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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어느 상자로부터/ 조은수

에세이향기 2024. 12. 16. 09:28

어느 상자로부터/ 조은수 

 
 
 
배송이 완료됐다는 문자였다. 며칠 전 온라인에서 주문한 복숭아가 도착한 것이다. 시장까지 가지 않고 내 방에 앉아 클릭 한 번으로 원하는 물건이 배달되는 일은 이제 도시인의 일상이 된 지 오래였다. 종국엔 인간을 무력하게 만들 시스템일지언정 애초에 나는 운전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재래시장이나 마트서부터 복숭아 상자를 머리에 이고 올 자신도 없었다. 이미 무력한 인간 부류인 내가 이 빈틈없이 편리한 배달 문화를 포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클릭 한 번에 공산품도 아닌 생물이 내 집 앞에 도착했을 뿐 아니라 그 향기로 입 안에 침이 고일 때, 배달 시스템에 대한 내 경외심은 극에 달했다. 그래봐야 달콤한 복숭아 한쪽 맛볼 기대가 전부였으나 마음은 복숭아밭을 뛰노는 아이처럼 설렜다.
 복숭아 상자는 현관문을 막은 위치에 있었다. 내가 현관문을 열자, 복숭아 상자가 문에 밀려 저만치 밀려났다. 바쁜 손길에 던져진 것 같은 상자를 보자, 반갑기만 하던 마음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게다 터무니 없이 허술한 상자가 마음에 걸렸다. 과연, 이상자에 담긴 복숭아가 온전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가위를 쥐고 탯줄을 가르는 산파처럼 나는 조심히 상자를 묶은 플라스틱 끈을 끊었다. 강보를 들추듯 상자 안을 들여다보던 내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차마 산모에게 보여줄 수 없는 아기를 받은 늙은 산파 같다. 나는 앞으로 클릭 한 번으로 생물을 배송받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애먼 맹세를 했고, 침이 돌던 입 속은 복숭아 보풀을 핥은 혀처럼 깔끄럽기만 했다.
 상자 속 복숭아 상태는 상상한 것보다 더 나빴다. 상자는 얇았고 낮은 데 좁기까지 했다. 그 안에 담긴 열네 개 복숭아는 무엇에 쫓긴 듯 상자 왼쪽에만 몰려 있었다. 배송 중 이리저리 시달린 탓에 여린 과육끼리 부딪쳐 서로에 치명상을 입히고 말았다. 여러 겹꽃이 핀 뒤에야 늦된 아이처럼 잎과 줄기가 자라 열매를 맺기까지 3년, 혹은 5년이나 걸리는 복숭아의 태생을 생각하면 뼈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제주도에 사는 내가 500 KM 나 떨어진 복숭아 농장에 주문서를 넣었고, 누군가 보충제도 넣지 않은 조악한 상자에 복숭아를 담아 보내기로 한 순간 이 사태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 이었다. 허술하고 충동적인 구매 욕구가 결국, 참담한 결과를 배송 완료하고 말았다.
 그날, 어린 나는 어머니와 함께 마당이 뵈는 문간방에 누워있었다. 어머니는 끝단이 바이어스 처리된 남색 체크무늬 블라우스를 입었다. 블라우스엔 같은 옷감으로 감싸진 단추가 달렸는데, 나는 체크무늬 단추를 만지작거리며 뭔가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었다. 어머니도 내가 단추를 만질 수 있도록 곁에 그대로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만한 평화로운 한낮이었다. 그런 시간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대문을 밀고 들어온 한 무리 여자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마당을 가로지르는 게 보였다. 여자들은 신발도 벗지 않은 채 거침없이 방 문턱을 넘어와, 방안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것은 약자가 더 약한 자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서로의 무른 살에 상처를 낸 허망한 일이었다.
 남자는 튼튼한 한 개 상자에 소중한 것을 담고 보듬기보단 그것을 허술한 두 개 상자에 나눠 담길 원했다. 남자가 태연히 두 개의 상자를 오가는 동안 상자들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황폐해졌지만, 여자들은 묵묵히 땅을 가꿀 뿐이었다. 그곳은 그저 상자에 불과했고, 언제든 전쟁터가 될 곳인데도 말이다.
