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옥의 수필 읽기
1-1. 김순분 아지매의 비닐봉지
국지성호우가 있겠다는 예보가 있었다. 실제로 나라의 곳곳에 말 그대로 국지적으로 폭우가 내리고 있다. 워낙 다른 곳에 비가 많이 내리니 거들지 않을 수 없었던가. 비 없기로 유명한 이 지역에도 비가 많이 내린다.
빗물막이 차양 속에서 뒤꼍의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단풍나무 높은 가지에 검정비닐봉지가 걸려서 비바람에 사정없이 휘둘리고 있다. 잎이 한창 무성한지라 그렇듯 온몸을 찢으며 펄럭이지만 벗어날 가망이 영 없어 보인다. 그 무생물이 불현듯 생물로 보인다. 생물이 아니라도 그렇다. 어딘가에 걸려서 제 살을 찢고 있는 걸 보는 건 여간 불편하지가 않다. 불편한데, 고통을 덜어줄 방도가 없다. 가지는 높고 비는 세차게 내린다. 항상 그랬다. 타자의 고통은 내게서 멀리 떨어져있었고 그 떨어져있음에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니까.
비닐봉지는 초록이파리들과 함께 비바람에 마구 흔들리고 있다. 비닐은 지금 까무러쳐 있다. 혼절한지 한참인, 용도폐기 된 그 까만 비닐봉지는 속속들이 젖었고 주름졌으며 흙먼지가 누렇게 끼어있다. 그런 정황이 낯설지가 않은데 새삼스레 마음이 저리는 까닭은 무엇인가. 비 탓인가. 그것의 한 생애는―생애라 할 수 있을까?―여기서 끝이 나는가. 뭔가가 자꾸만 필요해진 인간에 의해서 대량생산된, 몸값이 그야말로 싸구려인 그것, 그래서 함부로 쓰고 함부로 버리는 보잘 것 없는 존재인 저 비닐봉지는 대체 어디서 왔을까.
건너건넛집 김순분 아지매가 고등어 몇 마리를 사들고 와서, 마당의 수도꼭지 앞에서 손질하고 있었다. 다듬은 고등어를 씻어서 냄비에 담고 무와 양파와 대파도 씻어서 큰 양푼에 담아서 무심히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에서 고등어찌게가 끓는 동안 비닐봉지는 잊혀졌다. 처음에는 마당에서 휘휘 저공비행을 하였다. 그러다가 세찬 바람이 한 줄기 후려치니 엉겁결에 그 바람을 한입 가득 물고 팽팽해졌다. 팽창하는 순간 몸은 티끌처럼 가벼워져서 ‘높이곰’ 솟았다. 바람몰이 속에서 혼이 다 달아난 그것이 당도한 곳이 바로 단풍나무 가지였던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나부끼고 있었던 것인데 국지성이란 이름의 폭우가 내린 것이고 가뜩이나 젖은 몸의 손잡이 께가 가지에 걸렸으니 그뿐, 어쩌겠는가.
뱃속 가득 뭔가가 담겨지고 누군가에 의해 옮겨져서 품은 것을 고스란히 내 준 순간 바로 버려진다. 마침내 초췌하고 견줄 데 없이 남루해져서 아무렇게나 내박쳐지는 그것은 그러나 썩지 않는다는, 오염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다. 오염이라니! 전혀 의도한 바가 아니다. 만들고 쓰고 버린 건 사람들이다.
폭우 속에서 검정비닐은 썩지도 않는 몸으로 생을 마치고 있다. 그 태생이 이미 역리였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순리를 끝내 알지 못한다. 그것이 가뜩이나 꼴이 말이 아닌데 비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가련하다. 그것을 저 가지에서 걷어내어 편안하게 해주고 싶은데 하릴없다. 그것의 최대 비참은 “불멸”일지도 모른다. 사멸하는 것이 얼마나 큰 복락인지를 알지 못한 채 생을 마치니 불쌍타. 생을 마쳤다고는 하나 그 잔해를 거둬 줄이 없으니 더욱 불쌍타.
