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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쉴 새 없이 솟아나는 류근홍 시인의 샘물/이승하

에세이향기 2025. 4. 17. 09:58

쉴 새 없이 솟아나는 류근홍 시인의 샘물

 

쉴 새 없이 솟아나는 언어의 샘물

 

이승하

 

류근홍 시인은 시단에 나오기 직전, 산문집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를 낸 적이 있었다. 네 가지의 암과에 대한 여섯 번의 암 수술을 극복한 저자가 펴낸 신앙 간증집이다. 이 책을 낸 이후 여러 교회와 모임에 가서 신앙 간증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늦깎이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나온 그이기에 회복 이후 시에 대한 열망이 불타올랐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전문가과정에 와서 시 창작의 방법을 심도 있게 공부하고선 등단도 하고 시집 『고통은 나의 힘』과 『당신 덕분입니다』를 펴내 두 차례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이들 3권의 책은 하나님 여호와가 나에게 이런 시련을 준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천국 문턱까지 갔었던 나를 살려내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에 대한 신앙적 탐구였다고 할 수 있다. 생사의 기로에서 헤매면서 류 시인은 시를 썼고, 그 시는 수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이들 3권의 책은 정말 눈물겹다. 생각을 한번 해보시라. 말이 쉬워 네 가지의 암과 다섯 번의 암 수술이지 투병의 과정은 혹독하였고 치열했을 것이다.

그는 지금도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면서 암세포의 준동을 체크하고 있는 중이다. 하루하루가 살얼음 위를 걷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2020년 2월 26일에 두 번째 시집을 냈으니 어언 5년의 세월이 흘렀다. 류 시인은 그간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물론 시를 썼다. 그런데 어떤 시를? 해설자는 이것이 너무나 궁금하였다. 신앙시를 많이 썼겠지만 그런 시만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궁금증이 이번에 보내온 시집 원고를 통독하면서 풀렸다. 류 시인은 자신의 삶과 꿈을, 일상과 사유를 이런 식으로 풀어가고 있었구나, 무릎을 치며 감탄하고 감동하였다. 이 해설문은 그 감탄과 감동에 대한 기록이다. 시집의 제일 앞머리에 놓인 시부터 보자.

나는 늘 꿈꾼다

사랑이 곁에 있어 주기를

 

그리고 생각한다

가까이 있어도 온전히 품을 수 없는

부족한 내 사랑에 대하여

 

사랑의 표현이 사라진 것에 대하여

무뎌진 마음의 거리에 대하여

―「당신을 꿈꾸다」 전반부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간다. 부모ㆍ자식 관계, 형제지간, 친척, 배우자, 학교 친구, 직장 친구, 동네 친구, 동료…….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가 하면서 지내다가 결국은 사별한다. 그런데 이 시의 화자는 당신과의 사랑을 꿈꾼다. 안타깝게도, 영원한 사랑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사별이 아닌 이별이라 다시금 사랑의 꽃을 피우기를 염원한다. 마음의 거리가 멀어진 것에 미안해하면서 다시금 그 열렬했던 때도 돌아가기를 바란다고 고백한다.

각자의 영역은 늘어나고 점점 틈은 벌어진다

안전한 지점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가

 

첫 만남은 덤덤해지고

화려했던 꽃들은 무색하지만

 

당신 밖에서 이토록 서성이는 것은

여전히 내 안에 당신이 살고 있기 때문

―「당신을 꿈꾸다」 후반부

 

당신을 알게 된 지도 꽤 오래되어 어느덧 무덤덤해지거나 무심해진 사이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화자는 나는 당신으로부터 멀어진 적이 없다고 새삼스레 고백하고 있다. 표현은 살갑게 하지 못하였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그대를 보고 싶어 하였고, 사랑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 고백은 시인이 자기 아내한테 하는 것일까? 아니, 긴 세월 동안 간병을 해준 아내를 포함한 주변의 모든 지인들에게 하는 사랑 고백일 것이다. 아내에게 하는 보다 확실한 사랑 고백은 다음 시에서 행해진다.

