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 조옥엽
남편이 거실에서 자고 있다
오늘은 어느 바다를 헤엄치다가
귀항했는지 탈탈거리는 엔진소리가
한밤의 멱살을 잡고 흔든다
몸 누일 둥지를 틀고
식구를 먹여 살린다는 건
거친 바다에 몸을 던지는 일
어둠을 뚫고 용케
어리바리한 물고기 몇 마리
건져 올려 하루를 접고 짠물에
절은 삭신 막걸리 몇 잔으로
달래 바닥에 눕히고 잠든 남편
잠결에도 압박감에 짓눌려
바다와 교신 중인지 간간이
미간을 찌푸린다
하루치의 엔진오일을
보충하고 소진하는 과정으로
수수 년 이어져 온 생
숱한 고비들을 넘기고 다시
이어지는 날들이 기적 같은데
충전을 다 마쳤는가
뱃고동 소리 내뿜던 거실은 고요해지고
나는 주유기를 빼 제자리에
돌려놓고 정적이 주는 평화를
양손에 꼭 쥐고 돌아눕는다
【너스레】
잘 발효된 사랑을 모티브 삼아 엮었습니다. 부부간의 정은 대개 눈에 확 띄게 드러나지 않고 은근하게 바탕에 깔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편들은 대부분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집에 돌아와 밥을 먹고 잠을 잡니다. 이 시에 등장하는 남편 또한 어부라는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낮에는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고 밤에는 귀항하여 막걸리 몇 잔을 마시고 잠에 듭니다. 이 광경을 아내는 측은하게 바라봅니다. 남편은 피곤한 몸 때문인지 코를 골며 잠을 잡니다. 오랜 직장생활, 가족을 돌보는 노동으로 지쳐 잠든 남편, 아내는 손을 잡아주고 이불을 덮어주며 편안히 쉬도록 해줍니다. 아내의 이 사랑스런 손길과 배려로 인해 남편은 몸에 소진되었던 기운을 다시 충전시키고, 깊은 잠을 자고, 그리고는 이내 기지개를 켜고 깨어날 것입니다. 남편의 일상을 묵묵히 지켜보며 부부애를 잔잔히 느끼게 하는 지극한 사랑의 표현, 참으로 애틋하기 그지없는 작품입니다. 두 손을 마주치며 찬사를 보냅니다. (박일만 시인)
<박일만 시인>
·전북 장수 육십령 출생
·2005년 《현대시》로 등단
·<송수권 시문학상>, <나혜석 문학상> 수상
·시집 『사람의 무늬』,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 『뼈의 속도』, 『살어리랏다(육십령』, 『사랑의 시차(제부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