이제 곧 어두워질 테지. 어둠이 켜켜이 쌓인 캄캄한 밤에, 사람들이 다 제 집으로 돌아가 깊이 잠든 밤에, 검정비닐은 숨이 멎은 채로 여전히 시커먼 나뭇가지 끝에서 펄럭이겠지. 길고 험했던 밤이 물러나고 거짓말처럼 맑은 하늘이 열려서 비닐봉지의 젖은 몸은 마르겠다. 남은 바람이 건듯건듯 나뭇가지를 털다가 우연히 검정비닐을 지상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겠다.
뭐가 남았을까. 비닐은 쓰레기통에 들어가고 분류되어서 저들끼리 태워지든가 땅에 묻히든가 아니면 재생이란 공정으로 다시 태어나든가. 무엇이 좋을까. 재생? 그것이 새 몸이 되어서 시장에 나간 김순분 아지매의 손에 다시 들려지는 게 가장 좋을 것인가. 그래서 또 버려지고 비바람을 맞아서……. 여기까지만 하자. 악순환은 싫다. 고등어를 담기 전의 새 비닐- 폭우 속에 버려진 폐비닐- 산뜻하게 환생한 새 비닐, 그게 좋겠다. 그래야 내 맘이 그나마 편하겠다.
한갓 폐비닐이 불쌍하고, 불쌍한 것들이 넘치고 넘쳐서 마침내 얼음덩이를 놓치고만 북극곰은 더 불쌍하다. (2012)
1-2. 새
새다. 새 한 마리가 얕은 물에 발목을 담근 채로 연신 먹이를 쪼고 있다. 신천(新川)의 산책로를 걷다가 봇물이 내려와 작은 폭포를 이루는 곳, 물이 가장 가까운 기슭을 찾아 앉았다. 물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하여 물소리 듣기를 좋아하지만 도회지에서 흐르는 물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걷기 위해서가 아니라 물을 만나고 싶어서 신천을 찾는다. 혼자 앉아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고 그 소리를 듣다가 강 저편에 서 있는 새를 본 것이다. 검은 새다.
아침저녁 신천을 지나며 백로를 본다. 깃털이 눈부시게 희고 몸매가 빼어난 새다. 새는 천천히 날거나, 길고 가느다란 다리로 서서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그 견줄 데 없이 아름다운 새를 차창으로 바라보는 순간 나는 행복해진다. 날거나 머물거나 그것이 새인 것만으로도 나에게 기쁨을 준다. 더구나 하얀 깃털 옷을 입은 새라니!
하지만 해 저물어 어둡고 선득한데 먹이를 쪼고 있는 저 검은 새는 쓸쓸해 보인다. 그를 바라보고 있는 나는 행복하지가 않고 마음이 아리다. 저 새는 가난하고 추워 보인다. 둥지로 돌아가 잠을 자야할 시간에 왜 아직도 시린 물에 발목을 묻은 채 먹이를 구하고 있는가. 새의 이름도 생태도 모르면서 그 처지를 운운하는 것은 미안한 일이다. 이 시간에 거기에 있는 것, 저 새에게는 그저 평범한 날의 평범한 일상일지도 모른다.
일상이라, 불현듯 이태 전에 본 조각전(彫刻展)이 생각난다. 각북 가는 길에 동제미술관을 들렀었다.『일상과 이상』이란 테마로 전시된 작품들 중에 유난히 내게 다가왔던 것은「여행」이었다. 새의 형상이었는데 인상적인 것은 둥근 공간으로 처리한 새의 몸통에 사람을 앉혀 놓은 것이었다. 하늘을 향해 한껏 길게 뻗친 부리와 목에서 수직상승의 의지를, 수평으로 쫙 펼친 두 날개에서 무한창공을 날고 싶은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의지와 열망은 새의 것이며, 새가 되고 싶은 사람의 것이라 여겨졌다.