 

퇴근 시간이 되자 서둘러 명동으로 달려가 다방에서 기다렸다 신문에 나온 광고까지 몇 번씩을 읽고 나니 세 시간이나 지나갔다 카운터에 앉아 있는 주인의 눈총에 커피를 석 잔이나 시켰다 일어섰다가 앉기를 여러 번 마음을 접고 일어나려 하는데 한 여자가 빼꼼 문을 열고 들어온다 단발머리에 갸름한 얼굴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잘록한 허리 양 볼에 보조개가 멋쩍게 웃는다 제멋대로 나대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명동거리로 나섰다 그녀는 미안하다고 했고 나는 나는 더듬거리며 아니라고 했다 별말이 없어도 가슴은 따뜻했다 달빛이 뒤따라 왔다 간간이 분홍색 꽃가루가 바람에 날렸다 바람결에, 당신을 꿈꾸며 지금까지 기다렸다고 고백했다

 

사십육 년 동안 입속에 준비해 둔 말이었다

―「고백」 전문

 

세 시간 동안 기다리게 한 그녀가 나타났을 때 화를 내도 뭣할 판에 “단발머리에 갸름한 얼굴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잘록한 허리 양 볼에 보조개”를 보자마자 마음이 따뜻해졌으니 화자는 완전히 무골호인이다. 바로 이런 호감과 정이 46년 동안의 연인관계와 부부관계를 지탱케 한 힘이 아니었을까? 이와 같은 시인의 타인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이번 시집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은 아내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뛰놀다 넘어진 구멍

나뭇가지에 찢어진 구멍

얼룩진 옷들, 해진 옷들이 반짇고리를 뒤지고

오색 실뭉치를 꺼낸다

 

미간을 찌푸리며 바늘귀를 찾고

오물오물 실 끝에 침을 바르고

기름진 머리에 몇 번 문질러

한 땀 한 땀 가난을 꿰매던 어머니

 

물 빠진 빈티지 구제 옷들이 유행을 만드는 시대

여전히 찢어진 시간을 수선하며

느슨해진 단추를 칭칭 감는다

―「바늘」 부분

 

한평생 노동의 세월을, 특히 자기희생의 나날을 보낸 어머니에 바치는 송가이다. 작가 자신의 지난 세월을 다룬 시와 소설을 보면 대체로 아버지는 바람직한 인간상을 보여주지 못하는데 어머니는 이렇듯 인고의 세월을 보내면서 집안을 지킨 존재인 경우가 많다. 어머니도 모성도 여성도 위대하다. 그런데 화자의 아버지는 한량이나 술고래가 아니었나 보다.

 

때수건을 들고 앉아 있는 아버지의 몸을

구석구석 천천히 밀었다

어릴 적 내가 보던 몸이 아니었다

평생을 군 생활로 동란과 월남전을 다 겪은

서슬 퍼런 훈장들

녹슬고 지친 노장의 어깨만 보였다

 

뜨거운 열탕에 빠트린 울음을 건져

햇빛에 말리고 싶은 날

 

체념보다 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던 훈장들이

여기저기 헐렁하게 벽에 걸려 있다

―「훈장」 부분

 

화자의 아버지는 직업군인이었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다 겪은 이는 그다지 많지 않을 텐데, 그중 한 분이었던 것이다. 이 시의 아버지는 앞서 낸 시집에도 나오는데 그야말로 국가유공자다. 나라를 지켰고 미국의 부름에 따라 베트남에도 갔었는데 어느덧 노인이 되었다. 화자는 때수건을 들고 있는 녹슬고 지친 노장의 어깨를 보고 울음이 복받친다. “뜨거운 열탕에 빠뜨린 울음을 건져/ 햇빛에 말리고 싶은 날”이란 놀라운 표현을 새겨넣은 이 시는 아버지 세대의 모든 분들에게 마음의 훈장을 드리고자 쓴 것이다. 류 시인은 두 분의 슬하에서 자라나 이 나라 방방곡곡의 건설현장은 물론 먼 중동까지 가서 건설현장을 누비고 다닌다.

