귀만 일부러 골라 먹이실 턱은 없는데,
아! 가뜩이나 어두운 눈에 전기를 아끼느라고
컴컴한 부엌에서 급히 큰놈을 고르다보니
애먼 대가리만 눈에 밟히셨구나
기막힌 魚頭一味
골라 낸 것들을 다시 천천히 발라먹는다
눈물이 한 방을 뚝 떨어져 마침 간을 맞춰준다
―졸시 '망둥어 국' 전문
아직 젊은 형이 가고 나서부터 어머니는 급격히 기력을 잃으셨다. 그 부럽던 총기도 눈에 띄게 흐려지셨다. 그 것은 내게 있어서 설움이나 안타까움만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형벌이다. 위의 시는 그 정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풍경화이다. 다만 쓰지 않고 써진 것이다. 이를테면 자동기술인 셈이다.
어머니의 일거수일투족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어도 모두 절절한 시가 된다. 모성과 모국어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는 모두의 깊고 끈끈한 정서를 공통분모로 하기 때문에 굳이 해석이 필요 없다. 어머니를 주제로 한 시에 있어서는 어떤 평론이나 해설도 한낱 사족일 뿐이다.
아버지 주정이 황소울음 같은 코골이 속으로 묻힌 뒤면 골방에서는 어김없이 다듬이 소리가 났다. 아무리 쓸어내려도 가시지 않는 가슴 치다가 까맣게 멍이 들면 어머니는 한밤에도, 새벽에도 불끈불끈 일어나 외딴 집 정적을 깨셨다. 때로는 폭폭 저미는 통곡이요, 때로는 푹푹 찌는 울분이며, 때로는 팍팍한 한숨인 방망이는 더 이상 닳을 군살이 없는 맷집과 어울려 가학과 피학의 경계를 오락가락 했다. 나는 그 메아리를 좇다가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그 뒤부터 나는 슬프고, 우울하고, 절절한 음악이 흐르면 울컥 술 생각에 젖다가 잠투정하던 아이가 엄마 품에 안기듯 곤한 잠에 든다.
이제, 여든 여덟 살이라는 그 아련한 세월만으로도 괜히 눈물 그렁그렁하게 하시는 어머니. 찬물에 말끔히 헹구어 풀 먹인 무명 조각으로 당신의 베갯잇을 손수 꿰매 입히시려는 중이다. 불면의 누에가 실을 잣듯이 머리칼 내 곤한 바늘귀 모로 세워 가는 길. 눈길에 미끄러지고 겨우 수렁을 피해 더딘 숨결 안간힘을 모아서 비틀비틀 가신다.
이윽고 안개의 톱니 같은 발자국 멎으면 그 서툰 길의 끝자락을 베고 누우실 것이며, 다시 낯선 바느질을 아무도 몰래 한 땀 한 땀 떠가실 것이다. 그 생각만 하면 눈물 따위 외려 사치인 거기. 아버지와 누나, 그리고 엊그제 간 형이 전생을 딱딱한 목침으로 베고 기다릴지 모른다.
그러나 시방 어머니는 차마 마저 부려놓지 못한 길 위에서 돋보기를 벗었다가 다시 닦아 끼시는 손등이 바르르 떨리고, 그때마다 점점 선연한 저승꽃이 화들짝 낯을 붉힌다. 그 검붉은 꽃술이 독한 술처럼 어른거리는 팔베개에 내 반백의 듬성듬성한 머리숱을 가지런히 눕혀보고 싶지만 뼈만 남은 그 뼈가 눈치를 해 차마 못 한다.
바느질을 마치자마자 어머니는 그 베개를 베고 누우신다. 그리고 막 잠에 들다가 깬 아이처럼 누워서 나를 바라보신다. 특별히 아프지도 않으면서 오늘은 내가 바짝 다가가도 일어나지 않으신다. 수평선처럼 누워서 아직 중천에 떠 있는 해 덩어리를 지긋이 올려다보신다. 한꺼번에 다 볼 것처럼, 내일은 못 보기라도 하실 것처럼이나.
일찍이 저토록 오래 뚫어져라 나를 바라본 여자는 없었다. 나는 쑥스러웠지만 깜박이지 않고 아픈 눈을 맞춘다.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 내 앞에서 누워 계시는 어머니를 본 적이 별로 없다. 밖으로 나와서야 와락 눈물의 물꼬가 터진다. 몇 번이고 술병을 만지작거리다가 못 볼 것이라도 본 양 외면한다. 내일 또, 흐린 어머니 눈길에 태양처럼 환한 아들로 눈 맞추기 위하여.
김규성 시인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내동 옷수선집 유리문 안쪽/신용목 (0) | 2023.04.18 |
---|---|
고통도 잘 튀겨지면 맛있다/정채원 (1) | 2023.04.16 |
폭설/오탁번 (1) | 2023.04.16 |
통한다는 말/ 손세실리아 (0) | 2023.04.16 |
단 한 권의 生/고영서 (0) | 2023.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