옳거니 했다. 사람이 만든 새인 비행기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비상이다. 멋진 비상, 진정한 비상은 대기와 구름을 살갗으로 느끼고, 온몸으로 비바람의 저항을 이겨내면서 누릴 수 있는 새들만의 특권이다. 자유인 게다. 작품「여행」에서 내게 건너온 메시지는 자유였다. 새의 몸에 실려서 여행을 하는 자유가 아니라 ‘새’ 라는 형상과 의미 그 자체로 충만한 자유, 그것이 느닷없이 날아와 가슴에 박히는 기분이었다.
그날 새 한 마리가 내게로 들어와서 여태도 살아있다. 나는 그 새를 가두고 있는 새장이며 새 주인이다. 내 안에 있는 새를 내보낼 어떤 방도도 없이 이따금 새의 파닥이는 날갯짓을 느끼고 그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대로 산새소리 물새소리 가로수에 찾아드는 도회지의 뭇새소리를 즐거이, 때로는 아프게 들으며 살고 있다.
강은 빈약하다. 인공으로 유지되는 강이어서 보에 물을 가두고 내보내고를 조절한다. 보에서는 흘러넘치는 물이 연이어 흐르지를 못하고 바로 아래에서 바닥을 드러내는 형국이다. 유장하게 흐르지는 못할지라도 밤낮으로 강물이 흘러서 신천이란 이름이 무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게 많이 아쉽지만 지척에 물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더구나 그 물 위를 나는 새들을 볼 수 있고, 밤이 되어도 강을 떠나지 못하는 새를 보며 그와 나 그리고 내 안의 새가 하나가 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진정 기껍다.
상념에 젖은 사이 검은 새가 보이지 않는다. 그가 날개를 펴는 순간을 놓쳤다. 어디로 갔을까. 그곳이 어디이든 꿀맛 같은 잠을 자기를 바란다, 내일은 또 하루치의 일상이 기다릴 터이니. 일상은 고단한 날개 위에 내려덮이는 어둠이며 늦은 저녁의 허기이고 시린 발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은 살아있음의 환희와 자잘한 기쁨의 원천인 것이다.
새가 꿈꾸고 내가 열망하며 동시에 내 안의 새를 날려 보내고 싶은, 그 자유란 그러니까 단순히 일탈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곤고한 일상의 뒤에 찾아오는 것이며, 겨운 날갯짓으로 헤쳐 나가서야 비로소 이를 수 있는 편안한 마음 또는 얽매이지 않는 정신일 터이다. 온갖 것에 얽매여 저 창공을 날지 못한 내 안의 새는 오늘도 힘찬 비상을 꿈꾸며 다만 하루치의 날갯짓을 끝낸다.(2010)
2-1. 평범한 날의 평범한 이야기
친구는 지금 한 시간째 이야기를 하는데 끊어지는가 하면 이어진다. 나란히 앉아 있으므로 나의 시선은 그의 옆얼굴에 머물러 있다. 그의 얼굴은 단아하지만 좀 지쳐 보인다. 그는 갈색 주름스커트에 아이보리색 반소매 니트를 입고 굽이 낮은 구두를 신고 있다. 검소하나 세련되어 보인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주 오랜만에 만난 것이다. 몇 년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범어로터리의 횡단보도는 길다. 따라서 신호등이 바뀌는 시간도 길다. 인도와 횡단보도 사이에는 그래서인지 조그만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은행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백 년 수령이다. 수피는 거의 다 벗겨졌고 세월만큼 옹이도 깊게 패었다. 돌에 새겨진 나무의 내력을 읽다보니 신호등은 다시 빨간 색이다. 등나무 그늘로 들어가려다가 통나무의자에 앉아있던 그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잠시 수다스럽게 인사를 나누었다. 왜 여기 앉아있냐고 물었더니 그는 집에 가는 길인데 그늘이 좋아서 잠깐 쉬고 있다고 했다. 찻집에 가지 않겠느냐는 나의 말에 “여기도 좋은데 뭘” 그가 대답했다.
