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도 잘 튀겨지면 맛있다/정채원
극장 뒤 모퉁이에는 뻥튀기를 파는 내외가 있다 강냉이를 한 줌 튀김 통에 집어넣고 돌려 가며 볶는다 바람 매운 날에도 콧등이 땀에 맺히도록 한참 돌리고 나면 뻥! 소리 없이 튀겨지는 삶도있을까 그 내외는 빠른 손놀림으로 뻥튀기를 크고 작은 자루에 담아 죽 늘어 놓는다 알갱이가 찌그러진 것, 귀가 떨어져 나간 것, 때깔이 뽀얗지도 윤이 나지 않은 것들도 튀겨지고 나면 얼굴이 환해진다 모두 풍성해진다 불지옥을 한 번 겪고 나면 너 나 할 것 없이 삶이 몇 길씩 깊어져 있다 집으로 가면 늘 튀겨지지 않은 삶이 그들을 기다리건만 오늘도 쉬지 않고 튀겨대는 그 내외의 앞을 사람들이 지나간다 외마디 소리 지르던 기억들은 저마다 한 봉지씩 들고 극장으로 들어간다 화면에는 스릴 넘치는 총천연색 시네마코스프 삶이 절찬리에 뻥튀겨지고, 사람들은 눈물을 글썽이거나 한숨을 쉬며 강냉이를 씹듯 튀겨진 삶을 씹는다 고통도 튀겨지면 맛있다는 듯
민음사 시선(슬픈 갈릴레이의 마을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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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어느날 극장가 뒷골목에서 뻥을 튀기는 내외를 본다. 연로한 나이 쯤 되어보이는 뻥튀기 내외의 손놀림, 한 줌의 강냉이를 살살 달구어 볶아선 뻥 튀기는 순간, 뜨거운 화덕 속에서 터져나오는 뻥(튀밥).
<<알갱이가 찌그러진 것, 귀가 떨어져 나간 것, 때깔이 뽀얗지도 윤이 나지 않은 것들도 >>윤가 차르륵 흐르는 통통한 튀밥으로 터져 나온다.
한 생애가 그렇다. 한 생애가 저리 고통스러운 담금질이 없고서야 인생의 참 맛을 알겠는가.
극장 안에서도 시인은 그 내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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