 

세상모르고 자란 부모님 품속이

이 세상의 낙원이었다

 

그 따뜻한 품을 벗어나는 순간

세상은 온통 지뢰밭이다

 

결혼하여 식구가 늘고

새벽부터 건설 현장에서 중동 사하라사막에서

낯선 타향에서

자식이 쉴 넓은 품이 되려고 비지땀을 흘렸다

 

하늘나라 가까워질수록

나이만큼 삼켜야 하는 약들만 늘어간다

 

부모님 슬하,

그 무릎 아래가 그립다

―「슬하」 전문

 

부모 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요즈음 결혼율도 낮고 출생률도 낮은 이유는 부모 되기가 무섭기 때문이다. 자식을 낳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 책임의 무게가 만만치 않으니까 결혼도 하지 않고, 설사 결혼해도 아이를 안 낳는 부부가 많다. 시의 화자는 부모님 품속이 낙원이었다고 말한다. 그 품을 떠난 세상은? 온통 지뢰밭이었다고 말한다. 사하라사막에서 6년 동안 비지땀을 흘린 이유는 오로지 ‘부모 되기’ 위해서였다. 올바른 부모, 훌륭한 부모. 젊을 때 돈을 벌어놓아야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일념으로 사막의 모래바람과 직사광선을 맞으면서 버텼던 것이리라.

시인이 요즈음 관심을 갖고 있는 인간군은 노인층이다. 본인도 나이가 먹고 보니 연세가 높은 주변 노인분들의 삶에 관심을 두게 되었던 것이다.

 

골목을 뒤지며 폐지 줍던 절름발이 할아버지

차곡차곡 접힌 리어카 옆에 세워두고

담 모퉁이에 기대어 낮잠을 잔다

―「텃새」 부분

 

작년에 큰 수술을 하신 아랫집 할머니

해마다 오셔서 김장하는 방법을 알려주신다

팔순이 넘은 목소리는 작지만 아직 입심은 대단하다

불편한 몸에도 일일이 참견을 한다

―「김장하는 날」 부분

 

노년의 당당함은 노동력이 그래도 가능해야지 나온다. 누워 지낼 때가 오면 할 수 없지만 그날이 올 때까지는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각오가 이 두 편의 시에서 느껴진다. ‘노인 되기’의 어려움을 아주 심각하게 다룬 시가 있다.

 

노인은 죽은 듯 의자에 앉아 볕을 쬐고 있다

계절의 속도감이 그에게 미치지 못하고

붉게 물들어 머물러 있다

 

시간을 먹어치운 노인은 대개

지혜롭다

 

어리석고 파괴적인 바깥세상에 대해

함구하지 않는다

 

부정과 폭력과 살인 속에

슬픔이 끊임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까닭을

구부정한 어깨와 주름은 알고 있는 듯했다

 

그것을 감당할 수 없어

그는 은퇴를 했다

 

그때부터 비극은 시작되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계절과 계절 사이에 비껴 앉아 묵묵히 볕을 쬐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자는 척한다

―「노인 되기」 전문

 

흔히 우리는 연세가 높은 분을 가리켜 ‘산전수전 다 겪은 분’이거나 ‘만고풍상을 겪은 분’이라고 한다. “시간을 먹어치운 노인은 대개/ 지혜롭다”는 것은 진리이다. 그런데 제4연에 가서 시는 분위기를 일신한다. 이 세계의 모습을 ‘부정’과 ‘폭력’과 ‘살인’으로 규정했는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란 영화가 바로 이 세계를 이런 식으로 다루고 있다. 영화도 그랬지만 현실에서도 노인은 소외되거나 유령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다. “슬픔이 끊임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까닭을/ 구부정한 어깨와 주름은 알고 있는 듯하다”는 구절도 의미심장하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과 계속해서 헤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십중팔구는 어깨가 구부정해지고 십중십은 주름이 늘어난다. 주름을 성형수술로 지울 수 있다지만 그랬다가 얼굴에 손상이 와 원래의 모습을 잃는 경우도 왕왕 있다. ‘노인 되기’는 시간이 되면 자연히 이뤄지는 자연현상이지만 ‘제대로 노인 되기’는 쉬운 일이 아님을 얘기하고 있다. 이제 시집의 제목이 된 시를 보자.