 소꿉 장난감 같던 세간살이는 쉽게 부서지고 떨어져 나갔다. 아랫목에 있던 노란색 공단 솜이불은 죄를 덮어쓴 여자처럼 마당까지 끌어내려졌다. 이불 위로 낙인찍듯 쏟아지던 수돗물, 무겁고 어둡게 질식하던 노란색과 어머니 입가에 생긴 영어 Z자 모양의 상처와 붉은 피. 잡지 책 한 페이지를 찢어 급하게 피를 닦던 떨리는 손, 코팅된 아트지는 피를 흡수하지 못하고 상처 위로 아프게 미끄러졌다. 그때 나는 어떤 억센 팔에 의해 완강히 속박된 상태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발버둥 치며 울던 그날의 기억은 몹쓸 꿈처럼 남았지만, 때론 어떤 전시관에서 관람한 그로테스크한 행위예술의 잔상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날 복숭아처럼 여리고 무력한 여자들의 싸움은 어린 여자아이의 뇌리에 깊은 상처로 남아 사는 내내 숱한 일에 반사작용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때의 사람들은 차례차례 세상을 떠나며, 모든 걸 지난 일로 돌려놓았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 일이 삶에 던진 불씨를 떠올리면 나는 자주 허탈해졌다. 불씨는 잔바람에도 곧잘 불기둥이 돼 마음 숲을 까맣게 태우고야 잦아들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내가 온전히 사랑하거나, 미워할 수 없게 된 시작점을 되짚을 때마다 기억은 나를 데리고 우리 땅에서 전쟁이 일어난 그날로 순식간에 이동했다. 여전히 우린 모서리가 밟힌 상자 안에서 서로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 채였다. 시간은, 무력하게 시달리던 우리 눈이 마주친 바로 그 순간에 멈춰 꼼짝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과거 일이 되지 못했고, 과거가 됐더라도 아주 가까운 과거에 불과 했다. 그날은 언제든 거기로부터 달려와 지금, 당장 오늘에 머물며 내게서 죄책감과 무력감을 불러냈다. 나는 오랫동안 밤새 칭얼대는 아이 같았고, 아주 느리게 성장 했다.
 나는 복숭아를 구매한 온라인 사이트에 접속했다. 형편없이 허술한 상자에 복숭아를 담아 보낸 일을 따져 볼 참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내 거기 올라와 있는 악랄한 댓글에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대화창에는 이미 내 것과 비슷한 상태로 배송된 복숭아 사진이 여럿 게시됐고, 그 아래로 서슬 퍼런 욕설과 양심 팔아먹은 사기꾼이란 인신공격성 댓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그들은 책임을 따져 묻기 위해서라면 지옥 끝이라도 쫓아갈 기세였다. 내가 극찬해 마지않던 배달 시스템의 이면이었다. 그곳에선 값을 치르고 받은 편리함은 당연했지만, 원치 않던 상황이 배송됐다면, 밥줄마저 끊겠다는 협박을 어렵지 않게 했다. 이곳에 처참한 복숭아 사진 하나 더 보태는 건 아무 의미도 없었다.
 대신, 나는 보풀 있는 껍질을 벗기고 과육을 알뜰히 저몄다. 비교적 성한 부분은 작게 깍둑썰어 두고, 나머지 과육은 믹서로 갈아 복숭아 잼을 만들 요량이었다. 냄비엔 설탕에 버무려진 복숭아 과육이 묵직한 기포를 만들며 끓기 시작했다. 나는 세심히 불을 조절하며 그 곁을 지켰다. 달래듯 조심히 과육을 저었다.
 ‘뭉개진 일은 부끄러운 게 아니야. 뜨거움을 견디고 다시 사는 거야.’
 허술한 상자에 담긴 이상 온전히 도착하긴 어려웠던 거라고, 나는 강보에 싸인 아기를 안고 자장가를 부르듯 조곤조곤 이 말을 건넸다.
 삶의 근원적 인과관계를 매번 운명과 연결한다면, 참혹하게 무른 복숭아는 언제든 내 집 앞에 배달될 수 있었다. 허술한 상자에 담긴 일은 원인일 뿐 운명이라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미 내 집 앞에 도착한 상자를 두고 하필, 왜 내게 왔냐고 묻는 거야말로 야멸찬 질문이 아닐 수 없었다.
 복숭아 과육이 끓는다. 집 안에 달콤한 복숭아 향기가 진동했다. 나는 나아 갈 길을 향해 문을 활짝 열어두고, 내 앞에 도착한 메시지를 읽었다. 복숭아 향기는 아주 멀리까지 퍼져나갈 것이다. 하찮던 것이 더 이상 하찮지 않아도 되는 곳에 희망이 있었고, 뜨거움을 견뎌낸 존재에겐 선물처럼 구조자의 의무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숱한 뭉개진 것들에 손 내미는 것, 다시 살아보자고 속삭이는 다정한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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