그날 일을 잊을 수가 없어. 오늘처럼 이렇게 하늘이 흐린 오후였어. 아버지가 어디선가에서 갑자기 나타나더니 엄마의 머리채를 휘어잡았어. 어찌어찌해서 아버지를 밀치고 도망을 치는데 엄마가 그렇게 잘 달리는 줄 몰랐어. 그렇지만 아버지가 더 빨랐어. 대문을 나선 엄마는 논두렁을 달리다가 미끄러졌고 아버지는 그런 엄마를 논배미에다 쳐 박았어.
바람 한 줄기가 지나가면서 머리카락 몇 올을 건드린다. 목소리들이 지나가고 파란 플라스틱 슬리퍼도 찌이익~ 찌이익 소리를 내면서 내 구두코 앞을 지나간다. 문득 ‘인생은 지나간다’란 구효서의 산문집 제목이 생각난다. 그렇지 인생은 지나가는 것이지. 그것이 아무리 신산하다 할지라도 결국은 지나가게 마련이지.
아버지는 노름 밑천이 떨어지면 들어와서 엄마를 두들겨 팼어. 아들을 낳지 못해서 사는데 재미를 붙이지 못하는 것이라며 엄마는 스스로 죄인이 되었지. 되는 대로 돈을 마련해 주는 생활이 계속되었던 거야. 더 이상 돈을 만들 수가 없었기 때문에 엄마는 결단을 내려야했던 게지. 고래고래 고함치던 아버지가 잠들었을 때 엄마가 젖먹이를 업더니 살며시 방문을 열고 나가는 거야. 바로 그전에 엄마는 나와 동생들을 번갈아가며 뺨을 어루만지고 머리를 뒤로 쓸어주었어. 그때 엄마 손이 아주 가늘게 떨리는 것 같았거든. 그 때문에 이상한 낌새를 알아챌 수 있었지.
일터로 돌아가야 했기에 나도 모르게 시계를 만지작거린 모양이다. 그가 너 가야하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괜찮다고 나는 시치미를 뗀다.
엄마가 대문간까지 가기를 기다렸다가 나도 고양이처럼 소리 내지 않고 일어났어. 하늘에는 달무리가 떠 있었고 별은 보이지 않았어. 동구 밖을 지나면 커다란 못이 있었거든, 엄마가 거기로 가는 거야.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어. 거기까지 꽤 먼데 그 컴컴한 길을 어떻게 따라갔는지……. 못가에 주저앉아 있는 엄마를 숨도 안 쉬고 지켜보았어.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 한참 만에 엄마가 못둑의 경사면으로 느리게 내려가는 것 같았어. 엄마! 그만큼 크게 엄마를 불러보긴 처음이었어. 내 목소리가 하도 커서 나도 놀라 자빠지는 줄 알았거든.
그만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꼼짝 않고 앉아있다. 그의 야윈 손에 가있던 시선을 거두어 위를 쳐다본다. 우거진 잎사귀들 사이로 조각난 하늘이 보였다. 잔뜩 흐린 날인데 작은 틈으로 난 하늘은 맑은 것처럼 보인다. 동전만한 하늘 몇 조각을 보면서 생각한다, 희망은 저렇듯 작은 틈으로 쏘아주는 빛살 같은 것일 거라고.
엄마는 화들짝 놀라더니 일어나서 나를 껴안았어. 내가 큰 소리로 우는 바람에 업혀있던 동생이 깨서 막 울었어. “야들이 와 이래 우노!” 그러면서 바람 쐬러 나왔다고 집에 가자고 하더라. 엄마 손을 꼭 잡고 집으로 가면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덜덜 떨려서 말이 되지 않았어. 그날 밤부터 며칠 동안 나는 몹시 아팠어. 이마에 물수건을 얹으면서 엄마는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말했는데 고맙다는 말은 여전히 입 속에서 우물대기만 했어. 아홉 살 때였지. 우리 어머니, 정신을 놓았다 잡았다하며 여태 살아 계시거든. 지금은 무엇 때문에 사실까.
