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 點 /김채영
사과 철이 시작되면서 동네 골목 어귀에서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날마다 허름하기 짝이 없는 고물 트럭에 썩은 사과를 가득 싣고 나타나 그림자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다. 나는 시장을 오가며 마치 70년대의 농담이 희미한 낡은 흑백사진 한 장을 감상하는 쓸쓸한 기분으로 그 앞을 지나쳐 오곤 했다. 그야말로 썩은 사과-- 사과 한 알마다 마치 어떤 검증을 거친 증표처럼 크고 작은 도장 모양의 갈색 점()들이 꼭꼭 찍혀 있었다. 거저 준다 해도 누가 가져다 먹기나 할까. 무슨 돈벌이가 될 만한 귀물이라고 온종일 저렇게 궁상맞게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것일까. 차라리 다른 과일과 구색을 맞춰서 파는 게 어떠냐고 양지 끝에서 고양이처럼 웅크린 그의 침묵에 끼어들고 싶기도 했다.
나는 그에게 사과 한 개조차 팔아 주지 않았다. 허황된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보기 좋은 떡 먹기도 좋다는 말에 동의하는 편이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 그렇지만 절대로 사치스럽지 않게 계산적인 철학? 을 내 나름대로 갖고 있었다. 가령 작은 사과를 열 개 먹을 돈으로 예쁜 빛깔의 싱싱한 사과를 세 개를 사는 그런 것 말이다. 썩은 사과 장수는 얼마 가지 않아 자취를 감출 것이라고 예감했다. 그러한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끈질기게 썩은 사과를 가득 싣고 와서 골목에 전을 폈다. 그새 단골이 생겼는지 사과를 싸 놓은 무더기들이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곤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어스름한 늦가을 저녁 찬바람 탓인지 사과 차의 백열등 붉은 불빛은 어느 때보다 정겨웠다. 나는 그 따뜻한 불빛에 이끌려 썩은 사과 한 무더기를 사기로 했다. 솔직히 말해 그 동안 유보해 온 호기심 때문이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꾹 다문 입이나, 볼품없는 상품 가치로 봐서 물건이 팔릴 것 같지 않은데 그런 대로 장사가 잘 되고 있었다. 반드시 손님을 끄는 그만의 독특한 비결이 있을 것 같았다.
그의 상술은 지극히 독재적이며 특별했다. 사과 한 무더기에 3000원인데 덤으로 한 무더기 더 주었다. 바구니 안쪽에 바늘구멍처럼 미세한 마른 흠집이 난 것을 몇 겹 깔아 놓고 동전 크기로 썩거나 새가 쪼아먹은 사과를 보란 듯이 위에 덮어 팔았다. 썩은 사과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사가라는 순전히 배짱 장사였다. 그렇다면 바구니 안에 있는 거의 멀쩡한 사과는 그의 양심인가! 항상 푹 눌러 쓴 모자에 가려 있던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그로테스크하게도 눈 밑에 꼭 썩은 사과를 닮은 갈색 점(點)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때부터 내게 그 사람의 이름은 점박이였다.
사과는 생각보다 당도가 높고 과육이 연했다. 썩은 부위도 깊지 않아 조금만 도려내면 손님상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겉모양으로 평가하던 성급한 나의 식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내 기억으로 가장 단란했던 유년 시절, 우리 집은 시장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버지가 일터에서 돌아오시는 어둑한 저녁 무렵이면 반드시 시장을 거쳐야 했는데 그분의 손에 항상 무엇인가가 들려 있었다. 국화빵이라든지, 우리들의 옷가지나 장난감, 어느 때는 찢어진 종이봉투 사이로 유리 보석이 박힌 빨간 구두가 눈부시게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버지가 사 온 물건으로 집안이 종종 시끄러워 지는 일도 있었다. 시들은 과일이나 채소, 생선 따위를 떨이로 사다 나르니 어머니가 가만히 계실 리가 없었다.
