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좋은 수필

망치학 개론/허정진

에세이향기 2024. 12. 18. 20:33

망치학 개론/허정진

“탕! 탕! 탕!”

망치 소리다. 심장이 덜컹덜컹 울려온다. 광야의 천둥소리도, 전장의 총탄 소리도, 굿판의 꽹과리 소리도 아니다. 둔탁하면서도 옹골진 타격감이 허공을 가로질러 손바닥에 고스란히 전해온다. 두 번 세 번 가만히 듣고 있으면 어느덧 낯섦의 거부감은 사라지고 저 멀리 생(生)의 울림처럼 다가온다. 그 누군가의 땀방울과 거친 숨소리가 뱉어내는 삶의 소리가 틀림없다. 고목 둥치를 붙잡고 홀로 씨름하는 딱따구리처럼 망치가 저 혼자 우는 소릿결이다. 저 소리를 따라가면 세상 누구도 삶의 길을 잃지 않을 것 같다.

그 소리는 묵직하고 단단하다. 철성(鐵聲)이다. 아무렴 망치가 못보다 약하거나 물러서는 안 될 일이다. 짧고 단순해서 오히려 경쾌하고 명쾌하다. 해토머리 얼음장에 쩡쩡 금이 가는 소리, 아침을 깨우는 시작 소리, 고난의 덤불을 헤쳐 나가는 행진 소리, 오래된 경계를 무너뜨리는 파열음인지도 모른다. 그 소리가 높든 낮든, 강하든 부드럽든 그 앞에 사람들은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근육질의 내일을 꿈꾼다. “넌 살아 있다!”라며 영혼을 일깨우는 고동 소리, 그 우렁우렁한 설렘을 기억하기 위해 망치질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집안에 망치질이 필요하지 않은 때는 없다. 벽에 그림이나 가족사진도 걸어야 하고, 마루가 헐거워져 못이 튀어나오면 다시 박아야 한다. 어느 정도 요령과 기술이 필요하다. 수직과 수평으로 정확하게 망치질해야 못이 튕겨 나가지도 않고, 못을 잡은 손이 아래쪽으로 적정하게 위치해야 손을 다치지도 않는다. 무릇 세상일이란 중심과 균형이다. 처음에는 가볍고 적당하게, 장단은 아니라도 강약은 필요하다. 그 망치질 한 번에 태산이라도 옮겨놓은 듯 남자의, 남편의 어깨가 으쓱한다.

단원 김홍도의 <대장간> 그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망치질 없이는 호미나 낫을 만들 수 없다. 모룻돌 위에 벌겋게 달구어진 쇳덩어리가 놓여있고 힘 좋은 메잡이 두 명이 긴 나무 자루의 쇠메로 번갈아 내리치고 있는 그림이다. “쩡 쩌엉 따앙 땅” 쇳덩이를 두들기는 메질이 지축을 흔들며 달려오는 말발굽 소리가 되어 들려온다. 숨이 차 헐떡이는 저 메잡이의 입가에서 허기진 단내가 나는 것 같다.

망치질이 못을 박는 일만은 아니다. 망치가 현을 때릴 때는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가 나고, 망치로 수없이 도자기를 깨뜨려서 천하의 명품이 탄생한다. 부처님 살이 찌고 안 찌고는, 용이 하늘을 오르고 못 오르고는 정을 든 석공의 망치질에 달렸다. 법관이 법의 집행을 하고, 회의 석상에서 의사결정을 위해서도 망치를 두들긴다. 의사에게는 수술 망치가, 요리사에게는 요리 망치가 있다. 해안가의 수리 조선소에서는 깡깡이 망치 소리가 나고, 쇼생크 탈출에도 작은 돌망치가 필요했다.

망치가 있어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다. 간혹 원숭이 같은 영장류 중에서 돌덩이를 망치로 활용하여 딱딱한 열매껍질을 깨뜨리는 일도 있지만, 제작 과정을 통한 연장으로 발전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거기까지였다. 결국 돌을 갈고 다듬어 나무 자루로 연결해서 만든 망치가 인간의 손에 쥐어지면서 길을 내고, 집을 짓고, 바다 위 선박을 만드는 인류 최초의 문명이 되었다.

