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소리
김 정 화
북소리 찾아 길을 나서는 중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북을 매단 나무를 만나고 싶었다. 세상에는 그 북보다도 더 큰 북이 있을 테지만 나라를 구하기 위해 매단 북보다 더 큰 북이 어디에 또 있을까. 그러한 생각을 하며 소문으로만 듣던 현고수 마을을 찾기로 했다. 의령 유곡천을 지나니 들판 한가운데 아담한 마을이 보인다. 세간리 마을이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동체 굵은 둥구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우뚝 선 나무 밑으로 한적한 마을이 여름날 뜨거운 계절 속에 평온하게 잠들어 있다. 느티나무에서 울려나오는 매미 소리만이 마을의 평화를 잔잔하게 깨트리고 있다. 그것은 시끄러운 소리가 아니라 이 마을에 들어서는 사람이면 누구나 깨어 있으라는 경종의 소리다. 동네를 지키는 소리 나는 솟대랄까,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당산나무랄까. 마을의 지붕 하나하나까지 그 나무 밑에서는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듯하다. 나 또한 마을의 엄숙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감히 깨트릴 수 없어 발소리를 죽여 나무를 향해 다가갔다.
나무 허리에는 색색의 금줄이 매어져 있다. 당산나무로서 마을을 지켜온 표식이다. 붉고 노랗고 푸른 오색의 색깔이 어떤 것은 낡고 어떤 것은 새것이다. 그 연유는 마을 주민들이 이 나무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가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징표다. 마치 주민들이 마을을 구한 장군의 허리에 감사의 금빛 허리끈을 매어준 것처럼 보인다. 동네 사람들은 그 나무의 영험한 힘으로 마을의 악귀를 물리쳐주기를 기대하듯 금줄을 매고 제를 올려 받들어왔다.
하지만, 이 나무는 보통 동네의 당산나무와 다르다. 북 치는 나무이기에 세간리 마을의 어느 노거수보다도 남다른 대접을 받는다. 마침 나무 밑에서 무더위를 피하고 있던 노인 한 분이 다짜고짜 이 나무에 대해 자랑을 아끼지 않는다. 나무에 북을 매달고 있었다고 자랑스럽게 설명해준다. 곁에 있던 다른 노인도 대뜸 받아서 이 나무에 귀를 기울이면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맞추어 보라고 이야기를 건넨다.
현. 고. 수.
북을 매단 나무다. 매달 현(懸), 북 고(鼓), 나무 수(樹), 현고수란 이름을 얻은 나무다. 현고수라고 이름 붙여진 까닭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의병대장 곽재우 장군이 북을 매달아 쳤기 때문이다. 전국 최초로 의병을 모아 훈련을 한 역사가 깃든 나무가 이제 마을을 지키는 서낭나무로 우뚝 섰다. 물론 그전에도 그랬을 것이다. 장군이 이 나무에 북을 매단 까닭은 마을의 수호신이기 때문에 나라의 수호신이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 우람한 모습으로 보아 가히 전승목으로 불러줄 만하다. 세 사람 정도 붙어야 겨우 붙잡을 수 있는 아래 둥치 하며 사방으로 뻗은 가지가 당당하기 이를 데 없다. 이 현고수야말로 이 마을의 터주 어른이다. 집안 어른 주위에 식솔이 모여들듯이 현고수가 마을의 터주 어른이니 당연히 마을의 주민들이 모여든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여기에 온 것이 뿌듯하기도 하고 이제야 온 것이 죄송스럽기도 하다.
나는 나무 밑에 있는 노인들에게 “북소리가 들리는 듯하네요.” 하고 대답해 주었다. 그러자 그들의 얼굴이 환하게 미소를 짓는 것이다. 아직도 현고수는 북소리를 머금고 있기에 소리를 듣고자 하는 이에게 울림과 울림으로 전해주는 것이라고 여겨본다.
