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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호두 / 배두순

에세이향기 2025. 2. 21. 09:24

호두 / 배두순


호두알을 굴려본다

달그락달그락

서로의 몸을 들여다보는 호두 두 알

멀미인 듯 내부의 신음 소리도 들린다

기억의 뇌리가 돌돌 말려 있는

둥근 내색을 살펴보며 나무의 과거를 굴린다

여름 한때 푸르고 야심만만하던 꿈의 무게는

어느새 샅샅이 발려지고

호두를 따던 노인의 회상이

움푹 파인 볼우물 속에 웅크리고 있다

나의 회상들도 단단하게 굳어버린

호두의 뇌리 속에 머뭇거리고 있는 것일까

가을은 깊고 닳아 없어져야 될 추억들은 많다

아귀가 맞지 않는 추억과 추억을 대질심문하듯

호두알을 굴려본다

손바닥 안의 운명선이 먼저 헝클어지고

나는 아직 세상의 주름진 내막을 익히지 못한 채

진땀을 흘리며 호두알이나 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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