그가 나를 보고 웃는다. 일상적인 미소다. 마주보고 웃음 지으며 나는 속으로 말한다. 누구든 무엇 때문에 살지는 않아. 그냥 사는 게지. 저 은행나무도 그냥 견디며 살아왔을 거야. 그의 손을 잡는다. 손이 따뜻하다. (2002)
2-2.섣달그믐밤
임금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오십 보쯤 떨어진 곳에 앉아서 그의 곡진한 시선을 느끼고 있다. 그는 나를 찬찬히 헤아리고, 나는 그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본다. 그의 고뇌가 무엇인지를 백성의 눈도 어미의 가슴도 아닌, 한 인간의 마음으로 짚어본다.
그의 휘는 혼(琿)이며 조선 15대 임금이다. 어느 왕자가 세자가 되느냐로 신하들이 밤낮으로 싸웠다. 마침내 왕이 되었으나 서출의 올가미는 촘촘하고 단단했다. 그의 영민함은 차츰 흐려지고 분노가 칼날처럼 벼려졌다. 어린 동생을 죽이고 그 어미를 폐하는 패륜을 저질렀다. 하여 광해군으로 강등되었으나, 그것은 나중의 일이며 지금의 그는 어진 군주이다.
임금의 가슴에 얹힌 맷돌은 무겁다. 시종들이 밤을 꼬박 밝히며 그를 지키고 있지만 그는 두려움에 휩싸여있다. 상소들, 간언들, 산적한 난제들로 인해 그의 숨결은 거칠고 왜, 명, 청 사이에서 그의 고뇌는 깊어만 간다. 칠흑 같은 섣달그믐밤, 임금은 그래서 외롭다.
이 밤에 내가 임금을 불러낸 까닭은, 그가 아직 임금이었던 어느 해 과거시험에 “섣달그믐밤의 쓸쓸함에 대하여 논하라”를 시제로 내렸다는 사실을 불현듯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그를 생각하자 그의 쓸쓸함이 내게로 와서 무너지고 사무친다. 임금과 내가 생각하는 바, 해야 할 바가 매우 다를 것이기에 그의 고뇌와 나의 고뇌는 사뭇 다를 터이다. 하지만 섣달그믐밤에 한 인간에게 사무치는 쓸쓸함이야 무에 그리 다르랴.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잘했거나 못했거나 해는 저물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잠시 서 있다가 계단으로 몸을 돌렸다. 지쳐있었는데 무슨 심사인지 스스로도 몰랐다. 3층서부터 숨이 찼고, 7층쯤에서 종아리가 당겨서 무릎을 짚고 쉬었다. 9층에선가 허리에 손을 얹고 몸을 젖혔다. 그렇듯 헉헉대며 20층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12층으로 내려왔다. 저녁 여덟 시가 조금 넘어있었다. 몇 가지 일을 더 처리하고 늦은 밤이 되었다.
몸과 마음이 함께 고단하다. 거실에 놓인 다탁에서 뜨거운 메밀차를 마셨다놓았다 하며 창밖을 내다본다. 자동차헤드라이트들이 길고 긴 빛의 줄기를 만들고 있다. 가로등불빛들은 강물에 주황빛으로 누워 있고, “멋진 나라 대한민국” “하이마트” 옥상간판 글씨들이 선명하다. “7천9백만 원” 뜻이 모호한 숫자도 커다랗게 보인다. 달도 별도 보이지 않는 그믐밤을 수많은 전등불빛이 대신 밝혀주고 있다. 밤은 그러므로 환하다.
세찬 바람이 창에 부딪쳐 울어대는 밤, 문득 누군가가 미어지게 그리운 밤, 낮에 보았던 새들이 어디에서 잠자고 있는지 그 향방이 묘연한 밤, 밝아올 날에 맞닥뜨리게 될 일들이 두렵다. 그 절대고독 속에 임금과 내가 앉아있다. 그도 혼자고 나도 혼자다.
“섣달그믐밤의 쓸쓸함, 그 까닭은 무엇인가” 제목을 쓴다. 첫 문장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4백 년 전의 임금이 나를 보고 있다. 지필묵대신 컴퓨터를 마주보고 있는 늙은 나를 젊은 군주가 낯설게 그러나 다정하게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다. 혼자인 내가 혼자인 그에게 답한다.