망치질로 살아본 적 있었다. 늦은 나이에 미국에 이민하였을 때였다. 아무런 발판도, 기득권도 없는 이민 생활은 처음부터 다시 맨손, 맨발로 시작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처음에 선택한 일이 주택 외벽에 패널을 부착하는 일이었다. 하루 종일 망치를 들고 외장재 구멍에 못을 박아야 했다. 벽을 타고 오르며 팀원들이 한꺼번에 쏟아내는 그 망치 소리가, 목표량의 속도를 재촉하는 그 망치질이 한여름 양철 지붕 위에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 같았다.

망치질이 처음이라 고생이 많았다. 요령과 기술이 없어 망치를 잡은 손은 물집이 잡히고 껍질이 벗겨졌다. 손이 굳고 감각이 없어서 저녁때마다 손과 팔, 어깨 부위에 통증완화제를 바르면 온 집안에 약 냄새가 진동했다. 그렇게 몇 달을 무수한 동작을 반복하고 나서야 망치를 잡는 요령을 익히게 되었다. 코팅 없는 실장갑으로 망치를 약간 느슨하게 잡아야 이완 작용으로 손에 무리도 없고 힘도 들지 않는 것을 깨우쳤다. 생각하지 않아도 그냥 손이 알아서 망치질하게 되었을 때, ‘먹고 산다’라는 그 날것의 고통과 준엄함을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했다.

망치는 정직하다. 그의 행로는 직선이고 직진이다. 강직해서 곧으며 완고해서 변함이 없다. 심지는 굳고, 뚝심은 황소 같아서 요령을 피우거나 잔꾀를 부리지 않는다.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워 함부로 흔들리거나 좀처럼 물러서는 법도 없다. 망치 소리는 망치가 내는 소리가 아니다. 통증은 있을지언정 망치는 절대 울지 않는다. 누구는 때려야 하고 누구는 맞아야만 하는 이치지만 순백한 노동의 현장에서는 어떤 악의도 없고 피해의식도 없다.

망치질은 땀과 힘, 노력과 희망, 불굴과 불멸을 상징하는 정신적 메타포다. 나태나 방기, 도피나 비겁을 거부하는 자존의 삶이다. 석수장이가 내려친 백한 번째 망치질로 바위에 금이 가는 것은 백 번의 망치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망치를 든 사람은 사는 것이 힘들다고, 미래가 먹과 녘 같다고 쉽게 포기하는 법이 없다. 분명한 목표와 방향을 향해 꿋꿋이 제 길을 가는 주체자의 길이다. 그래서 망치 앞에서 겸손해지고 순수해진다.

‘망치를 손에 쥐면 모든 것을 못으로 본다.’라는 말이 있다. 무릇 모든 물상은 저 스스로 행위를 할 수 없기에 ‘사용하는 자’의 의지와 의도에 달렸다. 나아갈 때와 멈출 때, 적정한 힘의 분배가 없이 너무 지나치면 파괴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서로 다른 잇속과 궁리로 인한 불협화음이나, 사용자의 권한으로 함부로 내뱉은 웃자란 말들 때문에 갑과 을의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박히는 것은 못인데 때리는 것은 망치다. 얼마나 충격이 컸으면 망치로 얻어맞은 듯했다고 비유하는 말이 생겼을까 싶다. 못을 타격해 박을 수도 있지만 장도리처럼 반대편 쇠 지렛대를 이용해 못을 뽑을 수도 있는 것도 망치다. 살면서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없어야겠지만 혹시라도 누군가의 마음에 못을 박은 일이 있다면 이 기회에 결자해지라도 해야 할 모양이다.

'좋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장 / 곽흥렬  (1) 2024.12.25
무문 / 김미향  (0) 2024.12.23
허창옥의 수필 읽기  (2) 2024.12.17
어느 상자로부터/ 조은수  (1) 2024.12.16
아버지의 가방/최수연  (2) 2024.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