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지/윤상희
굳게 잠겨 있는 문을 연다. 매캐한 곰팡이 냄새가 기다렸다는 듯 달려든다. 오랫동안 밀폐된 곳간이라 음습한 기운마저 감돈다. 천장에는 거미줄이 세월을 엮고 있고, 사용하지 않은 집기 위로 쌓인 먼지 더께가 시간을 헤아리게 한다. 쌀뒤주며 장독 같은 온갖 세간들이 감방을 지키듯 어둠 속에서 고요를 삼키고만 있다.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넓은 플라스틱 함지로 눈길이 머문다. 차곡차곡 쟁여 있는 놋그릇의 얼룩무늬 위로 어머니의 환영이 살아나는 듯하다. 손때 묻은 어머니의 유산에 누구하나 탐하거나 동정하는 이는 없었다. 어머니의 애장품에 탐심을 내는 일은 성역을 범접하는 것쯤으로 믿어서 그럴까 아니면 한물 간 것으로 치부해서였을까.
어머니는 유기에 애정이 남다른 분이셨다. 세밑이면 으레 제수를 담을 놋그릇에 반짝반짝 윤을 내는 일이 조상 섬기는 정성의 척도라고 믿었던 것 같다. 섣달 그믐께면 포근한 날을 잡아 옆집 아낙네들과 품앗이를 했다. 마루에 멍석을 깔고 짚을 돌돌 말아 한줌 쥐고, 곱게 간 기왓장 가루를 물에 묻혀 녹 쓴 그릇을 돌려가며 싹싹 문지르면 반짝반짝 황금빛이 거짓말처럼 살아난다. 신비한 변신에 신명이 일고, 새참 준비를 하는 어머니의 잰 걸음도 가벼워진다. 덩달아 어린 나까지도 잠을 설쳐가며 어머니를 성가시게 했다. 그럴 땐 작은 종지를 닦아 보라고 허락하셨지만, 종지는 너무 작다고 투덜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유년시절 내가 어머니의 품에 잠들 듯 고요히 눈을 감은 세간 사이로 수많은 시간들이 꿈처럼 살아났다 환영으로 사라져 간다. 어머니가 유달리 아끼시던 놋화로와 향로는 보이지 않는다. 놋 향로는 제사 때 천지신명께 분향으로써 고하는 신령스런 그릇이기에 어머니는 늘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다 쓴 뒤에도 정갈하게 닦아 곳간의 가장 윗자리에 모셔 두곤 했다.
놋화로는 어떤가. 어머니에 대한 회한과 함께 놋화로 속에는 우리 집을 이끄는 사령관이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녹아져있다. 할아버지는 한 순배 주무시고 난 희붐한 새벽이면 곧잘 긴 담뱃대 대통에 담배를 꼭꼭 다져 넣으셨다. 뭉근한 화롯불은 늘 새벽까지도 할아버지와 온기를 함께 했고, 새벽 담배 한 모금은 무료한 할아버지에게는 유일한 낙이었다. 그리고 ‘땅땅땅’ 담뱃재 터는 소리는 당신의 막힌 기를 뚫어 내리는 복음이요, 가족들을 채근하는 희망의 종소리이자 새벽을 깨우는 알람이었다.