나랏일이 지난하고, 백성의 안위가 천근의 근심이며, 날로 드세지는 정쟁 때문에 권좌가 등불처럼 흔들리니 고뇌가 어찌 아니 깊겠습니까. 욕망에서 비롯되었을 고통과 불안이 당신을 짓누르고 있겠지요. 패배에 대한 두려움, 일련의 현상에 대한 부정(否定)적 심경이 당신을 괴롭히리라 여깁니다. 한 해를 보낸 안도와 휴식보다 맞아야할 시간 앞에 당신은 떨고 있습니다. 저녁에 집에 들면서 저는 일부러 계단을 올랐습니다. 몸은 어렵잖게 집에 이르렀으나 디뎌야할 수많은 계단이 여전히 앞에 놓여있었습니다. 막막했다면 이해하시겠는지요.
당신과 저는 4백 년의 시차를 두고 각각의 근심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습니다. 말씀드리건대, 한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은 임금과 필부가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계와 동떨어져서 홀로 앉아있는 밤, 고뇌는 철저히 혼자만의 것이 됩니다. 방도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겨내야 하고, 어떤 경우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의연해야 합니다. 이런 말들이 당신에게 위안이 되고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임금이시여, 미치지(及) 못하는 변설로 덧붙입니다. 당신의 하늘은 달빛이 없어서 캄캄하고, 저의 하늘은 전등불빛으로 대낮같이 밝습니다. 너무 캄캄한 밤도, 지나치게 밝은 밤도 인간을 몹시 쓸쓸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까닭도 탓도 오직 밤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섣달그믐밤이겠습니까.
섣달그믐밤이 하도 길어서 오래전 이 밤에 몹시도 쓸쓸했을 젊은 임금과 그 하염없음을 나누려하였다. 임금은 그러나 홀연 사라지고, 휘청거리며 살아온 내 모습만 불빛아래 또렷이 드러난다.
3. 옴마, 옴마, 울옴마
-사투리수필(경상도)
내는 와 옴마한테 글을 안갈챘겠노. 와 그 생각을 몬했는지 기가 찹니더. 시건이 업서도 우째 그러키 업섰는강, 암짜도 씰 데 업는 가똑똑인기라예.
옴마 살았을 직에 내 이뿐 딸내미라꼬 생각했십니더. 애 안믹이고 컸다고 생각했심더. 시상에 효자효녀는 업따는 거 옴마 시상 배리고도 한참 지내서야 알았십니더. 다른 거 말로하마 머하겠노. 옴마 일짜무식 까망눈으로 살다가기한 딸자석이. 옴마 옴마 안답답했심니꺼. 와 글 갈채돌라꼬 말 안했심니꺼. 딸 너이 아들 하나 혼차 공부시긴 옴마가 불효막심한 자석새끼들 머라카지도 안코.
울옴마, 백오십삼센치나 됐어까. 쪼맨하고 오동통했지예. 눈은 속쌈시불 찌고 코는 낮도 높도 안하고 콧구무가 쬐끔 들린 개롬한 얼굴에 끝꺼지 비내 찌르고 사신, 머 박색도 일색도 몬되는 여자였지예. 야물딱지기는 시상에 두째가라하마 설벘지예. 옥양목 치매조고리에 밍비 앞치매 두리고 정짓깐 장독깐 발빠닥 딿키 삐대고, 짱백이에 따뱅이 언저가 새참, 중참 반티 모가지 뿌라지기 이고 논때기 밭때기로 댕길 때 여사로 생각했심더. 옴마는 그래 사는 기라꼬.
아부지가 술자리에 수타 갖다 내삐리고도 남가준 전답도 술찮았는데 옴마, 옴마는 와 그래 살았십니꺼. 그러키 새빠지게 안 살어도 밥은 묵었는데. 그 전답 옴마 독씻고 단지씻고 하나뿌인 아들이 어지가이 축내고도 안죽꺼지 남어서 옴마 눈에 너어도 안아푸다캤던 손지차지 됐심더. 그 손지 지 애비 안닮어서 잘 징기고 있어예. 하이고~다행이지러, 다행이지러.