편모슬하의 모질게 가난한 성장기를 보냈던 탓인지 아버지는 잔정이 지나치게 많은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눈에 파장 무렵까지 물건을 팔지 못해 동동거리는 상인들이 예사롭지 않았으리라. 어떤 날은 굴다리 밑에서 할머니가 팔던 고물이 쉰 팥떡을 사 왔고, 아예 행색이 초라한 날품팔이 지게꾼을 데리고 와서 밥상을 차리라고 했다.
어느 여름 밤, 아버지의 손에 들려 있던 생선상자를 기억한다. 물이 간 고등어가 담긴 그 나무 궤짝. 그 야릇한 비린내는 한순간 집안의 기류를 온통 칙칙하게 만들었다. 어머니가 당장 내다 버리라고 아버지에게 바가지를 긁어댔다.
아버지가 늦은 귀가 길에서 만난 젊은 여인은 무슨 사연인지 아기까지 업고 처량하게 불 꺼진 시장 골목을 서성이고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관심을 보이자 여인은 생활이 어려워 장사를 나온 첫날인데 생선을 반도 팔지 못했다고 울먹이더라는 것이다. 항상 아버지의 선택 뒤에는 깊은 사유가 있었지만 어머니를 움직일 설득력이 부족했다. 시골의 일가붙이나 고향 이웃들을 불러들여 일자리를 알선해주었으며, 그들이 자립할 때까지의 숙소는 영락없이 우리 집이었다. 어머니는 항상 커다란 솥에 군식구가 먹을 여분의 밥과 국을 끓여대느라 분주했다. 그렇듯 주변 사람에게 있는 정 없는 정을 모두 나눠준 것은 아버지 자신의 짧은 생애를 예감했기 때문일까. 그 때문에 시든 푸성귀와 쉰 팥떡, 상한 생선, 이런 쓸쓸하고 허무한 것들은 내게 그리움의 단어가 되어버렸다.
불치의 병으로 짧은 인생을 살다 가신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귀감 될 일들을 앞서 행동으로 보여주었지만 내가 그 뜻을 알기에는 너무 어렸거나, 살아가면서 서서히 변해 있는지 모른다. 내가 그 시절의 아버지 나이에 가깝다고 생각해 보니 문득 타산을 합리적인 것처럼 믿어 왔던 내 삶의 방식에 대해 새삼 부끄럽게 느껴졌다.
올해는 많은 비가 내렸다. 거기에다 태풍의 출몰과 새떼의 극성까지 가세해 농작물의 피해는 추산하기 힘들다고 한다. 점박이 사과 장수가 아니면 어떤 이가 농장에서 거름이 되었을 썩은 사과를 당당히 내다 팔겠는가.
요즘 의류업계나 생필품, 대중음식점까지 실속파를 노린 복고풍 바람이 불어와 인기 상품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막대한 예산에 모험을 건 신상품 개발보다 향수를 자극하는 묘안으로 높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사과장수 또한 고단한 이 시대를 반영해 눈높이를 낮춘 알뜰 전략으로 우리 경제에 한몫을 하는 셈이다. 썩은 사과가 아니더라도 시골에서 갓 상경한 것 같은 헙수룩한 차림새나 순박한 외모까지 영락없이 향수 상품으로 안성맞춤이다. 그는 때때로 약으로 쓸 늙은 호박이나 채소 등 단골이 원하는 물건들을 농가에서 구해 오는데 물건 값이 너무 저렴해서 심부름에 가깝다는 것을 눈치 채게 한다.
점박이 사과 장수, 그의 썩은 사과는 팔아도 팔아도 끝이 없다. 썩은 사과를 모두 팔고 나면 그는 또 어떤 남루한 물건을 세상 속으로 들고 나올 것인가. 그에게는 그런 일이 사명감인 듯 진지하기만 하다. 세상의 썩은 것들이 모두 사라지면 사과 장수의 얼굴에 트레이드마크처럼 각인 된 갈색 점이 사라지기라도 한단 말인가. 오늘밤도 점박이 사과 장수는 찬바람 부는 골목에서 자신의 얼굴을 꼭 닮은 썩은 사과를 팔고 있다. 사과 차의 따스한 불빛에 젖은 골목길이 희망처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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