곳간 한 곳의 작은 종지로 다시 눈길이 머문다. 어린 시절의 나처럼 작고 동그마한 모습으로 정적을 지키는 종지는 주인 잃은 세간들 사이로 오늘 하염없이 내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옛무덤의 다 삭은 부장품처럼 길 잃은 물건들 사이에서 그것은 격세지감과 함께 아픈 기억 한줄기를 떠올리게 하는 부표가 되어 시간을 표류하고 있다. 어이없는 사고로 칠흑 같은 밤, 장대 빗줄기 속으로 날아든 어머니와의 별리는 몸서리쳐지는 기억이다. 쓰라린 기억 때문인지 곳간 문고리를 잡는 손마저 떨려온다. 아득한 세월동안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나를 에워쌀 때 마다 힘겹게 고개를 내치며 부인하고자 했었다. 곳간의 잠든 세간들처럼 나는 어머니에 대한 추억들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누구에게도 그리움을 내비치려 하지 않았다. 먼지 덮인 세간들이 쓰임을 잃었지만 곳간에서 수십 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나도 마음위로 분진을 뒤덮어가며 쓰린 그리움의 더께들을 쉽사리 걷어내지 못했었다. 내 마음의 곳간에 가득 찬 어머니의 환영을 지켜내는 방법은 문을 걸어둔 곳간처럼, 황폐하도록 내 마음을 그대로 두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떠나버린 어머니는 철없는 어린 딸에게 자주 종지처럼 예쁘게 커야한다고 말씀하셨다. 종지는 그릇 중에서 가장 작은 그릇이지만, 신선로에다 토구까지 갖춘 9첩 반상기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한 몫을 해내는 귀한 그릇이라고 하셨다. 맛있는 반찬을 한상 그득하게 차려도 장물종지가 빠지면 상은 예의를 갖추었다고 할 수 없을 터이다. 외상에서도, 겸상에서도, 간장종지는 상의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는 작지만 옹종한 그릇이기 때문이다.
종지에 담긴 간장은 음식의 맛을 가늠하는 기본이다. 입맛에 맞게 간을 맞추는 간장종지는 밥상에서는 빼놓을 수가 없다. 가냘픈 체구에 늘 웃음 가득한 나에게 어머니는 작지만 꼭 있어야 하는 종지처럼 그렇게 커야한다고 당부하시곤 했다.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아쉽지 않는 그런 그릇이 아니고 상차림에 빠져서는 안 되는 종지 같은 사람으로 자라야한다고 말이다.
종지처럼 소박하지만 소중한 역할을 감당하며 어머니의 당부대로 누군가의 삶에 간을 맞추는 소임을 해내었는지 되돌아본다. 아내이자 어머니, 며느리이자 시부모였던 나의 삶은 그 역할을 소화한 적도 있지만, 도리어 누군가의 종지를 빌어 내 삶의 맛이 더욱 풍성해진 적도 많았었다. 입 안이 텁텁하고 힘겨울 때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약술처럼 종지에 담긴 양념들을 받아먹곤 했었다. 남편에게 응석부리듯 받아먹은 장들과 아이들에게서 억지로 받은 양념들이 삶의 희 노 애락과 어우러져 내 삶의 상을 차려놓기가 일쑤였다.
회한으로 가득 찬 곳간의 먼지 사이로 자그마한 종지의 의미가 유달리 크게만 느껴진다. 내 기억을 붙들고 있는 작은 종지와 어머니, 곳간처럼 황량해진 시간 속에서 길을 잃은 듯 아득하기만 하다. 많은 흔적들이 거미줄에 의지하며 쓸쓸히 자리하고 있는 시간 가운데 정적만이 이명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다. 종지(鍾子)는 상에 놓는 작은 그릇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어떤 일의 끝마침을 뜻하는 종지(終止)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급작스런 어머니와의 이별이 내 마음의 곳간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있었다면 이제 어떤 종지(終止)라도 내어버리라는 듯 종지 그릇은 나를 오도카니 바라보고만 있다.
세모에 기왓장가루로 힘들게 놋그릇을 닦는 고행을 낭만으로 되새기는 나는 곳간의 물건들처럼 퇴물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다. 이제 어떤 종지부를 내리며 이 곳간을 빠져나가야 할까. 뭇 세간들 속에서 작은 종지 한 개를 집어 든다. 그리움을 추억으로 갈무리 할 수 있는 푼푼한 마음과 지혜로움, 아픔을 돌아보지 못하는 비겁함이 아니라 지나가는 한 편의 삶의 페이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너그러움이 문득 그리워진다. 아직 내 마음의 종지(終止)를 알 수 없지만 작은 종지그릇을 보며 어떤 곳이든 그 끝을 따라가리라는 생각으로 다시 곳간 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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