“우리 가시나들은 얼음구디이 갖다나도 잘 살낀데 저거 개랄겉은 저거는 지꺼 업스마 굼는대이” 옴마 그런 말할 직에는 맥지 카는 소리라꼬 귀시브럭지로 흘맀는데 한참 나 들어가 생각해보이 그기 너거는 궁물도 업따 그 말입디더. 그러키 주무이 들온 돈은 내놀 줄 모리고 살어가 아들 다 주고 가시서 좋았지예? 그까지 꺼 유감업심더. 얼음구디는 아이지만 딸 너이 넘의 집에 돈 안 채로가고 삽니더.
옴마, 옴마, 울옴마, 이할배는 와 이아재는 경대법대꺼지 시기고 옴마는 핵교 문찌방도 몬 넘게 해가 ‘가’짜 뒷달구지도 모리게 하싰으까예? 그거 모리잔심더. 식짠은 가시나라꼬 그래께찌예. 그러키 당코도 옴마는 또 와 가시나 머슴아 가맀능교. 딸 너이 아들 너이 놓아가 아들 서이 잃아뿌고 가시나는 너이 다 건지가 아들, 아들하신 거 모리지는 안심더. 그래도 그러치, 오래비는 졸업할 직에 앨범 사주고 내는 앨범도 안 사조가 앨범도 업시 졸업해가 억수로 설벘심더. 하이고~내가 이카면 죄 받지러, 내 동무 희야, 자야, 공장에 실 풀로 갔는데 옴마는 딸자석들 다 핵교 보냈지예. 오감코도 오감치예.
좀 오래됐심더. 여개저개서 문맹어른들 글 갈채는 거 유행하기 시작했심더. 그 어른들이 글짜를 깨우치가 장빠닥을 돌아댕기시민서 간판 읽는다꼬 장이 떠니리가기 떠들어댔어예. 글짜 읽는 기 신기해가 윗어대고 손뼉치고 난리였는데 내는 각중에 가심이 턱 맥히뿌릿어예. 울옴마는 저거도 몬해보고 가싰네, 내는 머하고 살았노. 내 눈이 밝어서 옴마 눈 어덥은 거 모리고, 옴마 답답은 거 꿈에도 모리고…….
나는 수무 살이나 어데로 묵었는공. 옴마는 거가 머 갈채는 덴지도 모리는 대학이나 댕기민서. 옴마, 내 대학 입학한 날 생각킵니꺼. “아이고~ 좋데이, 우째 이러키 좋노. 땡삐겉이 공부하디만~” 하싰지예. 그기 옴마 포안진 말인 중도 모리고 “고마 카이소, 촌시럽구로.” 내가 챙피시럽어 했는 거 내도록 맴에 걸맀십니더. 옴마, 옴마, 울옴마. 내가 커고 나 묵어가 글쨍이가 됐심더. 책도 마이 읽꼬, 글도 어지가이 씁니더. 옴마는 듣도 보도 몬한 ‘수필’(이거이 먼지 우째 말하마 옴마가 알아듣겠노.)이란 거를 짓는데 이기 바로 글짜놀음인기라예. 그리키나 천지삐까리인 글짜를 갖꼬 놀민서 생각했심더. 내는 와 옴마한테 글짜 몇나를 몬 갈채가 이래 가심치고 있노. 신경숙이라꼬 이름 날리는 소설가(소설가가 머하는 사람이고 하마 이바구를 질다랗키 글로 씨는 사람입니더)가 있심더. 그 사람이 “엄마를 부탁해” 라 카는 이바구책을 지어가 참말로 시상천지를 다 울맀심더. 그 이바구책에 나오는 주인공이 내나 소설간데 지가 소설가민서 저거 옴마한테 글짜 안 갈챘데예. 그라고 얼매 전에 수필 읽는데 글 모리는 옴마한테 시상배린 아부지가 남가준 돈하고 통장 이바구데예. 내가 그 사람한테 전화했심더. 김선상은 와 옴마한테 글 안 갈챘나꼬, 내 머라캤심더. 참말로 도분이 났는기라예. 그 사람한테가 아이고 내한테 성이 났는기라예. 시상에 내겉은 자석이 수두룩뻑뻑한갑심니더. 도리깨로 훌배야 맞뜩은 것들이.