 

사내가 마지막 잔디를 깎는다

 

예초기에 파편처럼 흩어지는 풀잎들

소박한 일생을 꿈꾸던 푸른 살들 허무하게 사라진다

 

무수히 밟혀도 오뚝이처럼 일어서던 고집이

날카로운 칼날에 잘리고

풀이 토해놓은 풀 비린내가 질펀하다

 

풀은 녹색의 피를 가졌다

풀밭에 앉았다 일어설 때 바지에 묻었던 풀물도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그 푸른 얼룩은 풀이 내질렀던 비명인 줄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투덜거렸다

 

그 하찮은 풀도 품어 기르는 것이 있다

벌레도 나비도 개미도 메뚜기도

모두 풀이 키우는 가족이었다

덕지덕지 붙어 있는 잡초들 온 힘을 다해 떼어냈을 때

나는 그들의 집을 허물었던 것이다

 

십자가에서 몸을 허물어 인류에게 봄이 된 사내처럼

봄이 오면 다시 살 수 있다는 것을

풀은 기억한다

 

네 개의 암에 잡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처럼

―「풀은 녹색의 피를 가졌다」 전문

 

예초기를 사용해 잔디를 깎는 광경을 시에 그리고 있지만 그 행위를 시로 그리고자 쓴 것이 아니다. 이 시는 “네 개의 암에 잡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처럼”이라고 밝힌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명백히 자서전이다. 시는 시종일관 풀의 생명력에 대해 감탄하고 찬양하고 있다. 예초기로 풀을 깎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잘 알 것이다. 풀의 비린내를. 바지를 물들였던 풀물의 색깔을. 그런데 인간이 잔인하게 베어버린 그 풀이 키운 가족이 있었다. 벌레, 나비, 개미, 메뚜기 같은 것들이다. 풀은 시인 자신이었다. 기업을 운영하면서 데리고 있던 직원들, 아내와 자식들, 양가의 부모님들(지금은 돌아가셨겠지만)이 자신의 손을 보고 있었다. 얼굴을 보고 있었다. 제6연, “십자가에서 몸을 허물어 인류에게 봄이 된 사내처럼/ 봄이 오면 다시 살 수 있다는 것을/ 풀은 기억한다”는 구절에 이르면 나의 베어짐이나 피 흘림을 통해 하느님은 나에게 시련을 주고 하늘나라로 데려가지 않고 새롭게 쓰기 위한 시험을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병마가 닥친 자신을 하느님이 시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음을 마지막 연이 알려주고 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베어내도 다시 돋는 저 잡초를 본받아 다시 또 잎을 피워내고, 꽃을 피워내겠다는 결심이 이 시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시 앞에서 누가 감동하지 않으랴. 류근홍 시인의 남다른 각오는 아래의 시에도 잘 나타나 있다.

 

땀 흘린 농부는

논밭에서 심은 대로 기쁨을 거두는데

 

나는 무엇을 추수하고 있는 건지

돌아보니 가슴이 철렁하다

 

봄꽃 향기를 따라가다가

짙푸른 여름의 웅덩이에 빠져 첨벙대다가

붉은 단풍에 취해 비틀거리다가

 

방향을 잃어버린

습작의 시들

 

이제는 겨울나무가 되어

눈을 뒤집어쓴 채 떨고 있다

 

책상에 미완성 원고들이 널브러졌다

바람에 떨어진 낙엽처럼 습작의 시절

―「습작의 시절」 전문

 