현고수는 역사의 나이테로 자란다. 육백 년 세월을 거친 몸피는 그간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말해주는 듯 넓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찬찬히 나무를 살펴보니 성한 것만은 아니다. 어찌 오랜 세월을 제 몸으로 버틸 수 있을까. 몸체 중간 중간에는 빈속을 채워놓은 수술자국이 선명하다. 하지만, 그 수술자국조차 목질로 변하고 있는 듯하다. 임진왜란 때 용감하게 싸운 의병들의 혼이 고스란히 지금까지 살아왔음인지 윗가지와 무성한 잎은 생생하기만 하다.
한쪽 가지가 휘어져 있다. 북을 걸어둔 흔적일까 여겨본다. 어쩌면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장군의 기백을 맞이하여 스스로 몸을 굽힌 것은 아닌지. 몸을 굽힌다는 것은 항복을 뜻하기도 하지만 충절에 감복하는 뜻이 더 클 게다.
속리산 법주사 앞에도 정이품송 나무가 있다. 그 나무는 세조가 탄 수레가 지나갈 수 있도록 가지를 들어 올려 길을 내주었기에 임금으로부터 정이품의 품서를 받았다. 현고수는 그 나무처럼 국가에서 인정하는 벼슬을 얻지는 못했지만 충심에서는 더 높다고 생각된다. 나무가 임금에게 고개를 숙이고 나라를 구한 의병에게 고개를 숙였듯이 이제 사람들이 나무에게 고개를 숙일 때다.
현고수 곁에 바싹 다가서 본다. 기대어보기도 하고 두 손을 뻗어서 나무를 껴안아 보기도 한다. 내 손을 통해서 마치 그 옛날 사람들의 손길을 만지는 것 같다. 전장으로 나서는 장군도 비상한 각오로 나무둥치를 어루만졌을 것이며 북소리를 듣고 모여든 의병들 또한 나뭇등걸에 손을 얹고 현고수 결의를 다지지 않았을까. 그때 그들에게 이 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조국과 민족과 나라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러한 내 생각에 동의해 주듯이 나뭇잎도 바람에 일렁거려 준다. 나무에 귀를 대니 그날의 북소리가 들려온다.
북은, 향피리처럼 구슬픈 가락 한번 내지 못하고 태평소처럼 애절하게 영혼을 울리지는 못하지만 수탉처럼 우렁찬 울음소리를 품어낸다. 그래서 고대인들도 북을 울려 신맞이를 하고 북소리로 사기를 높였다. 요즈음도 해맞이를 할 때면 북소리로 시작을 알리지 않는가. 그 소리에는 서민의 웃음과 땀이 배어있어서 땅의 기운도 함께 치솟는다. 쇠종이 빈 공간에 소리를 머금었다가 퍼지게 하듯이 북의 울림통 역시 진동을 간직하였기에 더 깊은 소리를 넓게 퍼트릴 수 있다고 여겨진다.
내 몸이 현고수가 될 수 있다면 울림통 하나 달고 싶다. 삭아서 새까맣게 탄 마음의 울림통을 튼실한 북채로 한번 시원스레 휘둘러 쳐 보겠건만. 그러면 곪은 속도 펑 소리를 내며 후련하게 터질 수 있을까. 속 좁은 인간이 어찌 큰 북통을 소원하겠는가. 나각의 조그만 소리통 흉내라도 낼 수 있으면 다행이다 싶다.
현고수 주위를 천천히 돌아본다. 떠나야 할 발걸음이 아쉽기만 하다. 나는 지금까지 가장 선한 것은 물이 아닐까 하여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러나 이제 세상에서 가장 의로운 것은 나무가 아닐까 싶다. 물은 세상 순리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만, 나무는 인본의 도리에 따라 아래에서 위로 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앞으로 마음속에 지녀야 할 말은 상선약수(上善若樹)라고 여겨진다.
둥.
둥.
둥.
돌아오는 길 내내 귓전에서 북소리 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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