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가방/최수연
아버지는 외로운 등대였다. 망망대해를 향해 사계절 홀로 서서 나가고 들어오는 배들이 위험하지 않게 불을 비춰주는 등댓불이었다.
심장마비로 하늘나라로 가신 지 십수 년이 지났어도, 어려운 환자에게 헌신하던 모습이 선하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정원 유실수들이 시샘하듯 실하게 맺을 즈음이었다. 자식들은 철부지였고 하루아침에 가장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을 무엇에 비유하랴.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환자를 돌보고 화장실에 갔다가 쓰러지신 걸 뒤늦게 발견하고 응급조치했지만, 소용없었다. 날벼락이었다.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위급한 환자가 생기면 한밤중에도 먼 길을 마다하지 않으셨으니 과로가 누적되었던 것 같다.
요즘은 소도시에서도 응급을 다툴 때 연락하면 구급차가 신속하게 달려온다. 그때는 교통이라야 간혹 다니던 버스 한 대가 전부여서 끊기면 아무리 먼 곳도 걸어서 왕진을 다녀오셨다. 농산물이 치료비를 대신하기도 했고 그마저도 형편이 안 되면 다음을 기약할 정도로 누구나 어렵던 시절이었다.
아버지의 기일이 돌아와 친정에 갔다. 다락에서 아버지의 생애가 담긴 손때 묻은 황토색 가방을 꺼냈다. 그 안에 담긴 사연은 다 몰라도 감회가 새로웠다. 나는 어릴 적 그 가방 속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못내 궁금하여 몰래 열어보았다가 주사기 등 약 냄새가 코를 찔러서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냄새는 세월 따라 사라지고 주인 잃은 가방이 텅 빈 채로 모셔지듯 놓였다. 뒤적이는 손끝에서 따스함이 전해졌다. 당신께서 못다 이루신 꿈을 빈 가방을 통해서 박애정신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해 초저녁을 나는 잊지 못한다. 가랑비처럼 내리던 눈은 함박눈으로 바뀌어 소리 없이 쌓여 갔다. 새벽녘이 되어 아버지가 중절모에 눈을 흠뻑 뒤집어쓴 채 들어오셨다. 걱정 어린 가족의 눈빛을 둘러보며 다행히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고 하신다. 입가에는 미소가 어렸다.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와 함께하고는 왕진 가방 들 힘조차 없이 눈 내린 길을 더듬어 되돌아왔을 아버지. 나는 그때 위인전에 나오는 인물처럼 아버지가 위대해 보였다.
한번은 어린 우리에게 당신은 외딴섬 등대라고 하셨다. 등대는 밤에 항해나 바다의 수로 안내를 돕는 역할을 하며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어준다. 특히 야간 항해 시에는 선박의 안전을 위해 뱃길, 위험한 곳 등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지 않던가. 그때는 아버지의 말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야 되새겨 보니 아버지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길을 걸어오셨다.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으면 당신을 바다에 홀로 세워져 있는 등대라고 표현하셨을까.
친정 뒤란에는 아름드리 밤나무 두 그루가 호위병처럼 집을 지켰다. 아버지가 한 생명을 살려서 아이의 부모는 감사의 표시로 밤을 보냈다고 한다. 가장 튼실한 것을 골라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길 바라는 뜻으로 아버지가 뒤뜰에 심은 게 오늘에 이르렀다. 아이 부모는 그 고마움을 잊지 않으려 아이의 이름도 율란(栗卵)으로 지었다고 한다.
풀 한 포기에도 생명의 의미를 부여하셨던 아버지. 가을에는 정원에 떨어진 낙엽을 색깔별로 바구니에 담아 장독대에 올려놓을 만큼 감성이 넉넉하셨다. 그런 감성을 자식들이 은연중 받아서 안목을 기르도록 하였나 보다. 내가 문학에 눈을 뜬 것도 아버지의 그러한 정서를 닮지 않았을까.
환자가 없는 한가한 저녁이면 반주를 곁들여 도란도란 옛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린 날 항상 목에 호루라기를 걸고 다녔다는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아버지는 1남 3녀 중 막내로 삼대독자였다. 할아버지는 학교에서 돌아올 때면 동구 밖에서 호루라기를 불라고 하였다. 그 소리를 듣고 마중을 나가셨다는 대목은 듣기만 해도 극진한 자식 사랑이 느껴졌다.
어머니는 생전에 자주 말씀하셨다. 나중에 아버지 곁에 갔을 때 떳떳해지고 싶다고. 당신 자녀들이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뜻이다. 아버지를 그리워하실 때면 진료실에 오래 앉아서 생긴 궁둥이의 까만 군살이 눈에 어른거린다는 말씀도 빼놓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한결같이 아픈 사람만 돌보다 가신 아버지, 함박눈 내리던 날 중절모에 네모난 가방을 들고 움직이는 눈사람이 되어 서 계시던 모습을 다시 단 한 번이라도 보고 싶다.
아침에 기찻길 옆에 장이 열리면 동생과 시장에 가서 어떤 생선이 나왔는지 보게 한 일, 약주를 드시면 ‘꿈에 본 내 고향’ 노래를 가수처럼 구성지게 부르셨던 일도 생생하다. 일찍 등진 고향에 대한 향수를 노래로 풀어내곤 하셨다. 자식들 입장에서는 오직 환자와 당신만 알았던 점은 불만으로 남았다. 가족끼리 여행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도 못내 가슴이 아프다.
거목처럼 커 보이던 아버지의 모습을 지금은 그리워해 봐도 아물거릴 뿐이다. 내 나이 철들고 보니 외딴섬 등대라고 하셨던 그 말씀의 의미를 이제는 알 것 같다. 아픈 이들에게 한가닥 빛을 비춰주기 위해 묵묵히 생명의 가방을 놓지 않으셨던 그 아버지가 오늘따라 무척 그리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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