습작의 시절은 낙엽 같은 파지의 시절이요 실패의 시절이요 낙심의 시절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써본들 활자화되지 않으니 쇠귀에 경 읽기나 마찬가지다. 책상에 미완성의 원고들이 널브러져 있다. 시의 방향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어 류 시인의 습작 시절은 암중모색의 나날이었다. 하지만 등단도 했고 시집도 두 권을 내본 경험이 있으니 겨울나무가 되어 눈을 뒤집어쓴 채 떨고 있을 필요가 없다. 「말몰이」란 시의 ‘말’은 1차적으로는 말[馬]을 연상시킨다. 시를 읽어보면 말이 언어임을 알 수 있다. 류 시인은 이제 숙련된 기수다. 어언 몇 년인가. 이제는 말을 잘 다룰 줄 알게 되었다.

 

말의 고삐를 움켜쥔 채 말몰이를 하는 기수

휘두르는 채찍이 기수의 말이다

 

들을 수 없는 말

다 할 수 없는 말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은 흘러만 가고

온몸에 땀이 흘러내린다

울부짖다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돌고 있는 말이 조금은 알아들은 걸까

 

고삐를 바짝 움켜쥔 사내

길을 이탈하지 않고 한곳만을 향해 달린다

―「말몰이」 전반부

 

말몰이를 하는 기수騎手는 달리 말해 언어의 연금술사다. 무에서 유를 낳고, 백지에다 세계를 탄생시킨다. “고삐를 바짝 움켜쥔 사내”는 “길을 이탈하지 않고 한곳만을 향해” 달리겠다고 각오를 뚜렷하게 밝히고 있다. 이 시는 바로 류근홍 시인이 세 번째 시집을 내고자 하는 이유다. 각오이고 결심이고 천명이다. 시인이 되었기에 봄날을 기다리고 있다. 병마에서 회복되었기에 봄날일 것이고 시인으로 거듭났기에 봄날일 것이다.

 

지난겨울 어둡고 힘들었던 마음을

정자나무에 기대어 밤새 고백을 하니

어느새 이슬에 몸이 촉촉해진다

 

마당을 서성거리는 나에게

꽃샘바람이 젖은 옷 속으로 스며들어

응어리진 곳을 적신다

 

새싹처럼 소름이 돋아난다

―「봄날」 후반부

 

암 투병의 시절을 헤치고 나온 사람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이렇게 밝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류근홍 시인의 인생의 봄날은 이제부터일지도 모르겠다. 더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시인에게 마음에서 우러난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시가 사람과 일치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상상력을 발휘하여 시를 쓰다 보면 사건도 만들어내고 인물도 창조하고 표현도 에둘러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람과 작품 사이의 거리가 꽤 되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류근홍 시인의 시에서는 유쾌하고 정의롭고 순수한 시인의 품성이 그대로 느껴진다. 타인의 생로병사와 인생살이의 희로애락과 자연의 영원회귀를 잘 지켜보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우선 시편이 어렵지 않아서 좋고, 시인의 생생한 체험이 느껴져서 좋고,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 뚜렷해서 좋다. 하지만 내면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시인은 종종 지상의 뭇 생명체에 대해 아파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또한 시인의 추억담, 즉 지난 세월의 삶과 꿈에 대한, 투병과 치유에 대한,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얘기를 듣다 보면 독자 여러분은 어느새 시집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 있을 것이다.

이번 시집에서 신앙시의 범주에 들 만한 것은 몇 편 되지 않는다. 하지만 쓸 이야기가 많아서 새로운 시집이 이렇게 또 한 권 탄생하게 된 것이다. 아직도 시인이 할 이야기의 샘에서는 맑은 물이 계속해서 퐁퐁 솟아나고 있을 것이다. 그 물을 나는 이제 겨우 몇 모금만 마셨을 뿐이다. 앞으로 매일 찾아가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싶다. 류근홍 시인의 제4시집을 긴장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참이다