옴마, 옴마, 울옴마, 내 아홉 살인가 묵었을 직에 옴마가 내 상장으로 곡식자리 입을 막카서 내가 “옴마!” 빽 소리를 질렀지예. “야~가 와 이카노, 놀래 자빠지구로!” 그카민서도 옴마는 그 조오를 빼가 손으로 쓱쓱 문때서 내한테 주민서 “미안테이” 했심더. 글 모리는 옴마한테는 그기 그저 뚜꺼븐 조오라 곡식자리 주딩이 막후기에 딱 좋았찌예.
옴마 글 갈채서 검정고시 보이가 졸업장도 타기 해디릴 낀데, 다 컨 자석이 다섯이나 돼갖꼬 아무도 그 생각 몬 했시이 불효도 이런 불효가 업심더. 울옴마 빙들어 오만때만 고상만 하다가 오십너이에 가싰는데 옴마보다 여섯 살이나 더 묵은 내는 안죽꺼지도 천지분간을 몬하고 지가 잘나서 사는 중 압니더. 옴마 저시상 가신 그때 그 시건머리 업는 헛똑똑이 수무 살이나 진배 업심더. 옴마, 옴마, 울옴마.
(2013)
▪수필 낭송 / 안연미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 허창옥
그는 나에게 어떤 격이 높은 가치나 관념보다 더 소중하였다. 나에게서 그의 존재를 떼어내면 나는 무중력 상태가 되어서 둥둥 떠다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그의 의미가 무겁고 깊고 컸다.
나는 그를 구성하는 맨 처음 한 개의 세포로 생겨났다가 끊임없이 분열을 하여서, 그를 이루는 전체가 되었을 거라는 실로 엉뚱한 생각을 이따금 해 보았다. 이런 비논리적인 사고는 마침내, 내가 병이 나서 앓기라도 한다면 아마 그의 몸에도 실제로 심한 통증이 생길 거라는 망상으로 비약되기도 하였다. 그토록 어이없는 생각을 한 것은 그와의 완연한 일치를 갈망하였기 때문이었으리라.
눈길이 닿는 모든 사물에서 그를 느꼈다. 이를테면 이팝나무를 바라보고 있을 때, 불현듯 눈꽃보다 더 흰 꽃잎 하나하나가 그의 눈빛이 되어서 나를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눈 속, 깊이 모를 심연에 담겨 있고 싶었다. 그런 나날들 속에서 오늘은 어제만큼 기뻤고 내일은 또 오늘만큼 아팠다.
어느 날 그가 말했다. 우리가 햇빛 아래 서면 내 그림자는 당신의 모습으로, 당신의 그림자는 내 모습으로 나타나면 좋겠다고. 한 영혼이 또 다른 영혼에게 다가가서 하나가 되기를 간절하게 소망했던 것이리라.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바라보면서 거기에 머물지 않고 대상을 통해서 어떤 의미로든 향상되기를 바랐던 것이리라.
마음이 가는 길을 볼 수 있거나 그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서로에게 쏟는 그리움을 다 헤아릴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역시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이 좋겠다. 너무 기뻐하는 것이 노출되면 민망하고 너무 고통스러워하면 서로를 괴롭히는 일이 되며, 무엇보다 신비함, 내밀함이 엷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정에 영원성을 얼마만큼 부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겉모습처럼 주름이 지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러기에 또 얼마간의 세월이 흘러서 황혼에 이르더라도, 지순(至純)함만은 그대로 지니고 싶다는 소망을 버리지 않는다. 지순이란 말이 나와 버렸다. 감히 지고(至高)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순했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수백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얼마나 많은 말을 하였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의 빛깔을 충분히 그려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고백하건대 표현은 언제나 마음보다 모자랐다. 결코 말이나 글로써 다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환희와 고뇌가 거듭되는 삶 속에 진실을 용해시킬 수 있을 뿐이었다.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아직 사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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